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55 화
솔로우스 – 55
잠시 후, 텔리와 일행의 눈에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촛불이었다. 주위가 조금 밝아지자 그들은 자기들 앞에 긴 탁자가 한 없이 어두운 어둠 속에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척 긴 탁자였는데, 그 한 쪽 끝에 이디레이아가 의자 곁에 서있었다. 그런데 신기 할머니는 온데간데없고 금발에 연한 하늘색의 파란 눈을 한 젊고 아리따운 여성이 새하얀 튜닉을 입고 서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여신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미스터 황은 자기도 모르게 이디레이아를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알렉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으나 속으로는 여신의 아름다움에 몹시 놀라고 있었다.
‘미의 여신이 아니신데 어찌 저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미스터 황은 별안간 손으로 자기 얼굴을 부채질 하더니 말했다.
“어휴, 왜 이렇게 더운 것 같지? 후끈후끈하네.”
텔리는 그의 사제와 전사가 넋이 나간 채 이디레이아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정신 차려. 이것들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금 자신이 들어있는 마피아 바비의 배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미스터 황이 여전히 흥분한 얼굴을 하고 텔리에게 물었다.
“그... 그럼 저 여신님의 저 몸도 실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건가요?”
텔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저게 이디레이아의 본 모습이야. 아니, 실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신들이 모인 곳에 나타날 땐 늘 저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사실이야.”
“세상에......”
미스터 황은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이디레이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황홀해했다.
“여신님은 정말 아름다워요.....”
“멍청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했지? 가장 추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릇에 담겨있을 수도 있는 거야.”
“텔리님도 신이시니까..... 분명 본 모습은 아주 멋있으실 거예요...... 그쵸? 텔리님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들... 아니, 신들께선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 말도 안 했어.”
“네?”
“왜냐면 난 내 본 모습을 본 자들을 전부 죽였거든.”
알렉시스는 미스터 황이 얼굴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여신을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거슬려서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봐, 지금 예의 없게 뭐 하는 짓이야? 계속 여신님을 그런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거야?”
텔리가 한숨을 쉬며 서 있는 이디레이아에게 물었다.
“너, 지금 이게 다 뭐하는 짓이냐? 우리를 멧돼지 신수의 접힌 공간으로 데려가는 것 아니었어? 넌 분명 그곳으로 가는 입구를 열었던 거잖아.”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대답했다.
“내가 언제 여러분을 거기로 데려간다고 했죠? 그리고 난 멧돼지 신수의 공간으로 가는 문을 열었던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여러분을 여기로 데려올 생각이었는데요.”
“하아아..... 이게 진짜! 죽고 싶나! 이디레이아, 빨리 대답해. 여긴 어디야? 그리고 네 목적이 도대체 뭐야?”
“여긴 나의 공간입니다. 그러니 예의를 지켜요. 그런 흉악한 말은 삼가고 일단 여기 와서 자리에 앉아 봐요.”
“여긴 너의 공간이니까 예의를 지키라고? 거기 가서 자리에 앉아? 아니, 이 여자가 진짜 머리가 돌았나? 야! 지금 바빠 죽겠는데 왜 우릴 여기로 데려와?! 너 진짜 이렇게 하는 목적이 뭐야?”
“호호.....”
이디레이아는 실실 웃더니 손바닥으로 긴 탁자를 가리켰다.
“그러지 말고 모두 이리로 와서 의자에 앉으시죠.”
“뭐? 지금 우리더러 순순히 거기 가서 의자에 앉으라고? 너 정말 돌았냐? 빨리 여기서 나가게 해줘. 이 미친년아!”
“앉기 싫으면 다시 돌아가던 가요. 물론 당신들이 여기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다면 말이에요. 호호호.”
“뭐라고? 이게 진짜! 한 번 뜨거운 맛을 봐야지만 네가 정신을 차리지?!”
텔리는 이디레이아가 자신을 빈정댄다고 생각했는지 몹시 화를 내었다. 오른 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곧 하얀 빛이 그의 오른 손을 감쌌다.
“저 재수 없는 여신, 오늘은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텔리는 그렇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디레이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 자리에 발이 묶인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어.....? 이거 왜 이래? 왜 내 발이.... 발이 안 떨어져?”
이디레이아는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짓더니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주위를 돌려보면서 말했다.
“쯧쯧쯧. 텔리. 내가 방금 뭐라고 그랬죠? 여긴 내 공간이라니까요? 당신이 맘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하체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텔리는 당황해서 소리 질렀다.
“너.. 너.... 너 지금 이게 다 무슨 뜻으로 하는 행동이야? 너 설마 이거 나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알렉시스도 보다 못해 한 발짝 나아와 이디레이아에게 부탁했다.
“이디레이아님, 부탁드립니다. 제발 텔리님을 해치지 말아주세요.”
“알렉시스, 인마!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누가 누구를 해친다고? 저 사악한 여신이 감히 나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너도 같이 죽을래? 이씨! 이씨!”
그 말을 들은 텔리는 더욱 흉포해졌다. 그가 마구잡이로 발을 휘두르자 상체가 휘청거렸다. 그런데 하체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마치 신장개업하는 가게 앞에 설치하는 흔들리는 풍선 같은 꼴이 되었다. 이디레이아는 배불뚝이 중년 남성 바비의 몸을 가진 텔리가 보여주는 우스운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호호호호호! 저건 정말 나 혼자 보기 아까워요. 엘리시움의 다른 신들도 지금 당신의 모습을 꼭 함께 봤어야 했는데! 호호호호!”
알렉시스는 다시 한 번 이디레이아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이디레이아님, 제발 노여움을 푸시고 텔리님을 놓아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텔리는 더욱 노발대발하였다.
“우아아악! 뭐라고? 노여움을 풀고 날 놓아줘? 야! 알렉시스! 너 진짜 자꾸 날 능욕할 거야? 누가 누굴 풀어줘? 저 년이 감히 날 잡아두기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이디레이아는 깔깔거리며 웃다가 잠시 진정하려는 듯이 가슴에 손을 대더니 간신히 알렉시스에게 대답했다. 여전히 웃음을 잘 참지 못해 억지로 웃음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아아..... 알렉시스, 난 그저 텔리가 나의 공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뿐이랍니다. 어둠이 내리면 텔리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듯이, 나 역시 나의 공간 안에선 저 자에게 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예요. 지금 내 말 들었죠? 텔리?”
텔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씩씩거리며 소리 질렀다.
“알긴 뭘 알아? 이 미친년아! 여긴 네 집이니까 나더러 순순히 네 말을 들으라는 거냐? 그거야? 너 좋은 말로 할 때 붙잡고 있는 내 다리를 놔라. 아니면 정말 오늘이 네가 사는 마지막 날이 될 테니까!”
이디레이아는 두 어깨를 들썩이며 마치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누가 누구의 다리를 잡고 있다는 거죠? 당신의 다리를 잡고 있는 건 당신 자신이잖아요? 보세요.”
그녀가 손을 공중에 올리자 마치 연극의 스포트라이트처럼 텔리의 머리 위로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텔리의 주변이 밝아졌다. 그는 발아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래에는 여러 명의 또 다른 자신이 시커먼 바닥에서 상체만 드러내고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금발에 콧수염을 기른 여러 사람들이 익히 아는 바로 뉴욕에서 온 텔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는 끝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끼아아악! 이게 뭐야! 나....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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