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추탁언一鰍濁堰
미꾸라지는 진흙을 파고들어 몸을 숨기기 좋아한다. 헤엄을 칠 때도 대부분 물고기와 달리 바닥에 몸을 붙이고 움직이는데, 그 탓에 미꾸라지가 사는 곳은 흙탕물이 된다.
그래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이 나왔다.
소림 방장은 구후영이 바로 웅덩이를 흐리는 미꾸라지라고 여겼다.
최종필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난장을 피우는 거냐!"
복면을 벗은 최종필을 알아본 우문현이 나서서 호통쳤다. 그에 최종필을 쫓던 네 계도승도 추격을 멈추고 방장의 눈치를 살폈다.
"응? 이게 누구야? 강남제이포두 우문현 아닌가?"
우문현을 본 최종필이 반갑게 외쳤다. 그에 우문현은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욕을 겨우 참아냈다.
'하늘은 왜 저런 새끼를 안 거둬가지?'
십여 년 전에 팽창회의 아들 팽달이 관에 투신했다. 오호단문도를 익혀 무공이 출중한 데다가 팽가의 군과 관과 강호에 걸친 방대한 인맥 덕분에 평보청운平步靑雲(벼슬하는 자가 빠르게 승진)이었고, 덕분에 출도한 지 삼 년도 안 되어 대명제일포두로 불렸다.
그에 강남의 무리가 불복하여 대항마를 찾았고, 당연하게 우문현과 최종필이 언급되었다.
우문현은 소림의 속가제자로서 사문의 명성을 소중히 여겨 죄인을 나포할 때 증거와 증인을 중요시했다. 악인 열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자 하나 만들지 말자는 주의였는데, 그럼에도 수사 능력이 뛰어나 커다란 사건을 다수 해결해 칭송이 자자했다.
우문현과 달리 최종필은 증거나 증인 없이 매질로 진술받아 해결한 사건이 대부분인데, 가끔은 용의자를 패다가 엉뚱한 사건이 해결되기도 했다. 덕분에 실적은 우문현은 물론이고 팽달도 따라가기 벅차다.
그때부터 팽달은 강북제일포두가 되었고, 우문현과 최종필은 강남제일포두 자리를 다투며 서로 달라는 게 없이 미운 사이가 됐다.
"네놈은 왜 여기 있지?"
최종필이 진짜 궁금한 얼굴로 우문현에게 질문했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너야말로 여긴 왜 왔어?"
우문현이 아주 신중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이 뛰어난 것처럼, 최종필 역시 막무가내인데도 무고한 죄인을 잘 만들지 않았다. 아주 가끔 억울한 자가 나오더라도 당사자가 나쁜 놈이어서 흐지부지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강남제일포두 자리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고 해도,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을 거다.
"맞다. 네가 소림의 속가제자였지."
최종필은 우문현의 질문을 귓등으로 흘리며 자기 할 말만 했다.
"너 혹시 공유 스님의 시신을 봤어?"
"당연히 확인했지."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공유 스님은 검에 죽은 게 아니잖아."
최종필의 말에 연무장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호수에 작은 돌을 던져도 수십 개 파문이 이는데, 최종필의 발언은 조약돌 수준을 훨씬 넘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가뜩이나 구후영 때문에 원하는 바를 전혀 못 이루고 있는데, 최종필까지 나타나서 물을 흐리자 수양이 깊은 방장도 이가 갈렸다.
"멍청한 놈. 여기가 어디라고 망발이냐."
방장의 기색이 나빠 보이자 우문현이 무작정 호통쳤다.
"멍청한 건 너지."
최종필이 기세등등해 더 높은 소리로 외쳤다.
"세상에 누가 있어 공유대사를 검으로 찌른단 말이냐? 그리고."
최종필이 매서운 눈으로 우문현을 노려봤다.
"관통 부위의 살이 뒤집힌 건 어찌 설명할 건데?"
"무슨 얘기요?"
그새 슬그머니 최종필에게 접근한 옥무영이 은근한 말투로 질문했다.
"산 사람을 날붙이로 찌르면 몸이 절로 반응해 근육이 수축하오. 아까 본 바로 공유대사의 관통상은 살이 많이 벌어졌소. 이는 사후에 검에 찔렸단 뜻이오."
