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선보善有善報
영락경纓絡經·유행무행품有行無行品에서 이르길.
응보란 무엇이냐 물으니 목련백불이 '다 인연에 따른 거다. 착한 자에겐 착한 응보가 있고 악한 자에겐 악한 응보가 따른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지금 안 갚는 건 시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때가 되면 모든 응보가 모조리 찾아올 것이다.'고 했다.
"젊은 친구는 인심仁心이 후厚하니 꼭 복을 받을 거네."
구후영의 이야기를 들은 중년 사내가 말했다.
"저도 제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하. 겸양할 필요가 없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젊은 친구는 천품이 선하다네."
"그렇습니까?"
"저자가 젊은 친구의 동생을 납치했는데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면서. 대부분 사람은 그럴 때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
"어떻게 합니까?"
"상대를 깨워서 동생 행방을 알려주지 않으면 치료 안 해준다고 협박하지. 동생 행방을 알아내면 십중팔구 치료를 안 해줄 거고."
'난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약초꾼의 치료에 전력을 다한 구후영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나 혹시 바보 아닐까?'
"사람이 착해서 그래. 천품이 훌륭해서 나쁜 생각은 아예 못 하거든. 이런 자는 큰일을 시키려고 하늘이 시련을 많이 내리지. 그게 조금 억울하겠지만, 착하게 살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올 걸세."
구후영의 표정으로 마음을 읽은 중년 사내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혹시, 스님이나 도삽니까?"
산발에 넝마만 걸쳐서 외모로 뭐 하던 사람인지 구분하는 건 어려웠다.
"젊은 친구가 기억력이 형편없구먼. 여색을 탐하다가 이리됐다고 분명히 말했거늘."
살인을 업으로 삼는 도사와 술과 고기를 탐하는 스님을 의형으로 둔 구후영이기에 색을 밝히는 도사나 스님이 있다고 해도 딱히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중년 사내의 말은 분명히 구후영의 질문을 부정하는 거였다.
"다리가 불편해 보입니다."
"여기 떨어지면서 부러졌어."
"봐 드릴까요?"
"이것도 침으로 치료가 되나?"
구후영은 중년 사내의 다리를 꼼꼼히 만져 확인했다.
"다시 부러뜨리고 뼈를 맞춘 다음 침과 약으로 치료하면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부러뜨린 다리가 다시 붙는 데 얼마나 걸리냔 말이네."
"약초가 없으니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치료하지 않겠네. 이런 다리라도 당장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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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약을 끓일 수 있겠구나.'
구후영은 추락할 때 버린 천공교검을 찾아 돌아다니던 중에 장작으로 써도 될 나뭇가지를 잔뜩 발견했다.
그간 찾은 얼마 안 되는 약재를 졸여 약효를 높일 수 있고, 버섯과 이끼 등도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구후영이 검 찾는 것도 잊고 장작을 열심히 주울 때.
[어서 피하게. 멀리 갈수록 좋네.]
귓가에 전음이 울렸다.
더는 멍청한 짓을 안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구후영은 전음을 듣자마자 바로 장작을 내려놓고 달렸다.
'전음은 사부도 못 쓰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고수였구나.'
꽤 멀리 도망치고 나서야 구후영은 사내의 전음이 귓가에서 속삭이듯이 잘 들렸음을 깨달았다.
'저런 고수가 어쩌다가 이런 곳에 갇혔지?'
구후영이 사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던 그때, 교태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풍 대협, 용안이 여전하네요. 인육은 먹을 만합니까?"
"계속 간만 보는 것도 지겹지 않나? 이제 그만 모든 걸 걸고 덤벼볼 생각은 없나?"
"글쎄요. 풍 대협이 어떻게 하냐에 달렸겠죠. 제 비월부飛月斧에 팔 하나 정도 내주면 그땐 신중히 고려해 볼게요."
구후영은 눈을 최대한 찌푸렸다. 그랬더니 오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한 쌍의 남녀가 어렴풋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중년 사내와 대치하는 여인은 키가 구후영과 비슷할 정도로 컸고 소매 없이 양팔을 고스란히 드러낸 중원의 것이 분명히 아닌 옷차림이었다.
