무당일절武當一絶
백 세에 태극권을 창안한 장삼풍은 두 명 남은 제자와 무당산을 떠났다. 그러다 몇 년 뒤에 돌아왔는데, 일행에는 잘 웃는 아이 한 명이 늘었다.
무당파 제자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 아이가 있으면 천강구절이 무당을 넘보지 못할 거다'고 대답해 아이는 무당일절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청빈이라는 도호를 쓰는 분을 찾습니다."
무당파에는 해검지解劍池가 있다.
비록 양의검법을 창안하긴 했으나 장삼풍은 검을 좋아하지 않았다. 검은 원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祭器로 인간을 보살펴 달라고 하늘에 청원하는 도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물건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장삼풍이 날붙이 중에서도 검을 특별히 싫어해 무당파엔 해검지가 생겼다. 연못이 있어 말이나 나귀 등을 묶어두던 곳인데, 검을 비롯한 병장기도 함께 맡기는 용도가 되었다.
손님으로 온 자들 대부분이 장삼풍을 경앙하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고, 장삼풍이 죽은 지금에도 해검지의 전통은 이어졌다.
당연히 혈총을 끌고 해검지까지 온 구후영에게 무당 제자들이 검을 풀라고 요구했고, 구후영이 비록 성격이 담백하나 귀한 검을 선뜻 맡기긴 그래서 용건을 말했다.
"무당은 청자가 들어간 도호를 쓰지 않습니다."
청靑은 음이고 홍紅은 양이다. 태극권을 익히는 무당이기에 음양 중 하나에 치우치는 걸 경계해 도호에 청이나 홍이 들어가면 안 되고, 속가제자마저 이름에 청이나 홍이 있으면 다른 글자로 바꿔야 했다.
"무당에 혹시 다른 도관이 있습니까?"
구후영의 질문에 해검지를 지키는 무당의 젊은 제자들이 일제히 폭소했다.
"제가 아는 도관만 백 개가 넘습니다. 모르는 도관까지 합치면 이백 개도 넘을 겁니다."
'삼형이 자신은 무당의 도사이고 무인이 아니라고 했지. 어쩌면 무당파 말고 무당 어느 도관의 도사인지도 모르겠구나.'
하긴, 무당 제자가 제멋대로 문파를 떠나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무당파는 소림사의 명성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하여 절정에 이른 제자만 강호에 내보낸다.
"혹시 청빈이라는 도사를 아는 분이 계신가요? 나이가 올해 스물하나입니다."
"무당파 소속이 아닌 도사가 도관마다 적으면 한두 명, 많으면 열댓 명씩 있어 어림잡아 천 명 이상입니다. 저희는 외부인과 만날 일이 거의 없고, 혹여 있더라도 대화하지 않아 이름이나 도호까지 알진 못합니다."
"혹시 알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균현에 팔방객잔이 있습니다. 가족이 경영하는 큰 객잔인데, 대대로 균현 토박이라서 그 사람들이 모르면 아는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구후영은 포권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해검지를 떠나 균현으로 갔다. 무당 제자들은 혈총의 아름다운 자태에 혀를 차며 구후영이 엄청난 부자일 거로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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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말에 편자를 안 박으셨네요. 무당파에 납검하는 철방을 아는데 제가 말 잘해서 싸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장삼풍이 있을 땐 검의 사용을 자제했지만, 양의검법의 위력이 태극권보다 확실히 강해 현재는 무당 제자 중 반 이상이 검을 들었다.
"덜 자라서 그러오. 아직 두 살이 안 됐소."
구후영의 말에 객잔의 점소이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귀한 말이군요. 그럼 엽전 열 개짜리 상등 여물로 준비할까요?"
"양을 넉넉히 주시오."
엽전 열 개면 사람도 아껴서 몇 끼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혹시 다른 분부가 있습니까?"
"내가 예전에 잠깐 만났던 도사가 있는데, 도호는 청빈이라고 하오. 무당파에 물으니 무당 제자는 아니라고 하는데, 혹시 어느 도관의 도사인지 알 수 있겠소?"
"제가 알아봐 드리죠. 그런데 지금은 조금 바빠서."