최종필의 대답에 옥무영은 욕이 튀어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소림이 공유대사의 죽음이 음모라는 걸 알았다는 거잖아.'
최종필이 단번에 알아낸 걸 우문현이 몰랐을 리 없고, 우문현 이전에 소림 스님들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이해 안 되는 건 아닌데.'
무당이 소림이어도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무림대회는 심하지.'
명성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무당을 견제하고 소림의 위상을 새삼 강호에 알릴 좋은 기회는 맞으나, 그저 무당을 불러 혼내도 되는 일이다. 굳이 무림대회로 중원의 수많은 문파를 불러 일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역풍을 무릅쓴 건 그만큼 얻는 게 크다는 뜻인데. 그게 뭘까?'
옥무영의 고민이 깊어지던 가운데.
"검이 아니면 사인이 뭔데?"
우문현이 최종필을 윽박질렀다.
"독?"
"중독 증세가 전혀 없잖아. 게다가 공유 사조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을 이루셨다."
우문현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장육금신을 이루면 만독이 불침하고 반나절 숨을 쉬지 않아도 멀쩡하다.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물에 몸을 담가도 전혀 추위에 떨지 않고, 끓는 가마에 들어가도 살이 데지 않는다.
당연히 호신강기처럼 꿈의 경지라고 여겼는데, 공유대사가 생전에 이뤘다고 하자 다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최종필이 주변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세상에 공유 사조보다 내공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있다고 쳐도 공유 정도의 고수를 외상 하나 없이 죽일 순 없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사인은 뭔데?"
최종필이 우문현에게 질문했다.
"여전히 검이라고 생각하는데, 검이 아니어도 상관없어."
우문현의 차가운 눈빛이 구후영과 옥무영을 스쳤다.
"여기 천공교검이라는 명백한 단서가 있다. 이 단서를 따라가면 흉수의 정체와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겠지."
'우문현답군.'
확실히 우문현 말대로 확실치 않은 걸 전부 배제하고 명확히 눈에 보이는 단서로 수사하는 게 이치에 맞지만.
'우문현다워.'
증거나 증인은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 증거나 증인 없이도 최종필이 사건을 잘 해결하듯이 우문현도 조작된 증거와 증인에서 모순을 발견해 진실을 곧잘 찾아낸다곤 하지만.
"검을 두고 간 의도가 뭘까? 흉수는 왜 단서를 남겼을까?"
지금의 우문현은 거짓 단서에 속았거나 일부러 눈과 귀를 닫고 있다.
"그걸 알아보려고 이렇게 모인 거잖아."
"내가 보기엔 소림이 흉수의 수작에 놀아나는 것 같은데?"
"아미타불."
가만히 듣기만 하던 방장이 불호를 읊조리며 끼어들었다. 이대로 최종필이 날뛰게 두면 아주 흙탕물이 되어 소림이 원하던 바를 하나도 못 이룰 것 같아 불안해진 탓이었다.
"최 시주는 눈에 보이는 단서를 무시하고도 흉수를 찾을 방법이 있나 보오."
'방장께서 실수하셨어.'
최종필의 말실수를 유도해서 빨리 치워버리려던 방장의 의도는 좋았으나.
'저거 그냥 미친놈이 아닌데.'
우문현이 아는 최종필은 산천어가 사는 맑은 물도 순식간에 진흙탕으로 바꾸는 거대한 미꾸라지다.
"두 가지 방향이 있소."
'대형을 보는 것 같구나.'
왕제상은 능력이 쥐뿔도 없으면서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다. 최종필이 대명삼대포두의 하나로 불리는 걸 보면 무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소림 방장 앞에서 이리도 당당할 수 있는 건 자신감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광기 또는 뭔가가 분명히 있다.
"하나는 면식범이오."
"아는 자의 소행이란 말이오?"
옥무영이 급하게 끼어들어 다른 사람이 반대 의견을 못 내게 방해했다.
"공유 스님은 자신의 방에서 앉은 자세로 돌아가셨소. 세간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분이 초면인 사람을 자리에서 맞이하진 않았을 거요. 그러니 흉수가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배분이 낮아 굳이 일어설 필요도 없다는 뜻 아니겠소?"
