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59 화

솔로우스 – 59

이디레이아와의 대화를 끝내고 텔리는 일행을 이끌고 서둘러 그녀의 공간을 빠져나갔다. 이디레이아는 그에게 좀 더 그녀의 공간에서 머물 기를 권했지만 그는 좀처럼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래도 키쥬아의 환영 일이 영 맘에 걸린 듯 했다. 이디레이아의 공간에서 빠져 나온 텔리는 서둘러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의 사제, 미스터 황과 전사, 알렉시스는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들 또한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텔리는 거부했다. 아무래도 그가 지켜야 하는 비밀은 그와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도 금기사항인 듯 했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또 다시 밖에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 * *

미스터 황은 추위에 떨면서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브르르르. 왜 이렇게 해가 안 떠? 알렉시스, 넌 안 춥냐?”

“내가 춥냐고? 난 불새의 성전사였다. 몸 안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어떻게 추울 수가 있겠냐? 전에 난 이곳보다 더 추운 곳에서도 작전을 수행했던 적이 있어. 이 정도 추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알렉시스는 그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대신 어두운 숲속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주변이 조용하다고 마음 놓고 있는 미스터 황과는 달리 그녀는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아까 여신님이랑 텔리님께서 하신 대화를 들었잖아. 난 곁에서 듣는 데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 도대체 두 분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텔리님은 다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신 거지?”

“우리 따위가 신경 쓸 일이 조금도 아니다. 넌 네 일이나 신경 쓸 것이지 어디 감히 신들의 일에 관심을 갖는 거냐?”

“아니, 그 자리에 우리도 있었으니까. 누가 그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싶어서 들은 거냐?”

“멍청한 놈.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일 뿐이지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얘기도 아니다. 그럴 때는 그냥 귀를 닫고 있어야 하는 거야. 하여간 이 세계의 사람들은 정말......”

알렉시스의 얘기에 미스터 황은 발끈했다.

“뭐? 멍청해? 야! 멍청하긴 누가 멍청해?”

“쉿!”

그 때였다. 알렉시스는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숲 속에서 무슨 움직임을 봤는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미스터 황을 조용히 시켰다.

“뭐... 뭐야?”

그녀는 미스터 황의 등을 떠밀며 서둘러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뭐냐니깐?! 왜 이래? 숲 안에 뭐가 있어?”

“조용히 해! 뭔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뭐가 오고 있다고? 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어두운 숲 속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었다.

“뭐... 뭐야?”

알렉시스는 손으로 미스터 황의 머리를 아래로 누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저것의 정체가 뭐건 간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닐 거야. 들키면 안 좋을 것 같다.”

“아... 이럴 때 텔리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어야 하는데!”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은 몸을 낮춘 채 조용히 숲 속의 움직임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나무의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는 것이었다. 뭔가 큰 것이 숲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점점 둘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왔다!”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던 알렉시스는 냉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둘은 바로 코와 입을 손으로 가렸다. 어디서 형용할 수 없이 역겨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읍! 어디서 이렇게 썩은 오징어 같은 냄새가 나는 거야?’

그들은 몸을 웅크리고 있느라 무엇이 숲 속에서 나온 건지 볼 수는 없었지만 곧 그 정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저쪽이다. 저기서 짙은 암흑의.... 냄새가... 난다. 텔리는.... 텔리는.... 여기에 없다. 그 찌꺼기.... 들은... 무시하고 저리로... 가자.”

“컹!”

숲속에서 나온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베토케로우스와 검은 늑대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텔리가 그들과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를 들은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혹시라도 그냥 지나쳐 가는 괴수가 생각을 바꿔 그들을 공격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텔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이들을 인질로 잡았을 텐데, 다행히 그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크아아아아아!’

‘컹! 컹! 컹!’

베토케로우스가 큰 소리로 울자 주위의 검은 늑대들이 함께 시끄럽게 짖어댔다. 그리고 괴수가 늑대들이 다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이미 숨어 있는 장소까지 다 탄로 난 것 같았지만 겁이 나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주위에서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자,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수풀 밖으로 기어 나왔다. 미스터 황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흉내를 내면서 말했다.

“휴우우.... 십년감수했네. 아니, 저 괴물은 어떻게 또 살아난 거야? 아까 텔리님께 몇 번이나 패해서 죽은 거 아니었어?”

“우리 세계의 신은 죽지 않아.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저렇게 빨리 부활하진 않는데...... 뭔가 이상해.”

미스터 황은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이 끔찍한 냄새는 뭐야? 정말 역겨워. 그 산더미처럼 큰 늑대괴물한테서 났던 것 같은데? 우우웁.”

“아마 아까 텔리님께 당해서 몸이 저렇게 된것 같아. 네 말대로 정말 역겨운 냄새다. 나도 숨을 참느라고 아주 혼났어.”

“여름이었다면 냄새를 맡자마자 바로 토했을 거야. 한 순간에 여기 주변이 쓰레기 처리장이 되어 버렸네. 우우웁.”

미스터 황은 구역질을 하는 흉내를 냈다. 그들이 함께 손을 휘저으면서 베토케로우스의 냄새를 없애고 있는데, 땅바닥에 검은 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서 텔리가 쑤욱 올라왔다.

“너희들 뭐하냐? 이 겨울에 파리 잡아?”

“아! 텔리님!”

미스터 황은 방금까지 공포에 떨고 있다가 텔리를 보자 마치 구세주가 나타난 것처럼 기뻐했다.

“큰일 날 뻔 했어요! 베토케로우스가 나타나서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다고요!”

“뭐? 베토케로우스?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놈은 죽었잖아. 내가 죽였다구.”

“아녜요. 살아있어요. 킁킁. 이 냄새를 맡아 보세요. 끔찍하죠? 그 괴물 놈이 여기 일대를 화생방실로 만들었다고요.”

미스터 황이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자 텔리는 고개를 치켜 들고 냄새를 맡았다.

“글쎄.... 희미하게 좀 쓰레기 냄새 같은 게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알렉시스와 제가 열심히 손으로 냄새를 없애서 그래요. 원래 이것보다 한 100배는 심한 썩은 내가 났다고요. 그놈이 아주 잠깐 여기 있었는데도 냄새가 그렇게 심했어요. 어휴....”

알렉시스가 텔리에게 나아와 말했다.

“여기 사제의 말이 맞습니다. 분명 베토케로우스였습니다. 그놈은 검은 늑대들과 함께 있었는데, 어디론가 급히 이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고?”

“예. 저쪽이라고 하면서 어디론가 가리키면서 ‘짙은 암흑의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짙은 암흑의 냄새라...... 어디를 말하는 거지? 장소가 아니면 누굴 말하는 거지? 나 말고 암흑의 냄새가 나는 자가 어디 또 있다고. 케르케로우스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아! 바이베노파시스다! 형이 여기 어디 있다는 거야! 빨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