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오당誤打誤撞
태을근천도太乙近天都
태을은 높이 솟아 하늘에 닿고,
연산접해우連山接海隅
산줄기를 타고 멀리 바다까지 이어지누나.
백운회망합白雲回望合
돌아보니 헤쳐 지난 흰 구름이 어느새 합쳐지고,
청애입간무靑靄入看無
멀리서 보이던 푸른 아지랑이는 온데간데없구나.
종남으로 간다고 하자 구후영은 당연히 태을산을 떠올렸다.
"저기다."
그런데 정작 옥무영이 일행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넓은 숲 가장자리에 있는 낡은 도관이었고, 주변에 산 비슷한 무언가조차 없었다.
"저 도관 말입니까?"
소림사는 가장 가까운 등봉현과 이십 리 넘게 떨어졌고, 개봉부와는 이백 리 넘게 떨어졌다. 무당 역시 균현까지 거리가 백 리나 된다.
그렇게 보면 서안부와 이백 리 정도로 먼 이 도관의 위치도 딱히 이상하진 않다. 명나라가 들기 전까지 전진교의 위세가 지금의 무당은 물론이고 소림도 능가했으니까.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아도 찾는 사람이 넘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가 그 유명한 고루관이다."
구후영의 예상과 달리, 이 도관은 종남파의 것이어서 이토록 오만한 위치에 자리 잡은 게 아니었다.
"노자가 도덕경을 적은 곳 말입니까?"
진실 여부는 아무도 장담 못 하지만, 고루관은 노자가 도덕경을 집필한 장소로 알려졌다.
"그래."
"우린 종남파에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여기가 빨라."
구후영의 질문에 성의 없이 대답한 옥무영이 성큼성큼 걸어서 도관으로 갔다. 여전히 의문이 안 풀렸지만, 구후영과 원경은 말없이 옥무영의 뒤를 따랐다.
땅. 땅땅.
도관의 나무 대문엔 소를 닮은 황동 조형물이 있었고, 조형물의 코엔 활동 가능한 금속 코뚜레가 있었다. 방금 소리는 옥무영이 코뚜레로 조형물을 두드려 낸 것이었다.
"어서 오시오."
문을 두드리고 얼마 안 지나 검은 수염을 가슴께까지 기른 노도인이 도관 대문을 활짝 열고 셋을 반겼다.
"원로에 수고 많았소."
'우리가 올 걸 예상했다는 건가?'
노도인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구후영과 달리, 옥무영과 원경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종남도 똑같군.'
서안부에 도착할 때까지 일행은 궁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구후영은 원각을 따라 소림에 갈 때 수수한 옷만 챙겼다. 오해를 풀고 혹시 모를 누명을 벗으러 가는 길이기도 하고, 소림의 고승이 죽었는데 비단옷이나 화복을 입을 순 없었다.
거기에 백팔나한진을 상대하며 둘밖에 없는 옷 중 하나가 걸레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된 바람에 서안부까지 옷 한 벌로 버텼다.
당연히 흙이 묻고 물때가 져서 추레한 모습이었다.
원경은 옥무영의 도복을 입었다. 등봉현에도 옷 파는 가게가 있지만, 승복을 연상케 하는 옷이 대부분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 옷을 만들기엔 시간도 부족해서 계속 도포를 걸쳤는데, 어깨가 넓고 허리가 굵어서 어른이 아이 옷을 뺏어 입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옥무영 역시 도복은 쳐다보기도 싫다며 사제 중 하나의 평상복을 입었는데, 품이 달라서 옷맵시가 전혀 살지 않았다.
하지만.
구후영의 일이라면 뭐든 지극정성인 은도당이 불과 하루 사이에 서안부를 훑어서 셋에게 꼭 알맞은 옷을 구했다. 거기에 원경은 모자로 짧은 머리를 가렸고, 구후영과 옥무영은 이마에 영웅건을 둘렀다.
지금은 누가 봐도 돈깨나 있는 집안의 자제들 모습이었다.
'하긴. 이젠 여기도 일반 도관이나 다를 바 없지.'
