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02 화

예언자들 – 102

인천 국제 공항에 펠리시아를 내려 준 강원도 아저씨 내외는 강원도로 돌아가는 갈애 서울 시내의 주유소에서 잠시 트럭을 멈추고 주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밖에서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가 밖을 보자 어떤 외국인이 서 있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체격이 우람했다. 아저씨는 빠르게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일단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는 두뇌 속 아주 깊은 곳에 보관해둔 예전에 배운 영어 실력을 끄집어냈다.

“헤... 헬로우. 메이 아이 헬프 유?”

“오, 하이. 쌩크 구드니스. 유 캔 스픽 잉글리쉬! 아임 서포우즈 투 밋 미스터 오 프롬 캉원도우. 앤 아 띵크 유 마잍 비 더 가이.”

강원도 아저씨는 정체불명의 외국인이 입을 열자마자 뭐라고 쏼라쏼라 말을 하니까 현기증을 느꼈다. 아니, 울렁증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겠다. 그는 계속 말라가는 자기 입술을 혀로 느끼며 옆 좌석에 탄 마누라에게 얼굴을 돌렸다.

“여보, 어쩌지..... 88 올림픽 때 배워놨던 관광객 맞이 영어 회화 실력이 바닥나버렸어.”

“겨우 메이 아이 헬프 유 한 마디 해놓고?”

“그러면 보통 난 어디 가고 싶다, 혹은 뭐 먹고 싶다 이러잖아. 그런데 이 사람은 좀 다른 말을 하는데 어쩌지?”

“아유, 그럼 주유가 끝나는 대로 그냥 가. 답답하면 자기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겠지.”

강원도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당황한 기색으로 밖에 서 있는 외국인에게 말했다.

“쏘리. 아이 고. 나우. 바이.”

그렇게 간단히 말하고 그는 운전석의 창문을 다시 올리는데, 외국인이 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썸원 텔즈 미 유 아 미스터 오. 아 유 미스터 오? 미스터 달후이 오?”

그 외국인이 오달희를 찾는 것이었다. 강원도 아저씨는 처음 보는 외국인이 자기를 찾자 깜짝 놀랐다.

“엥? 달희 오? 오달희? 그럼 난데? 예스, 미스터 오. 아 엠 미스터 오.”

외국인은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고 여겼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우, 굿. 아이 갓 어 메시지 포 유. 웨잇.”

그는 잠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는데 여자의 음성으로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달희씨. 저에요. 오늘 아침에 당신 집에 찾아갔던 이디레이아.”

강원도 아저씨 부부의 눈이 동시에 주먹만 해졌다.

“뜨어어어..... 귀신... 아니, 서양 신령님.”

“네네. 뭐 여신이든 신령이든 맘대로 부르세요. 그나저나 깜짝 놀라셨죠? 곧 출발하셔야 할 것 같으니, 빨리 이 남자를 트럭에 태우세요. 강원도 댁에 데려가셔야 합니다.”

강원도 아저씨는 너무 놀라 창백해진 얼굴로 트럭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사모님이 음성을 높이며 아저씨를 나무랐다.

“아니, 누군지도 모르는 서양인을 왜 차에 태워?”

“누군지 모르긴 뭘 몰라. 신령님이 태우라고 하시잖아. 그럼 신원 보증이 된 거지.”

“집에 있는 객들은 어쩌고 또 사람을 들여? 오늘 하나 빠지니 또 하나 들어오는 거야 뭐야?”

“아휴, 마누라야. 일단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빨리 집에 가자구.”

차에 올라탄 서양인, 아니, 이디레이아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이 빙의한 남자의 신분을 밝혔다.

“이 남성분은 미국에서 온 유명한 사업가입니다. 지금은 제 대리인의 자격으로 있고요. 여러분에게 해를 입힐 인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명한 사업가요?”

사모님이 이디레이아의 말에 놀라워하면서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기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왠지 기분도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그럼요. 이름이 맥스 라볼타라고 하는데, 관련 업계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죠.”

“오, 정말요? 어휴, 그런데 우리 집 같이 누추한 곳에 모셔도 되나 몰라.”