구후영은 엽전 다섯 개를 꺼내 점소이에게 건넸다.
"성과가 있으면 더 사례하겠소."
"염려 놓으십시오. 무당에 있는 사람이면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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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후영은 문을 안에서 잠그고 내공 수련을 했다. 단전에 기운이 묵직하게 차서 찰랑대는 느낌이 너무 좋아 하루도 빼먹을 수 없었다.
사실 대부분 사람은 기운의 질감까지 느끼지 못한다. 구후영이 특이한 경우인데, 낙화문이 심법 쪽으로 조예가 깊은 문파가 아니라서 임초현도 구후영도 그저 그러려니 지나쳤다.
'확실히 기운이 훨씬 좋구나.'
왜 신선이 되려는 수련자들이 무당산을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기운이 태원부나 일지봉보다 맑고 진했다.
슬슬 잡생각이 많아지자 구후영은 수련을 멈춰야 할 때임을 알았다.
'과유불급.'
마음을 먹자 운기가 먼저 멈추고 이어서 축기가 멈추고 마지막으로 연기까지 마무리됐다. 구후영은 손바닥을 비벼서 감은 눈에 댔다가 천천히 밑으로 내려 단전 위치에 멈추고, 단전 앞에서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두고 맞잡아 태극 문양을 만들었다.
'운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운기만 단독으로 멈추는 건 여전히 안 된다. 심기를 시작하면 운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운기를 멈추면 나머지 셋도 함께 멈춰버린다.
내공이 나날이 늘어서 행복하지만, 말 안 듣는 운기 때문에 마냥 즐겁진 않았다.
'검술 수련은 어제 실컷 했으니 오늘은 쉬자.'
풍불지는 쉬지 않는 수련은 자기 학대라고 말했다. 수련하면서 뭔가 깨우친 게 있으면 쉬는 사이에 몸이 절로 적응하여 경지가 오를 수 있는데 계속 원래 수준으로 수련하다가 경지 상승의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마음을 정한 구후영은 바로 드러누워 잠들었다. 호흡이 깊어 코를 골거나 하진 않았지만, 채 다섯을 세기도 전에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단잠에 빠져 꿈나라에서 헤매던 구후영의 눈이 절로 뜨였다.
'뭐지?'
객잔의 방에서 조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구후영의 방에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독연인가?'
그러나 속이 메스껍거나 머리가 어지럽거나 시야가 흐린 등 증상은 전혀 없었다.
그때 문밖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쯤은 물소라도 쓰러졌을 거야."
"무인이잖아. 좀 더 기다리자."
"이미 태운 미혼향迷昏香만 해도 엽전 스무 개는 넘겠다."
'미혼향? 난 왜 아무렇지도 않지? 이것도 공청석유 덕분인가?'
"그만 들어가자. 이러다 들키겠다."
"그래."
문밖에서 꿀꺽꿀꺽 소리가 들렸다. 미혼향에 안 취하려고 술 마시는 소리였다.
"제길, 문을 잠갔어."
"줄을 넣어서 열면 되잖아."
"귀찮은데."
둘이 티격태격했다. 전혀 긴장감 없는 대화를 보면 이 짓을 한두 번 한 놈들이 아닌 듯했다.
구후영은 이들이 뭘 하려는지 보려고 침상에 도로 누웠다.
'말을 탐낸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고민하는 사이에 문이 열렸다. 구후영은 눈을 감은 채 귀에 감각을 집중했다.
발소리가 가벼운 거로 봐서 둘 다 큰 덩치는 아닌 듯했다. 미혼향 때문에 거친 숨소리로 판단하건대 키도 보통에 미치지 못한다.
"제길. 넷이 오자니까 더럽게 말 안 듣더니. 이 큰 놈을 둘이서 어떻게 들고 가?"
"밤인데 설마 들키겠어?"
"들키면 죽는 거 몰라? 청빈 그 새끼 때문에 우리 정체가 다 탄로 났어."
'삼형을 아는 자들이다.'
청빈의 이름이 들리자 구후영도 더는 참기 어려워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뭐야!"
