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소피장此消彼長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내가 강해지거나 적을 약화하거나.
천마의 선택은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었다.
"제길."
사라졌던 풍불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왠지 놀아난 거 같아."
"그걸 이제 알았어?"
악불형이 습관적으로 비웃었지만, 평소와 달리 무시당했다.
"놈을 쫓아 나가봤더니 위에 사람들이 다 죽었어."
"누가?"
"위에 자던 사람들 말이야."
풍불지의 말에 다들 숨이 막혔다.
"삼천에 가까운 사람 모두?"
되묻는 악불형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천은 몰라도 수백은 훌쩍 넘건만, 반항할 힘도 없는 자는 단 한 명도 죽인 적 없다.
"혈포규찰대라는 자들 수십 명이 한 짓이야."
"이유는?"
"그자들을 죽여야 초 형이 깰 수 있어. 어차피 다신 못 깰 자들이라 죽이는 데 별 망설임이 없었고, 그자들을 죽여 초 형이 깨면 육양공의 남은 절반 비급을 주기로 했단다."
위종이 말한 그물의 두 구멍은 팽창회와 혈포규찰대였다.
팽창회는 천마와 접점이 너무 적어 무시했고, 혈포규찰대는 천마와 접점이 너무 많아 제외했었다.
둘 중 하나만 해결했어도 오늘은 순탄하게 위종이 원하는 대로 흘렀을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초무선이 깼지?"
팽창회가 이를 악문 채 질문했다. 원하던 바를 이룬 건 기쁘지만, 조상이 깨지 못한 건 여전히 분하고 안타까웠다.
"천마의 생기가 더 강하니까."
대결을 중단하고 뒤로 훌쩍 물러선 위종이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구후영이 질문했다.
"어떻게 되긴. 결과를 기다리는 거지."
위종은 더 강해질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천마를 약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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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갑호위는 저자를 막으라!"
태자를 모시던 환관들이 몸을 던져 번 시간은 허망하지 않았다.
겨우 숨 십수 번을 쉴 그 짧은 기간 덕분에 흑갑호위가 도착할 때까지 태자의 숨이 붙어 있었다.
"전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흑갑호위는 대부분 일류지만, 흑갑의 단단함과 강력한 기관 암기 덕분에 갑자기 잠에서 깬 모용건을 막는 데 문제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기관 암기도 잠에서 깬 모용건을 죽이진 못하고 그저 잠깐 묶어둘 뿐이었다.
"당장 금의위를 소집하고 군대를 안으로 들여라! 순천부의 모든 문파와 무관과 표국에 연락해 절정 이상의 고수를 소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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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천마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몸이 떨린다는 건 통제권을 어느 정도 잃었다는 뜻인데, 굳이 천마 정도의 고수까지 갈 필요도 없이 청빈 수준만 돼도 웬만해선 몸을 저리 떨진 않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위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천마의 얘기가 궁금한가?"
위종은 일행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제멋대로 말을 이어갔다.
"천마가 중원에 도착했을 땐 일류에도 못 미친 경지였다. 그런 천마를 선뜻 받아주고 무공을 가르친 이름 없는 문파가 있었는데, 그 문파의 대사형이 초명선이었다."
현월궁 궁주나 팽씨의 조상을 비롯한 대단했던 무인들의 기억을 물려받는다고 단번에 고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더구나 둘의 심법은 천마한테 전혀 맞지 않았다.
"천마의 이름은 대사형을 따라 지은 것이지. 그리고 십여 년 전에 초명선이 죽었다. 자신의 친우인 연남중과 한기경 그리고 제운후와 함께 말이지."
"잠깐."
홍기영이 이마를 찌푸렸다.
"연 선생, 한 선생, 제 선생, 초 선생?"
"맞아. 바로 그들이지. 너희가 아는 연 선생은 사실 내 사제다. 나랑 같이 넷을 죽인 다음 역용술로 이들의 행세를 했지."
천마의 얼굴에 작은 분노가 떠올랐다.
"문제는 내가 초명선을 너무 무시했다는 거지. 내가 심법을 대성하지 못해 지금보다 훨씬 약했던 탓이 컸다지만."