'백화궁 궁주가 아닌가?'
구후영이 엿들은 바로 백화궁 궁주의 절기는 적혈장이다. 그런데 여인은 비월부로 추정하는 한 쌍의 무기를 암기처럼 던졌다.
중년 사내는 물러서는 대신 상체를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며 앞으로 세 걸음 전진했다.
그에 맞춰 여인도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기세흉흉하게 날아가던 비월부가 중년 사내를 스치고 지나갔다.
구후영이 시작부터 무기를 버리는 여인의 행동에 커다란 의문을 품으려 할 때, 중년 사내를 지나친 비월부가 마치 누가 끈으로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돌아왔다.
중년 사내는 등에 눈이라도 달린 듯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흐느적거리며 비월부를 피했고, 동시에 뒤로 열 걸음 정도 물러났다.
여인 역시 황급히 앞으로 열 걸음 걸어 간격을 유지했다.
'가까운 건 기습이 두려워서일 텐데, 멀면 또 뭐가 안 되지?'
구후영의 고민은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았고, 그사이 여인은 비월부를 끊임없이 던지고, 중년 사내는 비월부를 피하면서 앞뒤로 움직였다. 여인은 비월부를 던지는 것보다 중년 사내와의 간격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긴장한 마음으로 대결을 주시하던 구후영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자 따분해서 슬슬 하품이 나오려 했다.
"지겹지도 않아? 벌써 몇 년째야."
"지겨우면 그냥 곱게 뒈지든가."
"꼴이 이런데 어떻게 곱게 뒈져?"
'머리싸움이다.'
구후영은 둘이 왜 이러는지 문득 깨달았다.
비월부로는 사내의 털끝 하나 건드리기 어렵다. 이는 사내는 물론이고 여인도 아는 일이다. 여인은 그저 가까이 접근해 목숨 걸고 싸워도 될는지 궁금해서 떠보는 거고, 사내는 약한 척도 하고 강한 척도 하면서 여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둘의 용의를 깨달은 구후영이 다시 대결에 집중하려는데, 여인이 비월부를 등에 멨다.
"어이쿠. 갈 시간인가?"
"다음에 보자."
"그러지 말고 그냥 확 덮쳐. 이러다 내가 굶어서 죽기라도 하면 이 막대한 내공이 그냥 사라지잖아. 아깝지도 않아?"
여인은 중년 사내의 놀림에 이마를 찌푸리며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나오지 말게. 아직 안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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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검 좀 쓰나?"
"내공은 형편없지만, 검술은 좀 합니다."
"우선 내 소개를 하지. 난 풍불지라고 하네. 부끄럽지만, 강호에선 신검으로 불리지."
구후영은 입을 딱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 신검이 이런 꼴일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뭐, 나도 가끔 잠을 덜 깼을 땐 지금이 꿈속인지 싶다니까."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그럼. 아직 오십도 안 됐네."
임초현도 사십이 코앞인 걸 떠올리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다.
"보다시피 난 여기 갇혔네. 다리가 부러져서 경공을 제대로 펼칠 수 없어 여길 벗어나는 일은 요원하지. 게다가 백화궁의 말벌이 제자의 기운을 흡수한 날마다 날 찾아와서 괴롭히는 바람에 힘도 안 모이네."
풍불지의 다리가 엉망이 된 건 보름 간격으로 찾아오는 백화궁 궁주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멀쩡하게 아물었을 텐데, 백화궁 궁주의 위협에 대처하느라 무리한 바람에 뼈가 잘못 붙었다.
"나랑 같은 구멍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걸 보면 무언가 있을 거야. 내공이 별로 안 느껴지는 걸 보면 외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것 같은데, 맞나?"
구후영은 아니라고 하려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청석유 덕분에 몸 자체가 튼튼해졌기에 외공 고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시간이 보름밖에 없으니 자네한테 참결斬訣만 가르칠 작정이네."
"사부를 모신 몸이라 함부로 배움을 청하기 어렵습니다."
"괜찮아. 그냥 내가 살려고 가르치는 거니까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자넨 쓸데없이 착해서 탈이야."
