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전성이斗轉星移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을 이룬 천추天樞·천선天璇·천기天璣·천권天權·옥형玉衡·개양開陽·요광搖光의 일곱 별을 말하는데, 천추부터 천권까지 국자 머리를 이루고 옥형부터 요광까지 국자 자루를 이룬다.
북두칠성은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데, 봄엔 자루가 동을 가리키고, 여름엔 남을 가리키고, 가을엔 서를 가리키고, 겨울엔 북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을 두고 두전성이라고 하는데, 이십사 절기節氣가 바로 두전성이를 연구하면서 나왔다.
"세 분 중 아무나 종남의 칠성진법을 파훼하면 거래를 받아들이겠소."
고심 끝에 나온 막불손의 말에 구후영은 다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엔 싸워야 하는 거요?"
구후영은 소림에서 이겨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겸허히 받아들이기까지 했지만, 사람을 구하는 데 쓰는 약재를 두고도 무력을 겨루려 하자 가슴이 답답했다.
"어魚와 웅장熊掌을 겸득할 수 없다면 당연히 웅장을 취해야지 않겠소?"
맹자는 물고기도 갖고 싶고 웅장도 갖고 싶은데, 둘 다 얻지 못할 땐 당연히 웅장을 취해야지 않겠냐고 했다.
이어서 내 목숨도 소중하고 의義(올바름)도 소중한데,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나는 목숨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무슨 영문인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귀하긴 하나 아예 못 구할 정도까진 아닌 칠 년근 설련이 종남엔 어와 웅장까지 들먹여야 하는 물건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급한 건 우리다.'
칠 년근 설련만 구하는 일이라면 급할 거 없다. 그러나 현재 일행은 고려삼과 영지도 구해야 한다. 칠 년근 설련을 일찍 구하면 더 많은 인력을 남은 두 약재를 찾는 데 쓸 수 있다.
"승부는 어떻게 판단하는 거요?"
이러한 고려로 옥무영은 상대의 영문 모를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서로 어느 정도 셈이 있지 않겠소?"
말을 마친 막불손이 객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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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칠검이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오."
채 일각도 안 되어 도복으로 갈아입은 막불손이 여섯 명의 중년 도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후배가 선배들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오."
원경은 내상이 완치하지 않았고 옥무영은 진법에 관해 아는 바가 적다.
짧은 상의 끝에 대결엔 구후영이 나서기로 했다.
"어서 오시오."
막불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후영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일곱 명 사이에 나타났다.
'응?'
옥무영은 알아서 일곱 명 가운데로 들어가 포위를 자초한 구후영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칠성검진에 관해 들은 얘기가 있소?"
감탄한 기색으로 묻는 막불손 덕분에 구후영이 잘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내 눈에만 보이는 진실은 없고, 내 발만 닿을 수 있는 봉우리는 없소."
어느새 전대모검을 뽑아 손에 든 구후영이 여상스럽게 말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업신여기다간 여러분이 다칠지도 모르니, 후생이 오만하다 여기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시오."
옥무영과 원경은 평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구후영의 모습에 속으로 더없이 감탄했다.
'동생은 검을 들고 싸움에 임하는 순간 이기는 일만 생각하는구나.'
"현현자와 내공 대결을 벌이고도 아무런 탈도 없었던 구후 장문인데, 누가 감히 얕보겠소."
막불손은 그날 대결을 못 보고 말로만 들은 사제들이 구후영을 얕보다가 경을 치를까 봐 걱정되어 이러한 말을 뱉었다.
그러나 막불손의 노파심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이 상한 누군가가 검을 뽑아 섣부르게 공격했다.
'멍청이.'
지금 이대로 싸우면 칠 대 일의 싸움이다.
사실 이것만 해도 구후영에게 아주 불리한 상황이다. 완숙한 절정에 이른 데다가 칠성검진을 연습하며 각자 상이한 깨달음을 얻어 같은 초식도 다르게 펼치는 일곱 고수와 싸우는 건 웬만한 노강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막불손이 느끼기에 구후영이 웬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명확한 근거 없이 그저 느낌뿐이긴 하나, 막불손은 감이 좋은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후영은 자신을 찌르는 검을 뒷걸음질로 가볍게 해결했고.
