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3 화

솔로우스 – 3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텔리는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었는지 호흡이 거칠어져있었다. 그가 허리를 접었다 피면서 툴툴거리고 있는데 많은 수의 검은 늑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리베우스와 그 부하 늑대들은 공기 중에 퍼진 베토케로우스의 냄새를 맡고 들떠 있었는데 그 괴수가 아니라 텔리가 나타나자 적잖이 혼란스러워 했다.

“아니, 뭐야? 또 검은 늑대들이 있네? 아까 물가에서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늑대새끼들이 이만큼 더 남아 있었던 거야? 허어.....”

그는 주위를 한 번 슥 둘러보더니,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의 곁으로 알렉시스가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신이시여, 이 늑대들은 아까 해치우신 그 늑대들이 아니고 조금 전 검은 방의 입구에서 나온 놈들입니다. 엘리시움에서 이리로 온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못가고 있는 고향에서 왔단 말이지?”

그런데 그에게 다가온 알렉시스의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홀로 많은 수의 검은 늑대들을 상대하느라 몸 여기 저기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알렉시스, 네 꼴이 그게 뭐냐? 설마 이런 조무래기들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

“아... 그게 저놈들이 워낙에 수도 많고 인솔하는 대장 놈이 좀 재빠른 놈이어서.... 예. 조금 힘에 부쳤습니다.”

“치. 하아... 실망이네. 알렉시스. 기껏 내 힘을 나눠줬더니. 쯧쯧쯧.”

텔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알렉시스를 슬쩍 비웃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피우던 클로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야. 저놈들이 모시는 그 괴수는 내가 죽이고 왔는데, 정작 내 전사라는 녀석은 그놈 부하를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이게 말이 돼? 엉!”

알렉시스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이더니, 사과했다.

“신이시여. 제 불충을 용서해주십시오. 당장 저 놈들의 대장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아이, 됐어. 무슨 일을 그렇게 해. 에이. 짜증나.”

텔리는 클로브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알렉시스더러 귀찮으니 옆으로 물러나라 듯이 손짓을 했다.

그 때, 리베우스와 검은 늑대들은 텔리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흘러가는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저 놈은 어디서 굴러먹다 나온 뼈다귀란 말인가? 저 전사년이 고개를 숙이는 것 보아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고 있는 행색도 그렇고 그저 거리의 걸인 같은데 말이지.’

텔리가 이 공터에 등장했을 때부터 신이라고 하기엔 위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그를 처음 보게 된 리베우스는 혼란스러웠다. 또 베토케로우스와 전투를 마친 후 수풀을 헤치고 이곳에 힘들게 올라왔기 때문에 참으로 더러운 모습이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신들이 가진 특유의 위압감과 품위가 눈꼽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그를 봤다면 어디 뒷골목에 어슬렁거리는 불량배로 착각할 듯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위험한 분위기가 늑대들로 하여금 그를 향해 짖거나 눈도 못 맞추게 할 만큼 주눅 들게 했다.

‘그런데 왜 저 녀석에게서 주인님의 체취가 풍겨오는 걸까? 설마 방금 저놈이 말한 것처럼, 저놈이 주인님을 쓰러뜨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아냐. 주인님은 세상에서 최고로 강한 분이시다. 절대 저런 놈에게 쓰러지셨을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리베우스는 늑대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텔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텔리는 뒤로 피해있는 미스터 황을 발견하고는 그에게도 한 마디 쓴 소리를 뱉었다. 그는 몸이 마비되어 있는 릴리카를 지키려고 모여 있는 불새군 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야, 쾅식이. 넌 왜 거기 가만히 있어? 인마, 알렉시스가 저렇게 다쳤는데 치료해줘야 될 거 아니야! 그렇게 한심한 놈들한테 둘러 싸여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거얏?”

“뭐라고욧?”

미스터 황은 알렉시스와는 달리 고분고분하게 텔리의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릴리카를 등에 업은 채로 한 발 앞으로 나오더니 대들었다.

“아니,나 참 기가 막혀서. 텔리님은 저 아래 계곡에서 그 큰 늑대랑 싸움이 끝났으면 빨리 여기 올라오셔서 도와주셨어야지. 그렇게 한가롭게 담배를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면서 지금에야 도착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뭐? 아니, 이 새끼가 돌았나? 인마, 내가 신이고 넌 날 모시는 입장이면서, 나한테 그 따위로 말을 해?”

그러자 미스터 황은 손가락으로 땅에 누워있는 라볼타 사장의 시신을 가리켰다.

