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조유심佛祖有心
일체묘욕여염수一切妙慾如鹽水
유향수지유증탐愈享受之愈增貪
모든 그릇된 욕망은 소금물과 같아 누릴수록 오히려 더욱더 탐하게 된다.
영생탐련제사물令生貪戀諸事物
즉각방기불자행卽刻放棄佛子行
미련을 갖게 하는 모든 사물을 즉각 버리는 것이 바로 불자의 길이다.
소림에서 자란 원경은 동자승들의 심한 배척을 받았다.
돌이 되기 전부터 소림에서 자랐으니 누구보다 근본이 두텁다고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완전히 반대다.
다른 동자승은 해마다 소림에 거액을 보시하는 부모나 친척이 뒤에서 버텨주는데, 원경은 말 그대로 사고무친의 천애고아다.
아마 공유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면 쭉 동자승으로 지내다가 열네 살쯤에 소림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로 원경은 소림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았다. 소림 자체는 좋아하지만, 소림에 속한 인물은 공유 빼고 다 싫었다고 할까.
하지만.
'원호 사형이 진원을 잃어가며 내 목숨을 구했다.'
보리심공은 소림의 모든 내공 중 최고로 알려졌다. 소림의 사람과 행사에 불만이 많은 원경이지만, 자신이어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하려고 보리심공을 포기할지는 확신이 없었다.
'구명지은을 받았으니 보답하는 건 맞는데.'
공유의 가슴에 검을 꽂은 사람이 하필이면 원호다.
'동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원경은 고개를 돌려 구후영을 바라봤다. 하루 사이에 소림의 최고수인 원철을 이기고 백팔나한진마저 완파한 사람답지 않게, 구후영은 어느 평범한 봄날의 오후에 뒤뜰로 산책 나온 한량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
덕분에 원경도 마음의 평온을 얻으며 마침내 결정했다.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
우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방장이 되어 소림의 기강을 바로 세운 다음, 모든 걸 버리고 환속해서 원호를 찾아 죽인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았다고 하니.'
긴 고민을 마친 원경이 십 년 동안 소림을 위해 모든 걸 바치기로 마음먹고 그걸 발표하려던 찰나에.
"옥 형. 우리가 왔소."
불청객이 나타나 방해했다.
"너희가 어떻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옥무영이 깜짝 놀라 외쳤다.
"우리도 도사 노릇이 싫증 났소."
아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던 무당의 무리 중 여덟 명이 다시 연무장에 나타났다.
"나야 신검이 사부니까 무당이 아쉽지 않다만, 너희는 왜?"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옥무영의 말에 무당 제자였던 자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반기지는 못할망정 그게 무슨 개소리요."
"우리도 왔소."
대화 중에 길잡이 형제와 포두 복장으로 갈아입은 최종필이 행색이 다소 남루한 여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동행한 거요?"
옥무영의 질문에 여인을 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옥무영이 궁금해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최종필 일행은 십팔동인진을 통과해 달마동을 나온 다음, 등봉현까지 이십 리가 넘은 거리를 일각도 안 되어 주파했다.
이는 일류의 경지에 이른 셋한테도 버거운 일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무공을 전혀 모르는 여인을 데리고 다시 소림으로 돌아가야 했다.
늦으면 구후 대협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걱정으로 다급했던 셋이 여인을 태울 노새라도 구하려고 애쓰던 중, 우연히 등봉현을 떠나는 무당 제자들을 만났다.
최종필이 이게 원 떡이냐 하며 두꺼운 낯짝을 앞세워 무당 제자들한테 도와 달라고 당당히 요청했고, 최종필의 정성에 감동한 제자 여덟이 결연히 도복을 벗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옥무영과 같은 배분의 무당 고수 여덟이 번갈아 가며 여인을 업고 뛴 덕분에 일행은 원경의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했다.
'그래. 소림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자.'
덕분에 원경이 마음을 바꿨다.