회심의 찌르기가 실패하며 자존심이 한껏 상한 종남 무인이 이를 악물고 공격을 이어갔다.
'삼청검법三淸劍法?'
반항하는 먹잇감의 숨통을 자르는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공격에 종남을 꽤 잘 아는 옥무영은 삼청검법이 떠올랐다.
삼청검법은 총 열여덟 개의 찌르기로만 이뤄졌는데, 모든 찌르기가 마지막 순간에 세 개의 변화를 보일 수 있어 사실상 쉰네 개의 찌르기나 다름없다.
특히 똑같은 찌르긴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밖의 곳을 노리면 아무리 노련한 고수여도 처음 접할 땐 허둥대기 마련인데.
구후영은 아니었다.
"상대가 초식을 눈에 익히길 기다려서 손 쓸 셈이야?"
검을 잡지 않은 왼손을 뒷짐 진 구후영이 한가한 걸음으로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가볍게 피하자, 막불손이 사제들에게 호통치며 공격을 개시했다.
그에 다른 사제들도 검을 들고 공격에 가담하려 했으나, 구후영에게 틈이 보이지 않았다.
"뭣 하는 거야?"
막불손의 호통에 사제 중 한 명이 검을 들고 공격에 억지로 가담했다.
구후영은 세 개 방위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찌르기를 보법으로만 피하며 삼청검법을 눈에 새겼다.
그렇게 십수 합이 지나 검법이 눈에 익자 견제를 살짝 풀었다. 그러자 구후영에게서 틈을 발견한 누군가가 추가로 공격에 가담했다.
'막불손이 가장 강하고, 제일 먼저 공격한 자가 가장 약하구나.'
제일 먼저 공격한 자는 구후영의 견제를 모를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그게 꼭 강함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 무공에 관한 이해는 일곱 중에서 제일 떨어지는 게 확실하다.
'생각보다 쉬운데?'
상대가 넷이 되었는데도 구후영은 손에 든 전대모검을 휘두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지금이다!"
구후영이 종남칠검에 실망하려던 찰나에, 막불손이 내공을 실어 외쳤다.
그에 남은 세 무인이 위치를 바꿔 새롭게 칠성검진을 이뤘다.
"종남의 칠성검진이 허명뿐은 아니니, 구후 장문도 조심하시오."
'사제의 계책이 간파당했구나.'
네 명의 절정고수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검 한 번 휘두르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넘쳤던 구후영이다. 그러나 상대가 구후영을 밖으로 밀어내며 칠성검진을 발동하자 검을 분주하게 휘두를 뿐만 아니라 연신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초식이 눈에 익었겠지?'
소림의 나한진과 무당의 팔괘진을 포함해 대부분 진법은 상대를 중간에 가둔다.
반면, 칠성진은 상대를 밖에 둔다.
구후영이 처음에 일곱 무인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던 옥무영이지만, 곧 그게 칠성검진의 약점임을 깨달았고, 종남의 검법을 눈에 익히려는 목적도 간파했다.
그런데 그 속셈을 알아차린 게 옥무영뿐이 아니어서, 막불손이 공격에 가담하지 않은 세 사제에게 전음으로 지시를 내려 표杓를 이루게 했다.
결국, 구후영은 제대로 된 칠성검진을 상대해야 했다.
"그대들이 칠성진을 제대로 익혔다고 생각하시오?"
상대가 칠성검진을 이루면서 갑작스럽게 커진 압박에 잠시 낭패를 보였던 구후영이다. 그러나 이내 유리한 방위를 잡고 일곱 명의 유기적인 공격에 적절히 대응했다.
"천강구절과 똑같은 소릴 하는군."
노도인이 중얼거렸다.
"천강구절이 뭐라고 했소?"
옥무영이 대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노도인에게 질문했다.
"천강구절도 틀렸다고만 할 뿐 어디가 틀렸는지 알려주진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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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많은 변화를 보여도, 검은 결국 한 자루다.'
종남의 검법은 대체로 변화가 많았다. 낙화검과 비교하면 간결한 편이긴 하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변화의 가능성을 놓지 않아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셋으로 보이고 다섯으로 보여도 결국 마지막엔 한 자루임을 명심하면 대응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구후영의 검 역시 한 자루라는 것이다.
