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무양위曜武揚威
부무夫武 금폭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자야豊財者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이야기에서 초장왕楚庄王이 한 말로, 무력을 쓰는 건 폭거를 금하고 전쟁을 멈추고 강함을 유지하고 공적을 세우며 백성을 평안케 하고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려 모두가 풍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란 뜻이다.
초장왕은 위의 일곱 목적 중 하나도 달성하지 못하는 무력은 폭거나 다름없다며 진나라와 벌이던 다 이긴 전투를 멈추고 초나라로 돌아갔다.
이렇듯, 무武는 혼란을 잠재우는 힘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림武林이란 곳에 속한 자들은 상대를 이겨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용도로 무武를 써먹었다.
"낙양의 유수형이 구후 장문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오."
방장의 신호를 받고 붉은 두건이 나섰다.
'그래. 이게 강호지.'
유수형이 대화를 끊고 대결을 청하자 구후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으나.
"유수형이라. 내 귀가 어두워서 그런지 공자의 명호를 들어본 적 없소."
오히려 오만한 얼굴로 상대를 도발했다.
'사제가 노리는 게 뭐지?'
예상 밖의 전개에 옥무영은 김이 날 정도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한데.'
옥무영은 구후영과 석 달 가까이 지내면서 속을 어느 정도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 구후영이 산서검룡으로 불리는데, 대결하더라도 최소한의 구색은 맞춰야지 않겠소?"
구후영이 거절할 걸 미처 예상치 못했고, 심지어 자신의 명성이 부족하다고 거절할 줄 몰랐던 유수형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아무 말도 못 했다.
"무당의 기명제자와 소림의 속가제자가 왜 구색이 안 맞는단 말이오?"
유수형이 가만히 있자 접객화상이 나섰다.
그에 옥무영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고.
'이거구나.'
앞을 가리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힌 기분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소림과 무당의 대결이 되고 만다.'
무당 장문인 옥무영이 나서서 소림 방장과 대화를 지속하면 이 일은 결국 소림과 무당의 대결로 번진다.
옥무영은 처음부터 소림과 무당의 싸움이라고 여겼고, 적당한 선에서 져줄 마음이었기에 이 부분에 관해 깊이 생각지 않았다.
반면, 구후영은 두 거대 문파의 싸움으로 번지지 않길 바라 일부러 나서서 무당 대신 소림과 대립했다.
'사제는 황제를 구한 공이 있으니 소림으로선 건드리기 쉽지 않다.'
구후영의 선에서 일이 끝난다면 무당으로선 최고의 결과다.
"소생이 무당의 태극혜검을 익혔으니 소림 쪽에서도 최소 칠십이절기를 익힌 분이 나서는 게 구색에 맞는다고 생각하오."
구후영이 계속해서 대결 상대의 자격을 운운하자 옥무영도 추가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소림이 작심했구나.'
속가제자의 패배로 무력이 강한 구후영을 치울 수 있다면 소림으로선 이득이다. 소림의 체면이 크게 상할 일도 아니고, 황실에 밉보일 걱정도 던다.
'사제가 아니었으면 예상보다 훨씬 큰 망신을 당할 뻔했어.'
사실 이 자리에 온 모든 사람이 아는 일이 있다.
그저 소림과 무당이 조용히 만나 해결해도 될 일을 굳이 무림첩을 날려 무림대회까지 연 것은 소림이 세를 과시하기 위함이고, 어떤 대화가 오가고 어떤 명분이 있든지 둘은 반드시 싸운다.
설사 소림에 아무런 증거가 없고 무당에 신빙성 높은 증거 혹은 증인이 있더라도 오늘 소림과 무당은 어떻게든 싸운다.
그러나.
아무리 못 배운 강호의 잡배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칼부림하진 않는다.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는 소림과 최근 태극혜검으로 강호에 명성이 진동하는 무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당연히 입씨름을 통해 각자의 명분을 내세우며 옥신각신하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 자연스럽게 대결을 입에 올릴 거로 예상했는데.
구후영이 나서서 판을 엎었다.