"원경입니다. 저를 기억합니까?"
"네. 자주 와서 술을."
남루한 행색의 여인이 대답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원경이 술을 마시는 건 소림은 물론이고 등봉현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대놓고 할 얘기는 아니다.
"시주는 가끔 등봉현 동북쪽에 있는 작은 묘에 가서 부처님께 치성을 드렸지요?"
"네."
"혹시 그때 부처님께 한 아가씨의 얘기를 여기서 들려줄 수 있습니까?"
원경의 말에 여인이 몸을 움츠리고 뒷걸음쳤다.
그에 옥무영이 나섰다.
"안녕하시오. 난 무당의 장문이었던 옥무영이라고 하오. 여긴 나와 함께 천하제일고수 신검을 사부로 둔 구후영인데, 작년에 황제 폐하의 목숨을 살린 의원이기도 하오."
"천녀가 두 분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여인이 옥무영과 구후영 쪽으로 몸을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손의 위치나 몸을 숙이는 각도나 여염집 여인이라고 여기기엔 너무 깔끔했다.
"내 동생은 대유방의 방주기도 한데, 거긴 속한 방도가 수만 명인 강호에서 가장 큰 문파요. 황실과 무당과 대유방이 그대 편을 들 것이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소."
"그렇습니까."
겁에 질려 떨던 모습은 사라졌으나, 옥무영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말하기 저어된다면 여기 원경 스님이 들은 대로 말할 테니, 맞는지만 확인해주시오. 사실을 말한다면 절대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을 것을 저기 계신 소림의 최고 어르신인 본선대사께서 약속해주실 거요."
"잠깐. 먼저 저 여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게 순서 아니겠소?"
본선이 말했다.
그에 계율원주가 나섰다.
"밖으로 나갈 때 종종 봤습니다. 저 여인은 등봉현의 객잔에서 일하는 과부입니다."
"정가장 소가주께도 묻겠네. 저 여인이 정가장 사람이 맞소?"
본선의 질문에 깜짝 놀란 정해원이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허. 젊은 소가주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동행한 총관이 누구요?"
옥무영의 질문에 불혹이 훌쩍 넘은 중년 사내가 마지못해 나섰다.
"나요."
"혹시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옥무영은 고개를 홱 돌려 총관이 아닌 여인한테 질문했다.
여인이 입을 안 열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말해주시겠소?"
옥무영의 재촉에 여인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가장의 창고를 관리하는 강 총관의 아들입니다."
여인의 말에 총관은 물론이고 정해원도 깜짝 놀랐다. 총관은 아버지가 밖에서 몰래 낳은 자식이라 진정한 신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취연翠蓮이구나."
강 총관이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그런데 넌 아가씨가 열 살 되셨을 때 정가장을 떠나지 않았느냐?"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표정에 강 총관이 설명을 보탰다.
"아가씨는 몸이 허약하여 열두 살까지 장원을 떠난 적 없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사실이면 내가 들은 게 모두 거짓이란 건데.'
그럼에도 여인을 믿는 마음이 여전히 커서 원경이 곤혹을 느끼던 그때.
"천녀가 일전에 몸이 아파 의원한테 병을 보였는데,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시원하게 다 얘기하고 가겠습니다."
끝내 마음을 다잡은 여인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부처님께도 얘기한 적 없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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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연인 참 좋겠다."
아가씨가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떠나면 아가씨도 곧 건강해질 겁니다."
취연의 팔자는 오행 중에 토土가 강한데, 모시는 아가씨는 수水의 기운이 강하다. 정가장은 취연이 아가씨의 기운을 눌러 치료를 방해한다고 여겼고, 멀리 시집보내기로 했다.
"취연이 없으면 누가 나랑 놀아주지? 다른 애들은 나랑 말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그건 애들이 아가씨가 얼마나 좋은 분인지 몰라서 그래요. 괜히 말실수하면 꾸중 들을까 봐 조심하는 거지 아가씨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아가씨가 열 살 되던 해, 취연은 수백 리 밖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한테 시집가게 되었다.
