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35 화
솔로우스 – 35
불새군 병사들은 아직까지 포위망을 풀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 히메이오스에게 질문했던 그 병사가 외쳤다.
“너희가 정말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다면 쓰러져있는 베도아님과 병사를 우리에게 넘겨줘. 그럼 우리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겠다.”
히메이오스와 건수가 그 말을 듣고 병사의 몸 위에 앞발을 올리고 있는 케르케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발을 병사의 몸에서 치웠다. 몸이 자유롭게 된 병사는 허겁지겁 기어서 도망쳤다. 다른 두 병사가 케르케로우스와 건수의 눈치를 보며 기절한 베도아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양 팔을 잡고 부축하여 데려왔다. 그러자 병사들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케르케로우스의 일행과 불새군 사이의 긴장이 조금 누그러지자 히메이오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원래 말재주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입에서 할 말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지금 배신자니 아니니 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여기 지구에 와서도 그 따위 말을 하는 게 말이나 돼? 여기 오면 우린 다 같은 엘리시움인인 거지. 무슨 신을 섬기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곳의 신들도 아니잖아.”
히메이오스는 손가락으로 자기 앞에 있는 불새군 병사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아니, 그 신이란 자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볼까?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도 신들은있어. 심지어 그들은 우리 세계의 신들보다 훨씬 강력해. 그들은 모두 자기들만의 신화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들은 각자 우주도 만들었고 이 지구도 만들었고 그 안에 모든 살아 움직이는 걸 만들었다고 해. 너희들은 그런 신들을 만나본 적 있어?”
지목당한 병사는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 아주 옛날에 고대신들이라면 모를까. 현존하는 새로운 신들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지. 하지만 고대신들은....”
히메이오스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손을 들어 병사의 말을 끊었다.
“고대의 신들은 뭐?”
병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이젠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잖아. 그들의 얘기는 그저 애들한테 해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지.”
“맞아.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그 옛날이야기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런데 우린 ‘살아있는’ 신과 신수를 가까이에서 섬기고 있어. 우리들은 신의 축복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여기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지. 그렇다고 이들이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일까? 가까이에서 살아있는 신과 함께 호흡하고 있지 못해서? 아니야. 내가 본 이 세계의 사람들은 가까이에서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모두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어. 여기 사람들은 100년도 살지 못하는데도 몇 세대에 걸쳐 엄청난 기술을 이뤄냈어. 그 기술로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놀라운 기계들을 만들어내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다 속을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니고, 땅 위에선 우리 세계의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지. 그것뿐이겠어? 이들은 폭탄이란 물건도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단 하나로 온 세상을 불태우며 뒤흔들 수 있는 것도 있어. 그 파괴력이 너무 대단해서 우리 세계의 어떤 신도 신수도 그 힘을 감당해낼 수 없을 정도야. 만약 이 세계 사람들이 검은 방의 존재를 알게 되면 엘리시움으로 와서 우리를 단숨에 정복할지 몰라.”
히메이오스는 여기서 하던 얘기를 잠시 끊고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가 하는 얘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일부는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혹시 자기가 히메이오스의 말에 동조하면 주위 동료들이 분노할까봐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히메이오스는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잠시 주저했다. 지금부터 얘기할 것을 들으면 병사들의 기분은 더욱 나빠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진실을 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너희는 다 속은 거야. 우리 세계의 신들은 전부 거짓 신들이야. 그들은 세상을 창조하지도 않았고 우리의 삶을 좋게 만들어주지도 않아.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생물들일 뿐인 거야.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있어. 너희도 나처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서 엘리시움으로 돌아가서 거짓 신들을 위한 세상이 아닌 새롭게 인간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야.......”
“입 닥쳐! 이 정신 나간 놈!”
히메이오스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불새군 뒤편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데비아나였다. 그녀는 히메이오스의 얘기를 듣다가 넘치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이 배신자 놈아! 듣자듣자 하니 네놈이 별 미친 소리를 다 지껄이는구나! 뭐, 어째? 거짓 신? 자기들의 욕심을 위해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있어? 그렇다면 네놈은 에피로제님이 거짓이라는 거냐? 그 분의 위대하신 꿈을 위해 우리가 전쟁터로 나가는 것도 모두 거짓이라는 거냐? 우리 전부를 속이려고 사특한 말만 내뱉고 있는 네놈의 혀를 내가 당장이라도 뽑아야 화가 풀릴 것 같다!”
히메이오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 같으면 일개 병사로서 대장에게 함부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였다. 배짱이라곤 하나도 없던 그였지만, 이 세계에서 오래 있는 동안 많은 일을 경험했고 그 동안 생각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서 데디쿠스와 함께 힘을 합쳐 자신의 상관인 릴리카까지 배신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엔 오히려 데비아나가 아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마음 속으로 자부하게 되자 그에게 이전에 없었던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담대하게 그녀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전 배신자가 아닙니다. 다만 진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거짓 신들을 위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시간을 희생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신들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발전을 거듭해서 놀라운 문명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각자 우리 세계의 신들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은 원래 그렇게 눈부셨던 것입니다.”
데비아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될 정도로 흥분하여 대꾸했다. 그녀는 이제 서 있던 곳에서 앞으로 마구 걸어 나오면서 외쳤다.
“입 닥쳐라! 네깟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인단 말이냐?”
하지만 히메이오스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신들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가능성까지도 닫아버렸던 것입니다. 나와 여기 제 동료, 헤베이투스는 여기서 오랜 세월 지내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엘리시움에 꼭 돌아가야 합니다. 가서 사람들에게 지구에 대해서 알릴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앞에 선 병사들을 빛나는 눈으로 보았다. 그는 주먹을 위로 들더니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봐, 친구들. 검은 방의 주인은 양쪽 세계를 똑 같이 잘 아시는 분이야. 그래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검은 방을 지키고 계셨던 거라네. 두 세계가 통하게 되면 엘리시움의 사람들이 내가 말한 사실을 알게 되고 위기를 맞게 되니까 말이야. 우리 다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세! 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우리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 때였다. 갑자기 깃털을 들고 있던 불새군들 사이에서 하얀 빛을 내는 원반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히메이오스의 몸을 때리는 것이었다. 곧 그의 몸은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
‘화르르르르르.....’
“으아아아아아!”
화염에 휩싸인채 히메이오스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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