"개소리."
우문현이 최종필의 추론을 반대했다.
"공유 사조께서 방심한다고 기습에 당할 분이신가?"
"확실히 말이 안 되지?"
최종필의 묘한 웃음에 우문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새끼는 또 무슨 꿍꿍이지?'
하는 행동은 무식하지만, 최종필은 머리 빈 놈 아니다.
"너도 대명삼대포두의 말석을 차지했으니 불가능한 걸 하나하나 지우다 보면 마지막엔 진실이 남는단 간단한 이치 정도는 알겠지. 내가 두 가지 방향이라고 했는데, 이미 하나는 너한테 부정당했으니 남은 하나가 진실이야."
우문현과 대화하던 최종필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구후영에게 말을 걸었다.
"구후 대협께 청이 하나 있소."
"말해보시오."
최종필의 돌발행동에도 구후영은 평온한 태도로 대응했다.
"본인은 항주부에서 소폭풍小暴風으로 불리는 최종필이오. 평생소원이 철추당의 폭풍권 장선 대협의 가르침을 받는 건데, 일이 끝나면 구후 대협께서 도와주셨으면 하오."
"약속하겠소."
구후영의 대답에 신난 얼굴이 된 최종필이 등등한 기세로 우문현에게 질문했다.
"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들켜서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살해 방식이 독 아니고 무공 아니고 검 아닌 건 너도 동의하는 바지? 그럼 암기만 남았네?"
"암기도 아니다."
우문현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남은 가능성은 딱 하나잖아."
"뭔데?"
우문현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혀를 날름거렸다.
"공유 스님은 수명이 다하여 돌아가신 거다. 흉수는 모종의 목적으로 시신에 검을 꽂은 거고."
"하하."
최종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옥무영이 큰소리로 웃었다. 무당의 젊은 장문이 사실 허수아빈데 신검의 후광으로 자리에 올랐다는 소문을 믿고 있던 자들이 웃음소리에 실린 막대한 내공에 깜짝 놀랐다.
'사제가 저리 강한데 사형이라고 맹물이었을까.'
덕분에 구후영의 활약상에 놀란 자들이 옥무영에 대한 평가를 대폭 상향했다.
"최 포두의 말에 동의하오. 천하에 누가 있어 공유 스님을 해친단 말이오. 아마 삼풍 조사께서 살아 계셨어도 어림없었을 거요."
'저 간사한 놈.'
옥무영의 말에 반박하자니 장삼풍이 소림 제일의 고수로 알려진 공유를 반항할 틈도 없이 죽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사람들이 공유를 장삼풍과 같은 수준의 대종사로 쳐주지도 않는다.
옥무영은 그저 듣기 좋은 말로 잃는 게 없이 얻어가기만 했다.
"공유 사숙께선 매우 정정하셨소. 그냥 때가 되어 떠났다는 말은 추측에 불과하오."
방장의 반박에 옥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의도가 뻔한 단서만 잡고 최 포두의 훌륭한 추론을 무시할 순 없지 않소?"
"맞는 얘기요. 여러분이 차를 마시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소림의 입장을 확실히 정리해 말씀드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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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정達摩亭에 모인 소림의 수뇌부는 차를 입에 댈 생각도 없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일이 틀어졌는데, 한 선생이 주해본을 순순히 내놓을지 걱정이오."
혜가는 달마의 유일한 제자로 한문으로 된 역근경과 세수경에 주해를 남겼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주해본이 한 선생의 손에 있었고, 한 선생은 주해본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소림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
하나는 무림대회를 열어 중원의 큰 문파들을 부르는 거고, 다른 하나는 무림대회에서 무당에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 것이었다.
"그자의 뒤를 조사하고 있으니, 정 안 되면 무력으로 뺏어야지 어쩌겠소. 우리가 남의 물건을 탐한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소림의 것이었던 보물을 돌려받으려는 건데, 부처님도 허락하실 거요."
- 작가의말
예전이었으면 단서를 꽁꽁 감추고 혼자 키득거렸을 텐데, 저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소림이 이상한 짓을 하는 이유는 역근경과 세수경의 주해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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