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36 화

솔로우스 – 36

붉은 화염은 순식간에 히메이오스를 새카맣게 불태워버렸다. 바로 곁에 있던 건수와 헨리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었다. 헨리가 겉옷을 벗어서 친구 몸에 붙은 불을 꺼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그에게 붙은 불은 보통 불처럼 쉽게 꺼지는 불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불새 에피로제의 능력을 받은 자가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 양손이 묶여있는 건수도 땅에 누워서 발로 흙과 풀을 차올리며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끄으으.....”

히메이오스는 마지막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헨리는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에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아아아! 히메이오스....! 히메이오스!”

케르케로우스 일행을 포위했던 병사들은 히메이오스의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 입장에선 배신자는 응당 죽여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조금 더 히메이오스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던 자들도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그가 살아있기를 바랬던 것이다.

붉은 화염이 히메이오스를 새카맣게 태워버리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솔로우스를 향했다. 그는 한 쪽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있었는데, 그 팔은 하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즉, 히메이오스를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그였던 것이다. 그가 했던 행동이 좋던 나쁘던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 그는 방금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람들에게 해명해야만 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자는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자는 엘리시움에 돌아가서는 안 된다.”

뒤에서부터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던 데비아나는 입술에 작은 피리를 갖다 댔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그러자 잠시 손을 내렸던 병사들이 다시 깃털을 들어 올렸다. 솔로우스와 두 젊은 사제들도 입으로 주문 같은 것을 중얼거리면서 손에 쥔 큰 깃털을 위로 올렸다. 세 사람의 깃털에서 하얀 빛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다른 병사들이 들고 있는 깃털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빛이 그물이 완성되더니 그것은 곧 활활 타는 화염의 그물이 되었다. 데비아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불의 그물을 적들에게 던져라!”

“옛!”

병사들이 불의 그물을 케르케로우스와 그 일행에게 던졌다. 히베이오스에게 붙은 불을 끄려고 땅에 등을 대고 누워있던 건수는 번개같이 일어나 헨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이런! 그의 양손은 에피로제의 밧줄에 묶여 쓸 수가 없었다.

“헨리씨! 피해요!”

하지만 이미 그물은 불새군 병사들의 손을 떠나 그들 머리 위로 날아오고 있었다.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건수와 헨리 머리 위로 그림자가 날아와 그들의 시야를 막았다. 그것은 케르케로우스의 그림자였다.

‘화르르르르!’

“어어억!”

케르케로우스가 몸을 날려 건수와 헨리를 덮은 것이었다. 그의 몸은 방금 전 쓰러졌던 히메이오스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건수는 당황해서 케르케로우스를 밟으며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헨리 역시 벗었던 겉옷으로 늑대 신수의 몸을 때리며 불을 끄려고 했다.

“안 돼! 케르케님! 빨리 불을 꺼야 돼!”

케르케로우스도 온 몸에 하얀 빛을 내며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있는 불의 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히메이오스처럼 완전히 불타지는 않게 되었다.

“거... 건수야. 어서 여기를 피해라. 어서!”

“안 돼요! 케르케님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건수는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케르케로우스의 아직 몸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잠시 후, 불은 다 꺼졌지만 케르케로우스의 황금색 털은 대부분 불에 그슬려서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케르케로우스는 힘겹게 일어났지만 이냐 다시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뒤쪽에서 힘이 없어 땅에 웅크리고 있는 스라소니 산신령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솔로우스는 두 젊은 사제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앞으로 나아왔다. 그의 표정은 처음과는 달리 많이 어둡고 그 눈빛도 차갑게 식어있었다.

“케르케로우스님. 검은 방의 주인이시여. 아까 저는 당신과 대화로서 모든 것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제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무지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와 대화하는 중에도 일행을 시켜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으며.....”

“그건 오해였다고 했잖아요!”

건수가 솔로우스의 말을 끊으며 외치자, 불새의 대사제는 몹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건수를 째려보았다.

“조용히 하시게. 검은 방의 사제여. 그대가 숨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리고는 그는 다시 불에 타서 시커멓게 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는 케르케로우스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당신은 이상하게 변질된 우리의 배신자까지도 엘리시움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제 손에 불타죽지 않고 엘리시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독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세계를 잇는 검은 방을 감독하는 당신이라면 이미 변질된 자가 우리 세계에서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알고 계셨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가 검은 방을 통과하게 해주시려고 했다는 것은 모든 신과 신수들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엘리시움 전체를 배신한 행동입니다. 이제야 에피로제님의 뜻을 간신히 이해하겠습니다. 그분은 당신에게서 그런 면을 보시고 당신을 제거하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아.... 정말 전 우매한 종입니다. 대사제라고 하면서 에피로제님의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비록 인간인 제가 감히 신수를 해할 권한은 없습니다만, 에피로제님의 대리자로서 당신을 심판하도록 하겠습니다. 에피로제님의 명령에 따라 당신을 죽이고 생명의 정수를 취해 그분께 바치겠습니다.”

솔로우스와 젊은 사제들이 케르케로우스에게 다가오려고 하자, 건수는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안 돼! 감히 누굴 해치겠다고!”

건수는 급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기에 몸에 힘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가 하얀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의 몸이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상체를 묶고 있는 붉은 밧줄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조금씩 끊어지는 것이었다. 다리에서부터 올라온 빛은 그의 몸과 머리까지 번져서 온 몸이 온통 하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솔로우스는 그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니! 검은 방의 사제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에피로제님의 힘이 깃든 끈을 끊어내려고 할 정도라니, 더 이상 놔뒀다간 위험해!’

솔로우스는 급히 손을 올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양미간에서 하얀 빛이 나더니 이마 주위에서 고리 모양의 빛이 생겨났다.

“검은 방의 사제! 너부터 죽여주마! 하앗!”

솔로우스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이마 주위에서 생겨난 빛의 고리가 건수에게 쏜살같이 날아갔다. 빛의 원반은 건수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퍽!’

“아악!”

건수는 원반을 맞고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리고 건수의 얼굴을 때린 원반은 튕겨져 땅에 떨어지며 불꽃을 냈다. 히메이오스 때와는 달리 온 몸이 아닌 그의 얼굴만 화염에 휩싸였다. 지금 그의 몸 전체가 하얀 빛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케르케로우스가 전해준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솔로우스의 화염을 밀어낼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는지 그만 얼굴에 불이 붙어버렸던 것이다. 땅에 쓰러진 건수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공중에 발길질을 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아아아악! 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