“여기 보세요. 텔리님이 늦게 나타나셔서 라볼타 사장님이 돌아가셨잖아요! 크흑.”

“뭐라고?”

텔리는 꿇어앉더니 라볼타 사장의 이마에 빛나는 손을 갖다 대었다. 그는 시신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어? 진짜 죽었네? 이런 낭패가 있나! 다른 녀석도 아니고 이 녀석이 죽으면 어떡해? 얜 나중에 미국에서 돌아가면 나한테 새로운 캐딜락 한 대 뽑아줘야 하는데!”

미스터 황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 했다.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에요? 언제 미스터 라볼타가 텔리님한테 그런 약속을 했어요?”

물론 라볼타 사장은 텔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텔리는 그저 자신의 희망사항을 말했던 것이었다.

“아니, 내가 그 동안 잘 돌봐줬으니까 미국에 가면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려고 했단 말이야. 그리고 이 녀석이라면 분명 그러겠다고 했을 거고. 아, 아깝네. 내 캐딜락!”

“지금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어요? 사자명예훼손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없는 말도 지어내고 말이에요!”

“난 신이라서 거짓말을 못하는데 무슨 말을 지어내......”

“그럼 왜 없는 말을 지어서 해요? 아무리 그런 걸 바랐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하셔야지! 사람이 죽었다고요. 짐승한테 당해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데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큭.”

미스터 황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 지 울먹였다. 텔리는 얼굴이 벌개져서 고개를 돌렸다.

“아... 얘가 날 완전히 나쁜 놈, 아니 나쁜 신으로 만들어 버리네. 아이.... 쩝.”

그는 알렉시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물었다. 그의 눈이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알렉시스, 누가 여기 내 새로운 캐딜락 물주를 죽였냐? 물론 네가 이미 복수해줬겠지?”

“아... 아닙니다. 저기... 저기 늑대들의 대장 놈이 그랬습니다. 원래는 절 노리고 공격했던 건데 미스터 라볼타가 절 보호하느라 대신 희생당했습니다.”

알렉시스는 손가락으로 서서히 뒤로 물러서고 있는 리베우스를 가리키며 고자질..... 아니, 보고했다. 그녀에게 지목당한 리베우스는 겁을 먹고 뒤로 멀리 한 발짝 훌쩍 뛰어올라 피하더니 그대로 몸을 낮추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무래도 저 살육신이라는 거렁뱅이놈이 나타난 다음에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다. 아까 전 저 전사 계집 대신 죽은 뚱땡이 놈이 저놈에게 캐... 뭐라고 하는 보물을 주기로 했던 모양인데, 그만 내 손에 죽어버려서 내게 원한이 생긴 것 같군. 도대체 그건 무슨 보물이길래, 저 걸레짝 같은 신이 저렇게 살기를 내뿜는 거지? 혹시 그 물건은 이 세계에서 보기힘든 아주 귀한 보물이었을까? 베토케로우스님도 안 계시고 카베쿠스도 없는데, 이거 정말 큰일이군.’

텔리는 새로운 클로브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말했다.

“후우우.... 그래. 네 주인도 방금 죽이고 올라온 길이다. 까짓것 손이 더러워진 김에 몇 마리 더 죽이지, 뭐.”

텔리가 베토케로우스를 해치웠다고 말하자 리베우스는 분노하며 사납게 짖었다.

“컹! 컹! 컹! 거짓말하지 마라. 이 거지 신아! 네가 아무리 살육신이도 그렇지, 어디 함부로 주인님에 대해 혀를 놀린단 말이냐? 주인님께서는 오래 전 엘리시움의 모든 신을 홀로 상대하셨던 분이다. 그 분이 신들의 연합도 아닌 네깟 놈 하나에게 당하셨다니 믿을 수 없다!”

그러자 텔리는 입에서 클로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낄낄 웃더니 대꾸했다.

“크크크! 맞아. 그런데 그 옛날에도 미쳐 날뛰는 그 괴수에게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린 게 바로 이 몸이었거든? 자, 너도 먼저 간 그 주인 놈과 형제들을 따라가야지?”

텔리가 껄렁거리며 슬슬 발걸음을 떼자 리베우스는 ‘컹! 컹!’ 짖으며 주변의 늑대들을 불러 모았다. 대장 곁으로 모인 늑대들은 밝은 달빛에 반사된 안광을 번뜩거리며 한 동안 시끄럽게 짖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