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2 화

만월의 밤 – 42

“호호호! 베토케로우스, 그 전설의 괴수와 손을 잡는다고? 흐음. 이거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로군!”

릴리카는 그렇게 말하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방금 들은 에뮤니우스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사우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시각각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태양을 보았다.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수천 년 전에 그들의 세계에 파멸을 가져왔던 괴수와 손을 잡으라고 하다니.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아니, 그게 어떤 도박이든지 간에 이 멍청한 릴리카는 절대 감당할 수 없어. 다른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반드시 막아야 해!’

이사우라는 급한 마음에 릴리카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릴리카는 얼굴을 구기며 그녀의 부관을 째려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이사우라, 네가 감히 내 팔을 잡아?”

“죄... 죄송합니다. 릴리카님. 아무래도 이 뱀 같은 자의 제안은 거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자는 또다시 릴리카님을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발 거절하십.....”

‘쫙!’

이사우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릴리카의 손이 올라가더니 그녀의 뺨을 때렸다.

“이 건방진 게 어디서 참견을 하고 앉아있어! 내가 지금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게 안 보여? 주제를 알아야지!”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아서 이사우라는 큰 수치심을 느꼈다. 하지만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서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릴리카님. 제발 제가 드리는 충고를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오. 에뮤니우스 이 자의 말은 믿을 게 못 됩니다.”

그러자 다시 릴리카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이사우라, 네년이 아주 하늘도 모르고 까부는구나. 왜? 평민 출신으로 너 정도면 꽤 많이 출세한 편이어서 그렇게 건방진 거냐? 이게 어디 건방지게 충고랍시고 하고 싶은 얘기, 할 수 없는 얘기를 다 지껄이려고 들어? 아주 네가 대장이고 사령관이고 다 해먹지 그러냐? 응?”

주위의 병사들 거의 대부분이 엘리시움에서 평민 출신인지라, 그들은 충언을 올리고도 뺨을 얻어맞은 이사우라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나서서 그녀를 옹호하지는 못했다. 릴리카는 고향에서 권력 있는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대부분 그저 이름만 있는 그들과 달리 성도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에서도 사용하는 ‘칼라스’였다. 만일 그들이 고향을 떠나 외딴곳인 이 지구에서 한 부대로 오랫동안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서로 대화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와 이사우라, 그리고 병사들 간에는 확실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릴리카가 이사우라의 뺨을 때리고 윽박지르는 동안 바로 뒤에 서있던 데디쿠스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여서 건수와 함께 있던 히메이오스와 붉은 수염의 헨리에게 다가갔다. 그가 히메이오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큰일이야. 에뮤니우스가 릴리카에게 베토케로우스와 손을 잡으라고 제안했어. 함께 힘을 모아 케르케로우스를 죽이면 그 괴수가 검은 방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서 우리들을 전부 엘리시움으로 보내준다는 거야.”

히메이오스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데디쿠스를 쳐다봤다. 데디쿠스는 입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는 다시 히메이오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릴리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사우라님이 반대 의견을 내놓으니까 릴리카가 화를 내며 뺨을 때렸어.”

데디쿠스는 그 말을 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히메이오스는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케르케로우스는 어떤 조건도 없이 우릴 전부 보내준다고 했잖아. 싸우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그냥 내버려 두고 고향으로 가면 안 되나?”

데디쿠스는 고개를 저었다. 릴리카는 절대로 불새에게서 받은 케르케로우스 처단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다시 한번 히메이오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중에 검은 방의 입구에 도착하면 늑대 사제에게 큰소리로 외치라고 해. 케르케로우스는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고 아무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우릴 전부 무사히 엘리시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알겠지? 그게 신호야. 그때 이사우라님이 릴리카를 쓰러뜨리실 거야.”

히메이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디쿠스가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들 곁에 있던 건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해요. 아까부터 누군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계속요.”

데디쿠스는 조금 전 에뮤니우스가 베토케로우스의 부하가 감시하고 있을 거라고 했던 얘기를 들었는데 똑같은 얘기를 건수가 하는 것이 아닌가.

“어딘데? 어디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데?”

건수는 턱으로 어두운 숲속 방향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저기요. 그리고 저기요. 그리고 또 저기요. 또...... 저기도요. 꽤 많군요. 그리고 멀리 있어요. 하지만 왠지 그들은 거기서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건수가 한군데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몇 방향이나 턱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데디쿠스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야? 매복인가? 우린 지금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거잖아? 안 되겠다. 어서 이사우라님께 알려드려야 해! 히메이오스. 방금 내가 말한 것 그대로 건수에게 전해.”

데디쿠스는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데디쿠스가 이사우라에게 돌아와서 보니 그녀의 뺨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그녀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렸다. 데디쿠스 기분이 엉망이 되었을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여겼겠지만, 지금 부대가 늑대들에게 포위당한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건수가 말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녀에게 자기들이 늑대들에게 포위당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에뮤니우스와 대화하고 있는 릴리카에게 갔다. 릴리카는 이사우라를 보자 다시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뭐야? 또!”

“릴리카님, 큰일입니다. 방금 케르케로우스의 사제가 알려주었는데 우리가 늑대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사우라는 방금 데디쿠스가 보여준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적들이 있는 장소를 말해주었다.

“아니, 저 멍청한 사제 놈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예.”

“이사우라! 전 부대원에게 전투태세를 취하라고 빨리 알려! 어서!”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에뮤니우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말했다.

“잠시만요. 릴리카님, 과연 그게 현명한 행동일까요?”

“뭐? 무슨 헛소리야! 지금 늑대들이 우릴 포위하고 곧 공격해올 참인데!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는 거냐!”

릴리카가 꽥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렸다. 에뮤니우스는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워... 릴리카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보건대, 아마 이곳에 있는 늑대들은 여러분들을 공격하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사제의 말대로 여러분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릴리카는 다시 이사우라에게 명령했다.

“이사우라! 전군에게 기습공격에 대비하라고 해!”

그러자 에뮤니우스가 손바닥을 흔들며 소리 질렀다.

“안됩니다! 본시 늑대란 이런 산속에서도 인간보다 훨씬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기습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맙니다. 게다가 우린 적들이 저곳에 얼마나 많이 숨어 있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항복이라도 하라는 거냐? 우리 불새군이 저 검은 늑대들에게?”

“항복하라는 게 아닙니다. 아니,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제 말대로 하십시오. 빨리 베토케로우스님께 손을 잡겠다고 제안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들이 삽니다!”

“안됩니다! 릴리카님!”

이사우라도 지지 않고 반대했다. 양쪽 옆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니까 릴리카는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설상가상으로 이미 해가 많이 서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입안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