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살연맹七殺聯盟
구한봉감로久旱逢甘露라는 말이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한 줄기 단비에 대한 감사함을 뜻하는 말이다.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에게 구후영 일행은 아마 감로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구후 신의. 내 그대의 은덕에 두고두고 보답함세."
다만, 훈훈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의외가 하나 있었다.
지하감옥의 지인은 청빈과 혈교룡뿐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가진 약초 좀 없나? 그간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해 원기가 많이 상했다네."
안물이 초췌한 얼굴로 구후영 주변을 맴돌았다.
"이따 침놔드릴 테니 일단 저기 가서 조사부터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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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사람들은 일단 현월궁 사람들이 운기 경로를 검사했다.
칠살문의 내공은 천 년 전부터 전해져온 것으로 현재 중원의 대부분 심법하고 결을 달리한다.
왜 싸우는지 이유는 모르나 수백 년을 적대해온 두 문파기에 서로의 운기 경로쯤은 구분할 능력이 되었고, 덕분에 칠살문 소속이었던 죄수 둘을 따로 분리해냈다.
이 둘은 신문에 일가견이 있는 최종필한테 맡기기로 했다.
남은 사람들은 어디 사는 누군지, 무슨 일로 잡혀 왔는지, 자신을 잡아 온 자들의 진정한 정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질문했다.
이중 태반은 안물처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잡혀 와서 쭉 갇혀있었고, 일부는 청빈이나 혈교룡처럼 칠살문의 뒤를 캐다가 잡혀 왔다.
"놈들이 형님을 왜 가두고만 있었습니까?"
청빈과 혈교룡은 따로 구후영이 조사하기로 했다.
"나도 모르지. 거의 삼 년 반을 갇혀서만 지냈다."
특이한 건 칠살문의 자객 수십 명을 죽인 청빈과 혈교룡을 이들은 가만 놔뒀다.
왜 칠살문과 적대하는지 캐묻는다든가 아니면 고문 따위로 괴롭힌다거나 하는 거 없이 하루에 한 끼씩 꼬박꼬박 먹이면서 그저 감옥에 가둬두기만 했다.
"혹시 감옥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습니까?"
"그건 확실히 모르겠다. 너도 알다시피 난 제일 안쪽에 있어서 입구 쪽 상황을 잘 몰라."
그때.
"맹주, 이쪽으로 와주시오."
감옥에서 구출한 죄수들을 조사하던 누군가가 구후영을 불렀다.
"네가 맹주야?"
"암중에서 무림을 해치려는 무리에 맞서는 조직입니다. 제가 발기인이라 맹주 자리를 맡았습니다."
"저 노인. 나보다 반년 정도 늦게 들어왔어. 우리랑 달리 자주 불려가서 며칠씩 고문당하는 것 같던데. 뭔가 분명히 아는 게 있어. 그간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하던데, 잘 구슬려 봐."
"그래야지요."
청빈과 혈교룡에게 편히 쉬라고 말한 구후영은 문제의 노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공 경지는 꽤 높고.'
경지가 높다고 무조건 강한 건 아니다. 적은 힘으로도 높은 경지를 이룰 수 있고, 커다란 힘을 품고도 일류에 머무는 자 역시 드물지만 있다.
'다리는 다친 지 최소 십 년 이상이고.'
노인은 발 하나가 말라비틀어졌는데, 구후영이 배운 바로는 최소 십 년은 피가 안 통해야 저런 모습이 된다.
'크기로 봐선 성장이 멈춘 다음에 다친 거다.'
타고난 천형이라면 발이 지금보다 훨씬 작아야 한다.
걸어가면서 어느 정도 분석을 마친 구후영이 편한 웃음을 지으며 노인과 마주 앉았다.
"단둘이 조용히 얘기했으면 하오."
구후영이 앉기 무섭게 노인이 먼저 말했다.
"그러지요."
어떤 일은 남이 아니라 아군한테도 숨겨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괜히 같은 편을 의심하면서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후영은 흔쾌히 노인의 제안을 수락했다.