"아저씨, 날도 더운데 잠깐 쉴까요?"
마차를 타고 관도를 따라 이동하던 중, 시원한 개울이 나오자 취연은 더위를 식히고 싶었다.
"그래. 말도 지쳤는데 좀 쉬자꾸나."
마부가 마차를 길가에 세운 다음 말을 끌고 물이 깊은 하류로 갔다. 물도 먹일 겸 시원하게 목욕도 시켜주려는 생각 같았다.
마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취연은 손수건을 적셔서 얼굴과 목을 시원하게 문지른 다음,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갔다.
'아가씨는 아픈 게 나으셨을까?'
그때,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굵은 팔이 취연의 허리를 감쌌다. 이어서 주변 경관이 빠르게 움직였고, 곧장 어두컴컴한 동굴에 이르렀다.
검고 두꺼운 천이 취연의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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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에서 사흘 정도 있었습니다. 음식은커녕 물도 못 마셨고, 눈은 계속 가려진 채였습니다."
취연의 이야기에 연무장이 잠잠해졌다.
이 자리엔 청루를 기웃거리는 호색한이 한둘이 아니고, 여염집 여인을 유혹해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칭 풍류남아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을 납치해 겁탈하는 저열한 짓은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워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밖으로 나갔더니 마부가 관아에 신고했더군요. 당시 경황이 없었던 저는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남자 집에 도착했는데, 더러운 년이라며 저를 백정한테 팔아버렸습니다."
돈에 팔린 여인은 백정과 함께 등봉현에 왔다. 원래 객잔을 위해 도축하던 백정이 병으로 죽으며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객잔에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악몽 꿀 때마다 들리는 그 목소리 말입니다. 저는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다가 밤에 남편한테 물었습니다. 낮에 온 사람이 누구냐고."
취연이 다 포기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소림의 나한당 당주라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저는 미쳐버렸습니다."
"미쳤다고?"
본선의 질문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아이가 태어나면서 광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납치되어 겁탈당하고, 남편이란 작자한테 버림받아 백정한테 넘겨진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이어가던 여인이 끝내 눈물을 흘렸다.
"칠삭둥이라고 하기엔 아이가 너무 컸어요. 남편은 밤마다 술을 마시고 저를 때렸고, 심지어 아이한테까지 손댔습니다."
'사실이면 죽인다.'
구후영이 최대한 살기를 숨긴 채 원병을 일별했다.
'대결을 핑계로 죽여야지.'
그건 옥무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는 남편이 아이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반항했는데, 남편이 밀려 쓰러지면서 탁자에 머리를 박았습니다. 머리 가죽이 째져서 피가 콸콸 났는데, 아이도 숨이 미약했습니다. 전 남편을 버리고 아기를 안은 채 소림으로 왔습니다."
여인의 이어지는 말에 둘 다 살심이 깨졌다.
"소림에 와서 문을 두드리려 했는데, 갑자기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문 앞에 놓은 다음 도망치다시피 해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 보니 남편은 이미 죽었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광증이 도질 때마다 사람 없는 묘에 찾아갔고, 제 이야기를 아가씨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안정이 돌아오더군요."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원경이 딱딱한 얼굴로 질문했다.
"죽었겠죠. 뼈가 부러지고 입으로 피도 토했는데. 돌도 안 찬 어린 것이 무슨 재주로 살아났겠습니까."
- 작가의말
사실 이 부분을 쓸 때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올리려니 갑자기 걱정이 생기네요.
천룡팔부를 읽은 적 있으니 전혀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인물이나 줄거리나 진행을 그대로 답습하진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이야기 진행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도 생각하고요. 이러한 진행에 대한 개연성도 충분히 확보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사성을 부인할 순 없으니 어떤 평가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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