상대는 네 명이 구후영을 견제하고 세 명이 공격하는 형식으로 대결을 팽팽하게 이끌어갔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니 이건 비긴 거고.'
고수 간의 대결이 어려운 게 이런 이유다. 더 빠르고 강하다고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니고, 보통은 더 많이 그리고 깊이 아는 자가 이긴다.
'그렇다면 상대 생각부터 흔들어야지.'
구후영의 검이 일곱 자루가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칠성검진을 이룬 모든 무인이 구후영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착각했다.
'일곱 명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으면 당연히 일곱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실제로 일곱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순간 일 대 칠의 대결을 일곱 개의 일 대 일 대결로 바꿔버렸다.
아쉽게도 구후영이 실전에서 해보는 건 처음이라 그러한 상황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에 잠깐 흔들렸던 칠성검진이 다시 단단해졌다.
'그럼 이건 어떨까?'
구후영이 자신이 새롭게 만든 초식을 펼쳤다. 낙화검법이 아닌 난화검법을 기반으로 한 이 초식은 나비가 난꽃의 은은한 향에 취해 골짜기 깊은 줄 모르고 끌려가는 모습 같다고 하여 심곡유란深谷幽蘭이란 이름을 얻었다.
"아니야!"
구후영이 펼친 초식은 자석처럼 세 명의 무인을 끌어들였다. 그에 막불손의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고루관에 퍼졌다.
그간 많은 일이 있어 무공 수련에 전념하진 못했으나, 무당, 황궁, 소림에서 있었던 무공과 유관하고 무관한 모든 경험이 구후영의 실력 증진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무려 종남칠검의 셋이 구후영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될까?'
세 자루 검이 검역劍域에 들어오자 구후영은 현란한 변화를 보이며 더 깊이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명이 빠져나가고, 가장 먼저 구후영을 공격했던 무인만 함정에 빠졌다.
그마저도 세 명이 구후영을 동시에 공격한 바람에 그대로 놓쳐버렸다.
"저 청년이 천강구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자신하오?"
"무슨 의도로 물은 것이오?"
옥무영의 반문에 고루관주가 한숨을 쉬었다.
"천강구절도 칠성검진을 상대할 때 뭔가를 아는 눈치였소."
"자꾸 뭘 안다는 거요?"
옥무영의 질문에 노도인이 한숨을 뱉었다.
"지금 구후 소협이 종남칠검의 체면을 생각해서 일부러 대결을 끌고 가는 게 안 보이오?"
소림에서 구후영은 자신이 품은 실력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그건 소림이 구후영에게 최선 그 이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강한 압박을 보인 탓이다.
지금 상황은 종남의 칠성검진이 원철이나 백팔나한진 정도의 압박을 주지 못한 바람에 구후영 역시 자기 실력을 다 꺼내지 못해 시작만 그럴듯하고 마무리가 시원찮은 건데, 고루관주는 좋은 쪽으로 오해했다.
가벼워 보이고 능청스러운 옥무영과 달리 구후영은 더없이 진중하고 진실하여 보인 덕분이었다.
하지만.
칠성검진이 괜히 나한진과 함께 무림 최강의 진법으로 이름을 나란히 하는 게 아니었다.
"조심하시오."
실전은 물론 연습도 부족해서 버벅거리던 무인들이 구후영을 인정하며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순간, 그저 날카롭기만 하던 검진의 기세가 묵직하고 끈질기게 바뀌었고.
"이제부터 최선을 다할 거요."
일곱 도인의 움직임도 한결 부드럽고 유기적으로 변했다.
- 작가의말
최강의 쓰리 피치!
똑같은 투구 동작, 똑같은 팔 각도, 똑같은 위치에서 나오는 똑같은 구속에 똑같은 경로로 움직이는 공.
그러다 존 앞에서 스플릿은 아래로, 커터는 오른쪽으로, 슬라이더는 왼쪽으로.
땅볼 아웃, 헛스윙 삼진, 배트가 부러지며 내야 땅볼로 아웃.
종남산이 삼청투구로 강호의 내로라하는 타자들을 거침없이 쓰러뜨리며 퍼펙트 페이스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9번 타석에 투수 구후영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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