소림과 무당의 싸움에 끼어들어 소림과 자신의 싸움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에 소림은 속가제자를 내세워 무당의 기명제자로 알려진 구후영과 우선 대결하게 하여 소림과 무당이 대결할 때 구후영이 출전 명분이 없도록 계책을 꾸몄다.
"유 사손은 소림 칠십이절기의 하나인 금강권을 익혔으니 구후 소협 상대로 부족하지 않을 거요."
방장이 구후영에게 기대한 건 무당을 끌어들이는 구실 정도의 역할이었다. 속가제자는 지는 대결로 혹시나 구후영이 소림과 무당의 대결에 끼어들려 할 때 치우는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유수형과 구후영의 대결을 성사하려 했다.
"유 공자는 금강권을 얼마나 익혔소?"
"십이 년이오."
맹호금강권猛虎金剛拳, 영사금강퇴靈蛇金剛腿, 학훼금강두鶴喙金剛頭, 운표금강신雲豹金剛身, 복룡금강보伏龍金剛步의 다섯 절기를 모두 익혀 금강부동金剛不動의 경지에 이르면 금강인金剛印을 얻을 수 있다.
금강권은 맹호금강권의 입문 무공으로, 유수형은 비록 단련법을 배워 십이 년을 수련했으나 수준 미달로 아직 맹호금강권을 전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수형이 금강인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기에, 자신이 소림의 칠십이절기 중 하나를 익혔다고 여겨 구후영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소생은 무당의 태극혜검을 접한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되었소. 유 공자가 금강권을 십이 년이나 익혔다고 하니 손속에 사정을 두지 못하겠군."
"대결이어도 최선을 다하는 게 무인의 자세 아니겠소?"
유수형의 대답에 소림 방장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너무 망신스럽게 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대놓고 말할 걸 그랬나?'
구후영에 관한 소문 중 믿을 만한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소림 정도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과장인지 판별할 능력과 안목이 있다.
'아무리 봐줬다고 해도 현현자와 내공 대결을 벌이고 살아남은 건 대단한 일이다. 대결을 펼쳐야 할 아이가 너무 기죽을까 봐 말을 아꼈는데. 실수한 것 같구나.'
소림이 짜고 벌인 판인데 흐름을 주도하는 건 오히려 구후영이 되었다. 중원 최강 문파로 불리는 소림의 일인자가 되기까지 온갖 일을 겪었던 방장은 예상대로 안 흐른다고 흔들리거나 하진 않았으나,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을 순 없었다.
"유 공자. 한 수 가르침을 청하겠소."
구후영이 유수형에게 포권하고 연무장 중앙으로 갔다. 유수형 역시 조금은 흥분한 얼굴로 구후영의 맞은편에 섰다.
"대결에 앞서 얘기할 게 있소."
구후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현현 진인과 내공 대결을 벌인 건 사실이오. 그 인연으로 무당의 기명제자가 되었고 무당 장로들과 태극혜검의 비급에 관해 토론할 수 있었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요?"
유수형이 짜증이 섞인 말투로 질문했다.
"진짜 손속에 사정을 안 둬도 괜찮겠소?"
"나도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이 없으니, 괜한 걱정을 마시오."
"그럼."
구후영이 왼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자기 심장을 가리고 오른손은 손님을 청하듯이 앞으로 내밀었다.
그에 유수형은 왼쪽 주먹으로 심장을 가리고 오른쪽 주먹을 이마 높이로 들었다.
"시작하겠소."
말을 마친 구후영이 앞으로 한 발 나가며 손바닥을 쭉 내밀었다.
그에 유수형도 뭔가를 하려 했으나, 뭘 하기도 전에 구후영의 손바닥이 명치에 닿았다. 갓난아이를 만지듯 가볍고 조심스러운 접촉이었지만, 유수형의 몸이 허공을 오 장이나 날았다.
그렇게 대결이 끝났다.
'일을 더 키우면 안 되는데.'
구후영의 선전에 기쁜 무당 제자들과 달리, 옥무영은 속에 걱정이 가득 찼다.
"악독한 놈."