“누추하긴요. 앞으로 그 집이 어떻게 될 줄 아시고요. 나중엔 진짜 깜짝 놀라시겠네. 지금은 안 보여서 그렇지, 복이 굴러오고 있다고요.”

이디레이아가 집에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하자 사모님의 얼굴에 웃음이 다시 찾아왔다.

“호호호. 진짜요?”

“그럼요. 제가 운명과 예언의 여신이니까 그 정도 미래는 볼 수 있죠. 제 일을 이렇게 도와주시니 축복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

“오호호호! 진짜요?”

“그... 그럼요. 신은 거짓말을 안 해요.”

“오호호호호호! 진짜요?”

“지... 진짜지요....”

“오호호호호호호호! 그거 진....”

“에이! 진짜 그만 좀 해. 마누라야. 신령님께서 진짜라고 하시잖아. 왜 짜증나게 자꾸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그래? 나이가 몇인데 애 같이 굴어? 아유, 죄송합니다, 신령님.”

“내가 뭘? 난 그냥 맞장구친 것뿐인데.”

아내의 대응 방식이 짜증이 났는지 아저씨가 먼저 그녀의 맞장구치는 것을 틀어막았다. 이디레이아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조금 피곤하네요. 제가 깃들어 있는 이 육체를 좀 쉬게 해야겠어요. 아마 집에 도착할 때까지 깨워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혹시 뒷좌석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사람이 죽거나 기절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럼 전 이만....”

그 말을 마치고 이디레이아는 라볼타의 육체에서 떠났다. 그 후 그는 눈 한 번 다시 뜨지 않고 그대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 * *

몇 시간 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릴리카의 스위트 룸 거실에서 릴리카, 이사우라, 양 형사, 그리고 조 회장이 함께 모여 짧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양 형사와 조 회장은 릴리카가 거금을 들여 영입한 현지 코디네이터들이었다. 양씨는 바로 이 날 아침에 건수의 친구들을 위협하던 사람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형사의 신분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릴리카와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는 여러 커넥션을 통해 불새군이 한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 여러 커넥션 중에 하나가 양 형사 옆에 앉아 있는 조 회장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조회장은 회장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40 대 남성으로 사나운 인상에 큰 체격을 하고 있었다. 그가 풍기는 험악한 분위기와는 달리, 그는 영어로 대화가 가능해서 릴리카와 양 형사의 사이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그의 단어 선택과 말투는 대체로 정중했으나 희한하게도 그의 풍기는 인상이 남달랐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와 한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종합하여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저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양 형사가 조 회장이란 자에게 능글맞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조 회장, 여기 두 분에게 오늘 아침 우리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좀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적어도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냈으니 작게나마 성의를 받아서 격려를 받고 싶어서 말이야. 크크크.”

조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잠깐 생각을 해보다가 양 형사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몇 달 동안 신경쓴 것에 비래 보수는 거의 받지 못했으니 지금 시점에 그래도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전에 형사님도 보셔서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이 보통 내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괜히 지금 돈 얘기했다가 소탐대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뭐. 우리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몇 달간 그 건수라는 놈이 어찌나 잠수를 잘 탔던지 머리카락 하나 찾을 수 없었다가 드디어 오늘 어디 있는지 찾아냈는데 이참에 돈 냄새 좀 맡아 보면 안 된다는 건가.... 허, 참. 그러지 말고 내가 요구하는 걸로 하고 조 회장은 그냥 통역만 하는 걸로 하면 어때?”

조 회장은 다시 입을 다물고 혀로 잇몸을 훑으며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이 섰는지 릴리카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는 방금 양 형사가 말한 것을 그냥 영어로 통역한 것이 아니라, 릴리카가 기분 상하지 않게 최대한 듣기 좋은 식으로 돌려 말하고 또 포장해서 전달했다. 그러자 릴리카가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다. 양 형사는 그녀의 돌발적인 웃음에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었지만 조 회장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와 이사우라를 바라보며 무표정을 지켰다.

흔들리지 않는 조 회장의 표정을 확인한 릴리카는 한 쪽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갱스터치곤 제법이군. 좋아. 요구하는 걸 들어주지. 10 만 달러. 일단 그 정도를 각각 두 사람의 계좌에 지금 넣어주겠어. 어때? 이제 만족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