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난수覆水難收
침선가보浸船可補 복수난수覆水難收.
구멍 난 배에 물이 들어오면 막아 만회할 수 있지만,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짓을 늘 후회하며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한다.
'무슨 사고가 터진 건가?'
어마어마한 경공을 펼쳐 나타나 곧장 소림 방장에게 달려간 두 스님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하필 이때.'
원경을 궁지로 몰아가던 방장은 중요한 때에 나타나 흐름을 끊은 둘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다급해 보이는 기색에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서 낮은 소리로 캐물었다.
"무슨 일이냐?"
고수 주제에 헐떡이며 나타난 두 스님은 접객화상과 반야당 부당주 원율이었다.
"십팔동인진을 확인하고 왔소."
십팔동인진과 달마동 모두 반야당의 관할이다. 원철이 현재 의식불명의 상태기에 부당주인 원율이 나섰고, 접객화상 역시 원경을 보자마자 불안한 느낌이 들어 원율과 함께 움직였다.
"원경이 진짜 진법을 통과했느냐?"
방장의 질문에 원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방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질렸다.
"맞소. 동인의 가슴에서 卍자 모양으로 양각된 흔적을 발견했소."
법여대사는 금강인을 이루면 타격 부위 대신 주변이 파괴되어 양각된 十자 문양을 남기고 연화인을 이루면 음각된 品자 문양을 남길 거라고 했다.
"금강인이 아닌지도 모르잖아."
그렇기에 방장은 원경이 금강인을 이뤘다는 사실을 극력 부정하려 했다.
"옳은지도 모르잖소."
그러나 원율의 강한 주장에 원경이 나찰진의 공격을 맨몸으로 감당했던 광경이 떠올라 방장은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원경이 진짜 금강인을 이뤘다면.'
방장은 주해본에 눈이 멀어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하나씩 떠올리며 이를 꽉 악물었다.
태극혜검을 얻었다고 무당이 단숨에 강해지지 못한다. 비록 구후영 때문에 그러한 믿음이 잠깐 흔들리긴 했으나, 이건 구후영이 특별한 거다.
마찬가지로 혜가의 주해본을 얻는다고 소림도 단번에 강해지진 않는다. 물론, 한 선생이 미리 건넨 일부만으로도 얻은 게 많아서 기대가 크긴 하나, 제자들이 역근경과 세수경을 수련하고 거기에 알맞게 무공을 수정하는 일이 한두 해에 이뤄지는 건 절대 아니다.
게다가 주해본이 있다고 칠십이절기의 끝인 금강인과 연화인을 반드시 얻는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대수인을 창안한 자가 자신의 무공을 대성하지 못했던 것처럼 법여대사 역시 금강인과 연화인 중 하나도 얻지 못했고, 천 년 가까운 역사에서 이를 해낸 자는 원경이 최초다.
소림 입장에선 불확실한 주해본보다 이립도 안 된 나이에 금강인을 얻은 원경이 백 배는 귀한 존재인데, 자기 손으로 헌신짝처럼 내다 버렸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
이대로 끝내자는 구후영의 제안을 아까 받아들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되돌릴 방법이 전혀 없다.
'차라리 저들을 죽이고 모든 걸 덮는다.'
이대로 구후영과 원경을 죽이면 소림의 평판에 타격이 꽤 크겠지만, 백팔나한진을 파훼하고 소림의 거짓을 폭로할 둘이 살아있는 것보단 훨씬 낫다. 거기에 주해본도 얻을 수 있으니 손해보다는 이득이 크다.
짧은 고민으로 선택을 마친 방장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이대로 간다."
방장의 결정에 원병은 갑자기 탓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냥 계획대로 구후영을 흉수로 몰 것이지, 왜 원경을 지목해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이는 접객화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사형의 독단이 끝내 독이 되어 돌아오는구나.'