"그러시다면 가르침을 청합니다."
"일단 자네 검부터 찾게. 아마 물에 떨어졌을 거야."
구후영은 나뭇가지를 들고 웅덩이 바닥들을 훑었다. 다행히 웅덩이가 많지 않아 품을 얼마 안 팔고 곧장 검을 찾았다.
"참결은 쉽게 말하면 베기야. 난 어떻게 하면 검으로 잘 벨지 연구했고, 작은 성과가 있어서 내 나름대로 참결을 만들었네."
풍불지는 자신이 창안한 참결을 풀이해서 구후영에게 들려줬다.
'견해가 남다르다.'
풍불지가 생각하는 검의 쓰임새는 구후영이 품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구후영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재삼 확신했다.
"미안하네. 확실한 초식 같은 걸 가르쳤으면 서로 편했을 텐데. 쓸데없이 경지가 높아서 초식은 다 잊은 상태라."
"아닙니다. 무공에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덕분에 눈을 크게 떴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네. 보름 뒤에 말벌이 다시 왔을 때 자네가 그 검으로 비월부를 베야 하네."
"왜 풍 선배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
"예전에 비월부를 벤 적이 있지. 덕분에 내 검도 부서졌지만. 그런데 보름 후에 똑같은 비월부를 들고 또 나타났지 뭐야."
부서진 검이 생각나는지 풍불지의 얼굴엔 애석함이 가득했다.
"자네가 하면 다르지. 비월부를 벨 정도의 고수면 큰 변수가 되거든. 그러면 당분간 못 찾아올 거고, 그사이 내 다리를 고치는 거야. 그럼 그년을 확실히 해치우고 여길 떠날 수 있어."
"그냥 떠나는 건 안 됩니까?"
"자네 적혈장의 무서움을 모르는군. 출구에 몰래 숨었다가 확 덮치면 어쩌려고. 내공이 많아서 한 번은 버텼지만, 두 번 맞으면 나도 염라대왕 만나러 가야 한다네."
그때, 약초꾼이 약한 신음을 흘렸다.
침술 덕분에 뜨겁던 몸이 식었고, 철 그릇에 버섯을 푹 고아 먹이자 숨도 고르게 변했다.
그런데도 깰 기미를 전혀 안 보여 낙심하던 차인데,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접니다. 알아보시겠어요?"
황급히 다가간 구후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젠장. 또 꿈이네."
약초꾼이 갈라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꿈 아닙니다."
약초꾼은 놀랐는지 한참이나 기침했다. 이러다 허파까지 다 토하는 게 아닌지 슬슬 걱정될 무렵, 겨우 기침을 멈추고 구후영이 건네는 물을 마셨다.
"의원. 여긴 어떻게 온 거요?"
"동생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안 그래도 길잡이 형제가 알아보고 있소."
약초꾼의 말에서 구후영은 작은 희망의 불씨를 봤다.
"뭘 말입니까?"
"오해가 좀 있었소."
약초꾼은 숨이 가쁜지 잠깐 쉬고 말을 이었다.
"형제는 하오문에서 장로 정도로 지위가 높은 자들이오. 태원부에 도착했을 때 의원이 필요해서 하오문에 젊고 튼튼하고 실력이 괜찮은 의원을 물색해 협박하라고 했소. 우린 당연히 의원이 그 의원인 줄 알았는데, 큰 오해였소."
"뭐가 오해라는 겁니까?"
"하오문에서 협박한 건 다른 사람이었소. 납치한 것도 의원 동생이 아니었소."
구후영은 이게 기뻐할 일인지 걱정할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 의원이 낙화문의 대제자 유저요?"
"맞습니다."
"중간에서 틀어진 걸 알고 길잡이 형제가 일의 전모를 추적하고 있소. 마지막에 받은 소식으론 의원의 동생을 납치한 거로 추정하는 자들을 발견했고 행적을 쫓는 중이라고 했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요."
잠자코 듣던 풍불지가 큰소리로 웃었다.
"젊은 친구. 내가 말했지. 착한 자에겐 착한 응보가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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