절간이나 도관은 방문객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천 년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흔한 게 절간이고 널린 게 도관이니까.
그 탓에 방문객이 왔을 때 이미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게 특이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소림과 무당도 귀한 손님한테는 비슷한 수작을 부리곤 한다.
그런데.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걸 보니 세 분의 경공 조예가 대단한가 보오."
노도인은 실제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에 셋 사이에 눈빛이 오갔다.
'내가 나설 테니, 가만히 있거라.'
입을 열지 않았지만, 옥무영의 고갯짓과 눈빛은 구후영과 원경에게 정확히 전달됐다. 구후영과 원경은 고개를 작게 끄덕여 옥무영의 뜻을 이해했음을 알렸다.
그러는 사이, 노도인이 일행을 자그마한 객청에 안내했다.
'노자가 여기서 만년을 보냈단 말이지?'
대화를 옥무영에게 맡기기로 하며 여유가 생긴 구후영은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고루관임을 실감했다.
"종남에 부탁이 있어 찾아왔소."
원래는 주인이 차를 올리고, 청첩장 없이 방문한 손님이 다향을 칭찬하며 자신을 소개하고, 그다음에 주인이 용건을 묻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그러나 지금은 노도인이 일행을 다른 사람으로 오해한 상황이어서 옥무영은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니 차부터 올리겠소."
반면, 노도인은 이미 다 안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미루려 했다.
"오해가 있는 듯한데, 우린 종남에 작은 부탁 하나 하러 왔소."
그제야 노도인도 자신이 너무 앞서갔음을 깨달았다.
"나는 고루관을 지키는 만우라고 하오."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판각청우板角靑牛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산해경에 시兕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청우는 뿔 하나 달린 무소인데, 고루관을 지키는 도사는 대대로 도명에 우牛를 넣었다.
"반갑소. 소도는 무당 장문 옥무영이오."
뜻밖의 말에 노도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대가 정녕 무당 장문이오?"
"그렇소."
그에 노도인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내 비록 나이가 들어 머리가 혼용昏庸하고 눈이 어둡다지만, 무당의 기운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네."
"여긴 내 사제인 구후영이오."
노도인이 고개를 돌려 구후영을 한번 쓱 훑은 다음,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이 소협도 무당 제자로 보이지 않소."
"이 아우는 환속승 원경이오."
그에 노도인이 처음으로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림의 기운은 맞으나, 환속승이란 말은 믿기 어렵군."
"통성명이 끝났으니 용건을 말해보겠소."
종남의 상황은 소림이나 무당보다 열 배는 복잡하다. 조정과 척진 건 물론이고 물밑으로 마교와 연계가 있다는 의혹도 있으며, 가까운 곳에 화산이라는 거대한 적이 있다.
옥무영은 괜한 오해로 이상한 일에 휘말릴 것을 걱정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러시오."
"종남에 천산에 나는 칠 년근 설련이 있다고 들었소. 우린 그걸 구하러 왔소."
노도인이 얼굴을 찡그리고 길게 고민했다.
'뭘 고민하는 거지?'
일행의 의문이 무럭무럭 자라던 그때.
"혹시, 그대가 마교에서 현현자랑 내공 대결을 한 낙화문 장문 구후영이오?"
노도인이 긴 침묵을 깨고 구후영에게 질문했다.
"소생이 맞소."
"황제의 병을 치료한 그 구후영도 맞고?"
"그렇소."
소림의 일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는지 노도인은 더 질문하지 않았다.
"잠시 실례하겠소."
말을 마친 노도인이 자리를 비웠다가 종이와 세필과 먹을 들고나왔다.
"화상을 그릴까 하오."
종이를 탁자에 편 노도인이 구후영을 한참 쳐다보다가 붓에 먹을 듬뿍 찍은 다음 거침없이 휘둘렀다.
'고수다.'
처음 몇 번의 붓놀림만 봤을 땐 노도인이 그리려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종이 위에 구후영의 얼굴이 완성되면서 무의미해 보이던 처음의 붓놀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셋 모두 확실하게 느꼈다.