위종이 탄식했다.
"놈을 제거하는 과정에 발을 잃었지. 정말 수지가 안 맞는 일이었어. 다시 돌아간다면 초명선은 건드리지 않았을 거야."
"왜 그들을 죽였지?"
"내가 하려는 일을 방해할까 봐. 근데 후에 알고 보니 넷 중에 한기경 빼고 아무도 이번 일에 관해 모르고 있었어. 그저 한기경만 죽이면 되는 거였는데, 괜히 초명선까지 죽이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지."
'그때 발을 다쳐서 환허밀공을 익힌 건가?'
환허밀공을 익힌 자는 인형극의 인형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실로 당기기라도 하듯이 발 하나가 정상이 아님에도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일정 기간 몸의 제어권을 잃어 높은 경지를 바라는 무인이라면 절대 익히지 않을 무공이었다.
"힘으로 제압하는 데 실패하고 넷을 동굴에 유인한 다음 벽력탄을 터뜨려 가뒀다. 그런데 초명선이 한기명한테서 칠살문의 비밀을 듣고 자신의 추측을 곁들여 벽에 글자로 새겼고, 그걸 천마가 읽었다. 그 탓에 위씨 가문에서 나만 살아남았지. 뭐, 어차피 친혈육도 아니라서 큰 상관은 없지만."
위종이 자기 쪼그라든 발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돼서 천마가 이번 일에 발을 담그게 됐지. 내가 초명선만 건드리지 않았으면 모든 게 순조로웠을 텐데."
세세한 과정은 생략했지만, 대략적인 윤곽은 드러났다.
그때. 떨림을 멈춘 천마가 아까보다 훨씬 강한 기세로 위종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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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형이 밀리는 것 같은데?"
악불형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대화하느라 자세히 살피진 않았지만, 아까는 분명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연히 천마의 열세가 보였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백을 둘로 나누면 몇이지?"
뒷짐을 진 채 환허밀공으로 천마의 공격을 피하던 위종이 갑자기 일행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십."
귀연이 바로 대답했다.
"오십 보가 백 보를 웃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사실 오십 보와 백 보의 차이는 꽤 큰 편이지."
위종이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이지?"
풍불지가 질문했다.
"천마는 왜 위의 사람을 다 죽이라고 했을까? 단순히 한 번 더 소생하려고?"
위종이 자문자답했다.
"소생한 자는 기억을 주고, 소생하지 못한 자는 힘을 준다."
"그러니까 위의 삼천에 가까운 자들의 힘이 초 형의 몸에 깃들었다고?"
악불형이 물었다.
"힘이 아니고. 뭔가 더 생명의 근원에 접근한, 불로불사와 관련한 미지의 기운이지."
"그럼 지금은 왜?"
"그 기운은 가장 가까운 천마의 몸에 모였지. 그러나 지금은 천마와 같은 자를 찾아내 그쪽으로 옮겨가고 있지. 크큭."
위종은 기쁜 나머지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위의 자들은 이미 소생이 불가한 몸인데. 설마 수백 년 전에 미리 빼돌린 건가?"
천마가 침착한 얼굴로 질문했다.
"몇 년 전에 체질이 부합한 자를 찾아내 공청석유로 불사의 몸을 만들었다. 그자는 조금 늦게 깬 모양이군."
모용건은 삼천 동남동녀 중 하나가 아니다. 그렇기에 천마보다 늦게 깼고, 지금 천마의 기운을 조금씩 앗아가는 중이다.
"여기서 천강구절이 죽는다면."
구후영이 질문했다.
"그자가 모든 힘을 가지는 거 아닌가?"
"내가 원하는 건 천마의 기억이지 힘이 아니다. 서불의 기억이 삼천 명한테 흩어졌는데, 내 목적은 그걸 모으는 것이지."
원래는 천마를 먼저 죽이고 위의 삼천에 가까운 자들을 죽이려 했다. 위종 역시 위의 자들을 먼저 죽이면 천마가 깰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것이다.
굳이 구후영 등과 동행한 것도 여길 들어올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위종의 목적은 자기 일을 방해할 만한 자들을 추려서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것이었다.