"저기 저거 좀 가져다주시겠소?"
구후영이 부축하려 하자 노인이 고개를 저어 거절한 후, 십여 걸음 밖에 나뒹구는 나뭇가지 하나를 가리켰다.
바람에 분질러져 떨어진 듯한 나뭇가지는 꽤 곧고 굵어 지팡이로 쓰기에 적합했다.
"받으시오."
잽싸게 움직인 청의방주가 나뭇가지를 휙 던졌다. 노인은 능숙한 솜씨로 나뭇가지를 받은 다음 밑동을 부러뜨려 키를 맞췄다.
굳이 무공을 숨기려 하지 않는 모습에 구후영은 마음에 품었던 의심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다시 돌아가긴 싫지만, 그래도 저기가 좋을 것 같소."
말을 마친 노인이 앞장서서 감옥으로 향했고, 구후영은 말없이 뒤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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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소협은 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것이오?"
구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이 쉽겠군. 혹시 칠살문의 기원을 아시오?"
구후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칠살연맹이라고 들어봤소?"
구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칠살문의 기원은 모르는데 칠살연맹을 안다라. 참으로 기괴한 일이로군."
혼자서 머리를 젓던 노인이 신중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칠살문은 칠살연맹에서 비롯됐소."
구후영은 가만히 있었다. 사실 칠살연맹에서 칠살문이 비롯된 건 구후영도 귀검동의 글귀로 어느 정도 추측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기에 아까 머리를 저었던 것이다.
"칠살연맹은 전국 말기에 생겨났소."
노인의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다.
춘추전국 시절, 끊임없는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가 망하고 생겨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일곱 나라가 남았다.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불린 이 나라들이 바로 진秦·조趙·한韓·연燕·제齊·위魏·초楚의 일곱이다.
당시 진나라와 조나라가 가장 강했고 남은 다섯 나라는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풍전등화였다. 심지어 조나라도 장평대전 이후 끊임없이 약해지고 있었다.
그에 일곱 나라의 뜻있는 협객들이 모여 칠살연맹을 만들었다.
이들은 끊임없는 전란의 원인이 왕들의 탐욕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객 연맹을 만든 다음 일곱 왕을 모조리 죽여 전쟁을 멈출 계획을 세웠는데, 맹주가 바로 당대 최고의 협객으로 불리던 홍석이었다.
그러나 돈도 없고 세력도 없는 협객들이 모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왕을 죽이고 싶어도 백 걸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게 이들의 처지였다.
그에 형가가 꾀를 내어 태자 단에게 접근했다. 태자 단은 어려서부터 조나라에 볼모로 잡혔고, 그 후엔 진나라의 볼모로 있다가 성인이 된 후 탈출해 연나라로 돌아왔다.
조나라는 물론 진나라에 대한 원한이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진나라 왕을 죽이고 싶다는 형가의 뜻에 선뜻 힘을 실었다.
태자 단의 도움으로 기회를 얻은 형가는 그 유명한 역수가를 남긴 채 진나라로 갔고, 아쉽게도 암살에 실패했다.
가장 강한 진나라의 왕을 죽인 다음 남은 나라의 왕들을 차례대로 죽이기로 했는데, 형가가 실패하자 칠살연맹은 실질적으로 와해되었다.
뜻만 가지고는 수십만 대군을 부리는 강대한 왕들과 대적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그렇게 칠살연맹이 사라지나 싶었지만,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함에 따라 부활했다.
이들은 진시황을 죽이는 시도를 여러 번 했고, 심지어는 성공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칠살연맹은 칠살문이 되었소. 단, 칠살연맹의 일곱 모두가 칠살문이 된 게 아니오."
"그렇다면?"
"조나라 말고 남은 여섯 나라의 협객들이 모여 칠살문이 되었소. 그런데 소협, 혹시 내 이름이 궁금하지 않소?"
구후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위종이오. 사람들은 나를 위 선생이라고 부르지."
이마를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던 구후영이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연 선생. 초 선생. 한 선생. 제 선생."
배후가 사용한 네 개의 가명이 전국칠웅 중 네 나라의 이름이었다.