'굳이 따지면 신창과 비슷한 유형이겠지.'
다만, 신창은 공간 전체를 제압하여 상대를 꼼짝달싹 못 하게 한 다음 공격한다면, 노인은 공격으로 공간을 압축해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보였다.
"이걸 갖고 가서 백옥봉에서 현현자와 대결한 낙화문 장문이 맞는지 확인하고 와라."
그림을 완성한 노도인이 밖에 외쳤다.
그에 옥무영이 제지했다.
"다시 소개하겠소. 풍옥문 소문주 옥무영이오."
"풍옥문이면 신검?"
노도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질문했다.
"맞소. 풍불지가 내 사부요."
그에 노도인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위아래가 없는 걸 보면 딱히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굳이 사부가 아니어도 신검 정도면 무인 대부분의 존경 혹은 경외를 받는 존재인데, 상대가 자리에 없다고 대놓고 이름을 부르는 건 웬만해선 안 할 짓이다.
그렇기에 노도인은 오히려 옥무영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풍옥문과 종남이 아주 남남도 아니니."
잠깐 고민한 노도인이 종이를 구후영에게 넘겼다.
"이건 선물이라고 생각하시오."
구후영은 처음에 영문을 몰랐지만, 종이를 받아 어찌할지 고민하면서 노도인의 의중을 알아챘다.
'나보고 처리하라는 말이구나.'
노도인이 구후영의 화상을 갖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찢거나 태우기엔 구후영이 멀쩡히 살아 있다.
본인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니 간직할지 없앨지는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잠깐 고민한 구후영은 종이를 잘 말아서 전표를 보관한 죽통에 넣었다.
워낙 잘 그린 그림이고, 그림의 획을 되새김질하면 초식에 관한 깨달음을 얻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기도 했다.
"너는 가서 막 장로를 불러라."
사부의 부름에 달려왔다가 멀뚱멀뚱한 얼굴로 객청 밖에 서서 대기하던 제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곤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건가?'
가끔 나오는 삼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삼은 모두 맹수의 영역에서 채취한다. 사람의 손이 안 닿고 노루나 사슴도 기웃거리지 않는 곳이어야 삼이 삼십 년씩 묵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은 산군山君으로 불리는 범이 노쇠하여 죽고 새 맹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잽싸게 달려가서 캐내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다른 범이 와서 산군을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하면 이 작은 기회조차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삼십 년근 고려삼이라면 노도인의 반응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닌데.
칠 년근 설련이 흔한 약재는 아니라고 하나 종남 같은 대문파가 이리도 신중하게 움직일 일은 절대 아니다.
"차가 늦었소."
그러는 사이 젊은 도인이 갓 끓인 차를 올렸다.
"귀한 손님의 시간을 지체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해서 장로를 불렀소."
차로 속을 따뜻이 데우며 노도인이 말했다.
"괜히 다른 사람을 불렀다가 결정권이 없어서 또 다른 사람을 찾으면 손님껜 실례고 종남으로선 망신이지 않겠소?"
그에 셋은 고개만 끄덕이며 대답을 아꼈다.
"그런데, 아까 환속승이라고 하셨소?"
노도인의 질문에 원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경이면 방장이랑 같은 배분이고?"
"소림 방장이 바뀌었소. 현재는 오정이 소림을 이끌고 있소."
옥무영이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대가 백팔나한진과 십팔동인진을 모두 통과했는지요."
노도인이 옥무영을 무시하고 계속 원경과 대화를 시도했다.
"맞소."
원경은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흐르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 탓에 짧게 대답했다.
"허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노도인이 껄껄 웃자 옥무영이 궁금을 못 참고 질문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 거요?"
"천강구절이 백팔나한진을 어떻게 깼고 십팔동인진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내게 자세히 말해줬소. 듣고도 따라 할 엄두도 안 나던데."
노도인의 말투를 보니 원경이 십팔동인진을 통과했음을 전혀 안 믿는 눈치였다.
- 작가의말
오타오당은 삼차오착이나 음차양착과 비슷한 뜻입니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오해와 실수로 일이 어찌어찌 흘러가는 상황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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