잔칫상이 된 무당과 반대로, 소림과 소림을 응원하는 쪽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특히 유수형을 살핀 노승의 얼굴은 수라전의 악귀도 무서워 도망갈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러시오?"
"무슨 불공대천의 원수가 있다고 단전을 폐한단 말이냐!"
노승의 호통을 들은 무인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단전은 배꼽과 명치 사이에 있는 요혈이다. 모든 경맥과 통하는 혈도답게 튼튼하기 그지없어 폐혈침을 장기간 꽂거나 특별한 수법을 쓰지 않으면 단전에 해를 끼치기 어렵다.
유수형의 가슴에 기복이 있는 걸 보면 죽지 않고 기절만 했다는 뜻인데, 대결에서 상대의 단전만 다치게 하는 건 그저 죽이는 것보다 수십 배는 힘든 일이다.
고작 일 합에 승부를 가린 것보다 상대를 살린 채 단전을 폐한 게 둘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였다.
"소림의 칠십이절기를 십이 년이나 익힌 제자가 이리도 약할 줄이야."
구후영의 중얼거림엔 내공이 실려 모두에게 들렸다.
"이래서 구색을 어느 정도 맞춰달라고 했는데."
구후영의 도발에 소림 스님들은 얼굴에 노기가 가득 찼고, 무당 제자들도 마냥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사제가 너무 막 나가는데?'
옥무영 역시 구후영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든 자기 선에서 정리하려는 마음임을 이해했으나, 너무 뒷감당을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걱정이 커졌다.
'애초에 이기는 싸움이 아닌데.'
소림과 무당이 싸우면 무당이 진다.
이 결론에 관해선 무당 제자들마저 이견이 없다.
'장로들을 데려올 걸 그랬나?'
지는 싸움은 규모가 클수록 손해도 커진다. 장로들이 와서 한두 대결을 이기면 오히려 일이 커질 것을 걱정하여 옥무영은 젊은 제자들만 데려왔고, 이기러 가는 게 아니라 체면 지키러 가는 거라고 사제와 사질들한테 거듭 강조했다.
문제는 구후영이 옥무영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구후영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 무당이 끼어들 순 없다. 구후영이 져서 나서는 거면 그나마 명분이 있지만,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며 이긴 지금 껴드는 건 싸움을 키우는 일밖에 안 된다.
'확실하게 치워야 한다.'
태극혜검을 익힌 구후영이 칠십이절기를 익혔다고 밝힌 유수형을 일 합에 이겼다. 그것도 목숨을 붙여두고 단전을 폐하는 거로 어마어마한 격차를 증명했다.
이대로 구후영이 이긴 거로 하면, 소림 무승들이 무당 제자를 아무리 현격한 차이로 이겨도 소림의 명성에 손해고 무당의 기세는 훨씬 높아진다.
'적당한 자가 누가 있지?'
반야당 쪽을 힐끗 살핀 방장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말했다.
"오명 사질이 소림을 대표해 구후 소협께 칠십이절기가 어떤 건지 알려드리시오."
방장의 결정에 소림의 스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구후영이 방금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 건 맞는데, 그렇다고 쳐도 오명이 나서는 건 과한 처사라고 여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에 구후영도 걱정이 치밀어 소림 방장에게 합장례를 올리는 스님을 자세히 살폈다.
'체구가 작구나.'
오명은 머리가 너무 동그래서 원체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지만, 키와 별개로 손과 발은 오히려 구후영보다 컸다.
"반야당 제자 오명이 구후 시주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오. 소승은 칠십이절기 중 하나인 일지선一指禪을 익혔소."
"구후영이오. 낙화검법과 난화검법 그리고 태극권과 태극혜검을 익혔소."
무공 소개를 마친 구후영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대결을 기대하겠소."
'예사 놈이 아니다.'
소림의 속가제자와 겨룬 건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버린 구후영의 심계에 방장은 걱정이 깊어졌다.
- 작가의말
요무양위 - 무력을 자랑해 위세를 떨치다.
초장왕이 한 말에서 중점은 이겁니다. 평화와 더 나은 삶을 위해 결국 무력은 필요하다는 거죠. 무력 없는 평화와 질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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