"맞소. 진나라의 후손은 현재 호胡를 성으로 쓰오. 진시황이 사실은 중원인이 아니고 오랑캐 핏줄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소."
"조나라는 어찌 된 거요?"
"조나라의 후손은 현월궁이요."
뜻밖의 말에 구후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칠살문과 현월궁이 싸운 이유가 바로 이거요. 칠살문은 현월궁을 배신자라고 생각하고, 현월궁은 반대로 칠살문이 잘못했다고 여겼소."
"그렇다면 위 선생도 칠살문의 일익을 담당했소?"
구후영의 말에 위종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수백 년 전부터 칠살문은 진씨 일가가 독차지했소. 남은 다섯 가문은 모든 힘을 잃은 채 조용히 사라졌고, 진씨 일가는 수십 년 전에 성을 호씨로 바꿨소."
"칠살문이 위 선생을 해코지한 이유는 뭐요?"
"암호문이지 뭐겠소."
칠살문의 암호문은 이십 가지가 넘고, 자주 쓰는 것만 세도 열이 넘는다.
"원래 나한테 관심이 없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우리 걸 뺀 남은 암호문을 모두 모은 모양이오. 칠살연맹 초대 맹주인 홍석은 그 무위가 남달랐다고 하는데, 그에 관한 기록이 칠살문 손에 있소. 그런데 암호문이 부족해 그걸 해석하지 못하고 있소."
'십여 년 전에 현월궁을 급습해 사람 여럿을 죽였다고 했지. 아무래도 그때 조나라의 암호문을 빼돌린 모양이구나.'
배후가 하나인지 넷인지 확실히 모르지만, 호 선생의 것과 현월궁 것까지 합치면 총 여섯이다.
'칠살문이 배후일 가능성이 구 할. 칠살문이 배후의 가장 쓸모 있는 도구일 가능성이 일 할.'
제가장을 조사하던 중 구후영은 칠살문과 연결된 고리 여럿을 발견했다.
덕분에 현월궁을 끌어들일 수 있었고, 칠살문을 상대하면서 점점 편을 늘려 급기야 무당과 소림마저 무림수호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천 년도 더 전의 무공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그냥 주면 그만이지 않소?"
사실 귀검동에 들어간 적 있는 구후영으로선 홍석이 깨달은 십보살이 간단한 무공이 아님을 모를 수 없다.
그러나 위종을 떠보기 위해 구후영은 짐짓 의아한 척했다.
"그뿐이 아니오. 세상에 알려지면 깜짝 놀랄 어마어마한 비밀도 함께 있소. 게다가."
위종이 처연하게 웃었다.
"사실 난 암호문을 모르오. 진씨 일족이 칠살문을 완전히 장악한 후 우리 위씨 일가는 정말 다 잊고 살려 했소. 물론, 난 맏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비밀을 강제로 들어야 했지만."
"그럼 단독으로 대화하자고 한 이유는 뭐요?"
위종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감옥 좀 이상하지 않소?"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지만, 구후영은 위종의 뜻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그런 감이 없잖아 있소."
이곳은 칠살문의 문서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러한 곳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고 출입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그런 곳에 감옥을 만든다?
절대 정상적인 행태가 아니다.
"빛이 없고 악취가 넘치는 곳에 갇혀 살다 보니 눈은 어두워지고 코는 무뎌졌소. 대신, 귀만큼은 나이답지 않게 엄청나게 밝아졌소."
모든 일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은 사람들이 숨겨진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위종은 구후영이 모르는 그 이유를 알았고, 그걸 말해주려고 독대를 원했던 거였다.
"내가 묶였던 곳 벽 뒤에 밀실이 있소. 기척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사람 말소리를 들은 적도 분명히 있소. 사실 나도 처음엔 환청이 아닐까 싶었는데, 최근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소."
원종이 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내가 묶였던 곳의 벽만 다른 곳과 재질이 다르오. 얼핏 비슷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무늬도 다르고 돌을 구성한 성분도 확실히 다르오. 소협도 자세히 살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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