무공이 원철과 원병보다 아래인 원호가 방장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눈치로 분위기가 이상해진 걸 깨달은 원호는 입을 열어 자신을 변호했다.
"어차피 원경을 봉마림으로 보낸 일은 해석이 어렵다."
"원경은 말 떼기 전부터 소림에서 자라 정이 깊소. 소림을 위한 일이었다고 설명하고 잘못을 구하면 분명히 용서할 거요."
어느 정도 장성하고 글을 익힌 후에야 출가한 대부분 소림 스님과 달리, 원경은 젖을 갓 뗀 아기 때부터 소림에서 자랐다.
평소 술과 고기를 탐하고 불손한 언행을 일삼는 등 행실이 불량하긴 하나, 불경 공부와 무공 수련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임했으며 소림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다.
"사숙의 가슴에 검을 꽂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도 그럴까?"
한 선생의 꾐에 넘어가서 공유의 시신에 검을 꽂은 사람이 방장임을 알면 원경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걸 저놈이 어떻게 알겠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더구나 이 일은 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소림의 스님만 해도 여섯 명이나 되고, 외인으로는 일단 한 선생이 안다.
"주해본을 얻으면 금강인뿐이 아니라 연화인을 얻는 방법까지 찾아낼지 모른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미래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
약한 인간은 강한 것에 집착하고, 강한 인간은 완전한 것에 집착한다.
중원 최강에 수많은 고수를 보유한 소림이기에 강함보다는 완전함에 대한 집착이 더 컸다.
그 탓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던 원병과 접객화상도 결국엔 고개를 끄덕여 방장의 결정에 동의했다.
"원정, 네가 가서 사숙들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라."
방장의 지시에 접객화상이 슬그머니 연무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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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괜찮으십니까?"
원경의 눈에 굵은 물줄기가 흐르자 구후영이 깜짝 놀라며 질문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지 어쩌겠느냐."
구후영은 전음을 엿듣지 못한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소림 수뇌부는 지레 겁먹고 전음 대신 육성으로 대화했다.
문제는 십팔동인진에 이어 백팔나한진을 상대하며 일시에 감각이 월등해진 원경이었다. 거리가 멀고 스님들이 입안으로 뭉개며 속삭였지만, 청력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최고조에 이른 원경은 대화 내용을 얼추 엿들었다.
원율과 원정이 반 각 정도만 늦게 나타났어도 원경의 감각이 가라앉아 대화가 누설될 걱정이 전혀 없었을 텐데, 둘이 더없이 서두른 바람에 이런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젠 망설일 이유가 없구나.'
마음을 굳힌 원경이 눈물을 닦고 옥무영에게 부탁했다.
"도형, 혹시 도포 남는 거 있으면 하나 주시오."
뜻밖의 요구에도 옥무영은 망설임 없이 자신이 입은 도포를 벗어 원경에게 넘겼다.
"나도 이젠 도사가 아니라서 버리려던 참이었소."
"고맙소."
원경도 전혀 사양하지 않고 옥무영이 건넨 도포를 받아 알몸을 감쌌다.
그에 상황이 재밌어졌다.
도사 차림이었던 옥무영은 원병의 기습에 도관이 망가진 데다가 도포까지 벗어 원경에게 양보한 탓에 하얀 속옷 차림이 되었다. 비록 살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으나 기괴한 광경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머리가 조금 자라긴 했으나 스님이 분명한 원경은 도포를 걸쳤다. 원경이 소림 방장과 같은 배분에 공유의 유일한 제자임을 생각하면 무당 장문이 입었던 도복을 걸친 게 황당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셋 중 그나마 나은 구후영도 옷이 여기저기 찢기고 머리도 산발이어서 몹시 궁해 보였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한 명은 소림을 대표하는 고수의 기습을 받고도 멀쩡하고, 두 명은 무려 백팔나한진을 와해했다.
당연히 셋의 현재 차림새 때문에 위화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모든 게 그토록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였다.