둘이 화들짝 놀라는 사이 구후영은 신속히 움직여 오른손 엄지로 얼굴이 동그란 자의 옥당혈을 짚고 왼손 중지를 구부린 마디로 목이 긴 자의 봉신혈을 눌렀다.
둘 다 호흡을 크게 하도록 강제하는 혈도여서 두 사내는 깊은 호흡을 하다가 그만 미혼향에 취해 쓰러졌다.
미리 술을 마셨기에 곧 깼지만, 구후영이 둘을 꼼짝도 못 하게 묶기 넉넉한 시간이었다.
"난 너희 둘 중 한 명에게 행운을 선물하려고 해."
구후영은 천공교검으로 두 사내의 품에서 찾은 엽전을 살살 깎으며 말했다. 커다란 검을 비수처럼 편하게 쓰는 모습도 놀라웠지만, 엽전 변두리만 일정 두께로 잘라내는 모습에 두 사내는 기절초풍했다.
"다른 사람보다 일각 더 늦게 죽을 행운을 말이지. 어차피 죽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일각이라도 더 숨 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대협,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뭐 하는 사람인지 자기소개 좀 해봐."
"저는 양조장 일꾼입니다. 이 친구는 포목점에서 일 배우고요."
"그거 말고 다른 신분 있잖아. 돈 받고 특별한 일을 한다든지 그런 거 말이야. 난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
"저희는 칠살문七殺門의 연락 담당입니다."
"청빈이랑 같은 소속이구나. 내가 청빈을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거겠지?"
"맞습니다."
"청빈에 관해 아는 거 다 말해."
"청빈은 재작년에 태원부로 임무를 나갔다가 돌아온 다음 당주와 일급 두 명에 이급 일곱 명을 죽이고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무당파에 칠살문의 정체를 알려 무당 분파엔 몇 명밖에 안 남았습니다."
"무당 분파?"
"중원 전역에 분파가 있는데, 의뢰를 받는 건 지역 분파가 하고 살인은 다른 분파에서 사람을 파견합니다. 이러면 들켜도 뒤탈이 거의 없거든요."
청빈이 이천 리나 떨어진 태원부까지 가서 사람을 죽인 이유다.
'그러니까 태원부나 태원부 근처의 어딘가에 칠살문의 분파가 있다는 소리구나.'
"청빈이 어디 있는지는 찾아냈고?"
구후영의 질문에 두 사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딴에는 칠살문 문주가 누구고 총단이 어디 있는지를 물을 거로 예상해 자신들이 왜 모르는지 변명을 잔뜩 준비했는데 다른 질문을 하자 그만 당황한 것이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하면 되지. 원래 자객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조직의 비밀은 지키는 게 미덕이라며?"
그딴 미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릅니다. 그러나 압니다."
"도대체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무당파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문?"
"다 아는 소문 말고. 저희끼리 은밀히 아는 소문 말입니다."
"결국 아는 게 없네. 원래 한 놈을 일각 동안 더 살게 하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 둘 다 내 기대에 너무 못 미쳤어."
말로는 죽인다고 했지만, 구후영은 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컸다. 직접 처단하자니 둘이 죽을죄를 지었는지 확신이 없다. 그러나 이대로 놔주자니 어찌 됐건 자객 조직에 몸담은 자들이다.
무당이나 균현 관아에 넘기는 것도 생각했지만, 그건 죽이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
"죽이지 마."
갑자기 들린 소리에 구후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넌 착한 아이니까 될수록 사람 죽이지 마."
문은 물론이고 창문도 안에서 잠갔다. 그걸 어떻게 열었는지 도포 차림에 천진하게 웃는 사내가 창턱에 걸터앉아 다리 하나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고인의 존성대명을 청해 묻습니다."
"나? 음. 사부가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 뭐였지? 맞다. 나 정학正學이야."
"어! 무당일절!"
기함을 터뜨린 건 구후영이 아닌 두 사내였다.
"도사 나으리.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나쁜 짓은 했으나 죽을죄는 안 지었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평생 회개하며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아니야. 너흰 나쁜 사람이야. 벌을 받아야 해."
정학이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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