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69 화

예언자들 – 69

알렉시스가 적재함에 올라타자 강원도 아저씨의 트럭이 출발했다. 사방이 뻥 뚫려서 바람을 맞게 되니 그녀는 금세 강원도의 추위를 느꼈다.

“에취.”

“추우시죠? 이거라도 입으세요.”

텔리가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자기가 입던 빨간 점퍼를 벗어주려고 하는데, 알렉시스가 손을 뻗으며 거절했다.

“아냐, 됐어. 겨우 이 정도 추위 가지고 뭘. 옛날에 난 엘리시움에서 이보다 더 추운 지역에서 전투를 한 적도 있는데 이건 아무 것도 아니지. 게다가 난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

그녀가 힘을 집중시키자 온몸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불새에게 받은 힘을 이용해서 몸에 열을 내는 것이었다. 텔리는 곧 바로 그녀의 능력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다른 데를 보면서 그녀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 척 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능력을 대강 측정하자 입을 삐죽 내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알렉시스는 능력이 뛰어나군. 불새군 안에선 그 유명한 불새의 대사제, 솔로우스 말고는 대적할 자가 없다더니 말이야. 특히 저런 능력은 추위를 타지 않을 수도 있고 화상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아, 하나 더. 요리할 때도 편리하겠어. 훗훗훗.’

몸이 더워진 알렉시스는 이젠 느긋하게 찬바람을 즐기게 되었다. 그녀는 여유 있는 태도로 텔리에게 물었다.

“트럭에 타고 있는 당신의 현지 코디네이터 말이야. 같이 데려온 싸이언스의 친구인 거 알고 있어?”

“네? 둘이 친구였군요. 에뮤니우스를 처치하고 당신을 구하려고 저 친구를 데려왔는데 함께 잡혀 있는 환자가 그의 친구였다니. 하하..... 참 작은 세상이네요.”

“텔리, 잘 들어. 난 싸이언스의 친구를 아주 오랫동안 찾고 있었어. 그의 이름은 손건수라고 하지. 그런데 마침 저 친구가 내게 자기 소개할 때 그러더군. 자기 이름이 건수라고.”

“알렉시스님이 오랫동안 저 현지 코디네이터를 찾고 계셨다고요?”

“호호. 텔리, 이거 왜 이래. 당신은 이미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을 것만 같은데? 자, 내가 기회를 줄 때 똑바로 말해. 텔리, 저 사람은 누구지?”

“글쎄요. 그저 제 멍청한 현지 코디네이터라니까요.”

“헛소리는 집어치워. 이 세계에서 엘리시움어를 하는 한국인 현지 코디네이터를 구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이렇게 나를 실망시킬 건가?”

“하하... 내가 아직까지 살면서 거짓말은 한 적이 없는데.”

“텔리, 당신은 아직 계약에 묶여 있다는 걸 알아야지?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내 명령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야.”

“보통 사람들은 더 이상 계약이 맘에 들지 않을 때는 그것을 파기하기도 하더군요.”

“맞아. 하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러지 않더라구. 호호호.”

“......”

알렉시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텔리는 그녀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고개를 돌려 먼 데를 바라봤다. 알렉시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회를 줬는데도 분수를 모르고 있군, 텔리. 내가 말하라고 했지? 트럭에 앉아 있는 저 남자! 케르케로우스의 사제가 아닌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게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국법으로 다스리겠다.”

“훗훗훗훗.”

텔리는 말없이 그저 웃고 있었다. 여전히 먼 산을 보며 그녀의 말을 최대한 무시하려고 애썼다. 아마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했지만 최대한 참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적재함 후면의 플랩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가 플랩을 잡은 손에 힘을 집중하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와그그극.’

그가 빛나는 손으로 힘을 주자 철로 만든 플랩이 우그러졌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말로 대답하기보다 자기의 능력을 살짝 보여준 것이었다.

‘손에서 빛이 나다니! 저런 힘이 있다는 것은 신의 능력을 받았다는 증거. 역시 텔리는 신의 은총을 받았던 거야.’

알렉시스는 속으로는 무척 놀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다.

“호오. 그래? 그러니까 당신도 어떤 신의 은총을 받았다 이거로군.”

“......”

“아, 맞아. 에뮤니우스와 쥬니아가 그러더군. 당신이 살육의 신 쪽 사람이라고. 뭐라 그러더라. 아, 그래. 맞아. 40 인의 암살단..... 호호호. 그땐 그걸 듣고 제대로 크게 웃지도 못했어. 쥬니아가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그런 어이없는 자장가 같은 얘기를 해서 말이야. 그럼 당신이 벌써 몇 천 살은 먹은 노인이라는 뜻이잖아. 아니, 그 정도 세월이 지났으면 움직이는 시체가 더 어울리려나? 호호호.”

“......”

“여전히 말을 안 하겠다는 거군.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트럭에 타고 있는 저 청년은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맞지?”

“곧 직접 확인할 수 있겠군요. 거의 다 왔습니다.”

알렉시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뭐라고? 직접 확인하라고?”

그녀가 서서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트럭이 마을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강원도 아저씨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트럭에서 내렸다. 텔리는 먼저 내려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계약에 관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전 이제 재계약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알려드립니다.”

알렉시스는 그의 손을 잡고 적재함에서 내려가면서 물었다.

“뭐? 재계약은 없다고? 이제 와서 왜 이래?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인 걸 몰라?”

“물론 당신이 제게 맡겼던 마지막 임무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걸 다 수행하면 그걸로 끝인 겁니다.”

“텔리, 일을 다 마치고 후안과 나와 함께 엘리시움으로 함께 돌아가야지.”

“.......”

텔리는 말없이 그녀에게 등을 돌리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알렉시스는 앞으로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일하지 않겠다는 텔리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지만 워낙 쌀쌀맞게 구는 지라 더 이상 그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사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강한 그녀로서도 별로 내키지 않는 행동이었다.

강원도 아저씨 집에 들어서는데 잔뜩 찌그러진 경찰차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너진 담벼락과 뜯긴 대문을 보자 그녀는 왠지 흉가처럼 보이는 아저씨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쏙 들어갔다.

“텔리, 여기가 진짜 안전한 곳이 맞아?”

“네. 아마 베토케로우스를 대적할 수 있는 마지막 요새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베토케로우스? 그 전설의 괴수?”

텔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뭐? 뭘 봐?”

“.....아닙니다. 당신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군요.”

자신이 그 동안 누구를 위해 일해 왔는지 그 배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알렉시스였다. 텔리는 그녀에게 어떤 것을 말해주고 어떤 것을 걸러야 하는지 난감했다.

‘이 여자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안 얘기는 빼고 얘기해야 하나? 이것 참 곤란하군.’

‘컹컹!’

그들이 마당에 들어서니 한 마리의 개가 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집에서 강아지가 한 마리가 또 나오더니 짖고 있는 개를 보고 마치 조용하라고 나무라듯 짖었다.

‘컹!’

그랬더니 덩치가 훨씬 큰 개가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고 숨는 것이 아닌가. 텔리가 밝은 노란 색의 강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저기 케르케로우스가 있습니다.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직접 물어보시죠.”

“뭐? 케르케로우스? 저 강아지가?”

알렉시스가 코웃음을 쳤다.

“지금 무슨 장난을 하려는....”

그 때, 케르케로우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안녕, 예쁜 아가씨. 엘리시움어를 하는 것 보니 당신도 엘리시움인이군요. 내가 케르케로우스인데 뭐가 궁금하지요?”

“....으악!”

알렉시스는 순간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짜 케르케로우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