"소승이 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까 하오."
도포를 잘 꾸며 나름대로 멋을 낸 원경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말했다.
"원호 사형은 혹시 반대할 의향이 있소?"
원경이 평소 말투로 돌아가자 방장은 속으로 안도했다.
'네가 이러다 본색을 드러내야 소림이 하나라도 욕을 덜 먹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하거라."
어차피 원로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 원로들이 방장이 오란다고 해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원경이 나서서 시간을 벌어준다고 하니 방장은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개봉부에서 생긴 일이오. 개봉부엔 당나라 시절 열두 명의 재상을 배출한 정씨鄭氏 가문이 있소."
원경의 말에 검은 두건이 몸을 흠칫 떨었다.
'저놈이 왜 갑자기 우리 가문을 들먹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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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장을 벗어난 접객화상은 경공을 펼쳐 달마원으로 달렸다.
달마원은 원래 칠십이절기를 연구하는 목적으로 송나라 때 만들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방장보다 배분이 높은 원로들이 만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원정이냐?"
문턱을 넘자마자 유유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접객화상은 경외의 마음이 한결 커졌다.
"사질이 사숙께 문안을 여쭙습니다."
원정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인사를 올렸다.
"허례허식은 됐고, 원호가 일을 그르친 거냐?"
사숙이 단도직입으로 묻자 접객화상도 일시에 대답이 궁해 우물쭈물 망설였다.
"우리가 나서야 할 정도로 일이 망가진 거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접객화상이 현재 일어난 일을 간략히 서술했다. 물론, 방장이 공유의 가슴에 검을 꽂은 사실만은 비밀로 했다.
"나이를 먹으면 눈이 침침하고 코가 무뎌지고 귀도 둔해진다. 내공이 아무리 깊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
접객화상은 대꾸할 생각도 못 하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흐릿해지는 동시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선명해진다."
'대단한 경지에 이르신 모양이구나.'
"세상엔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흐름이란 게 있다. 네 얘기를 듣고 보니 지금 소림의 처지가 딱 그렇구나."
"네?"
"소림이 흐름을 만들었는데 상대는 쓸려가지 않았다. 이는 상대가 더 강하다는 뜻 아니겠느냐?"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그저 개인입니다."
"중원에서 소림이 제일 강하다."
사숙의 말에 접객화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소림이 황제를 하지 않느냐."
역모죄로 몰려도 억울할 게 하나 없는 발언에 접객화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백성을 배부르게 하고 따뜻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 황제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소림을 두 번이나 불태운 명교가 왜 천산까지 쫓겨났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그래. 명교가 몰려올 때 싸우는 것보다 피하는 게 이득이라고 여겨서 우리가 절간을 비웠지. 싸우면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말이지."
무당이 소림한테 적당히 져주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때론 지는 게 이득인 일도 있는 법이다."
사숙의 말을 들을수록 접객화상은 점점 머리가 어지러웠다.
'도대체 뭘 말씀하려는 거지?'
"원호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다만, 우린 원호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다."
"거절한다는 말씀입니까?"
"너는 여전히 영리함이 부족하구나."
사숙의 질책에 접객화상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강한 흐름은 거스르는 게 아니라 따르는 거다. 소림의 흐름이 실패했으니 이번엔 상대가 흐름을 만들 차례다."
'고작 셋이서 무슨 흐름을 만든다고.'
"어떤 흐름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 지금 확실한 건, 우린 강한 흐름을 거스를 생각이 전혀 없다."
- 작가의말
재심 님이 부족한 글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성원에 힘입어 글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중이염은 이틀 만에 많이 호전됐습니다. 역시 예년과 달리 올해 건강해진 건 틀림없습니다. 항생제 부작용도 고작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꾸 곤해지는 것으로 그쳤네요.
일단 최선을 다해 소림 파트를 끝낸 다음, 컨디션을 보고 향후 연재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단, 올해 안으로 완결하는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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