사대신협의 셋과 구후영. 공유한테 뭔가 들은 게 있는지도 모르는 원경이 그 목표였다.
구후영과 원경을 죽이려 했던 건 통제해야 할 자가 너무 많아서 숫자를 줄이려는 것이었다. 사대신협은 제거할 자신이 없으니 그나마 만만한 구후영과 원경을 선택했다.
둘 중 하나가 소생자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부분도 조금 작용했고.
"백 리를 걸을 때 구십 리까지 반으로 친다는 말이 있는데."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마지막 십 리만 남았어도 이제 겨우 반 온 셈이란 뜻으로, 성공의 문턱에서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위종은 어서 천마 등을 없애고 서불의 기억을 모으려는 생각에 급히 지하를 찾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팽창회가 나타나서 방해했다.
그 탓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천마의 안배에 따라 혈포규찰대가 위의 자들을 죽여 천마를 깨웠다.
만약 위종이 서두르지 않았다면 구후영 등과 함께 혈포규찰대를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평소 일행의 심성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혈포규찰대가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무고한 자들을 함부로 죽이게 놔둘 것 같지 않으니까.
"다행히 내가 만일에 대비해 한 수 남겨뒀지."
천마는 지속하여 미세하게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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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갑호위 대부분이 사망했습니다."
황궁에 들어온 군대가 황제를 비롯한 황족들이 있는 궁을 철통같이 방어했다.
"무림인은?"
"먼저 온 자들을 투입했으나 순식간에 죽었습니다."
사대신협이 보기엔 천마는 경지가 낮다. 강호의 대부분 무인보다 높은 괜찮은 경지지만, 사대신협이 보기엔 꽤 하찮다.
그러나 경지는 경지일 뿐, 넷이 힘을 합쳐도 천마를 이기기 힘들다.
모용건 역시 갑자기 힘을 얻었을 뿐 경지는 그대로이나, 순천부에서 평탄하게 살아온 무인들을 상대로 절대의 강함을 보이는 데 무리가 전혀 없었다.
"무림인 오십 명이 도착했습니다."
"투입해!"
태자의 명에 갓 모인 무림인들이 전투에 투입됐다.
처절한 비명이 꽤 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이번엔 다릅니다."
천리경을 들고 상황을 살피던 환관 하나가 뾰족한 소리로 외쳤다.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신분 확인도 제대로 안 하고 들였다. 딱히 유명한 자가 안 보여서 그저 시간 끄는 용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세 좋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어! 모용건이 피를 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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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만든 불사의 몸은 어디 있지?"
"황궁에."
위종이 대답했다.
"황궁?"
"그래. 내 사제가 제멋대로 황궁에 보냈더라고."
"만약 그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천마의 질문에 위종이 잠깐 고민했다.
"글쎄. 의봉군생술을 받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힘과 기억 모두 너한테 올 수 있고, 기억 빼고 힘만 올 수 있고, 아니면 둘 다 안 올 수 있고."
삼천 동남동녀는 의봉군체술을 통해 정신을 하나로 엮었다. 그러나 모용건은 그저 공청석유로 불사의 몸이 되었을 뿐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이어지면 천마가 그 존재를 알아챌 위험이 있기도 하고, 위종이 의봉군체술에 관해 제대로 모르는 탓도 있었다.
"궁금해?"
"뭐가?"
뜬금없는 질문에 위종이 되물었다.
"그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냐고."
천마의 말에 위종이 얼굴을 살짝 굳혔다.
"잊었나 본데. 초명선을 아끼는 건 나뿐이 아니야."
초명선은 문파의 대사형이다. 그건 천마 말고도 다른 사제들이 더 있다는 뜻이다.
"잠시 뒤면 알게 될 거야. 힘만 돌아오는지 아니면 기억까지 돌아오는지."
시종 여유롭던 위종이 뒷짐을 풀고 천마를 덮쳤다.
아까는 천마가 힘이 줄기 전에 위종을 해치우려 서둘렀지만, 지금은 그 반대 상황이 되고 말았다.
- 작가의말
머리싸움에서 지금까지 천마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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