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76 화

솔로우스 – 76

‘화르르륵-’

솔로우스는 또 다시 불줄기를 텔리에게 휘두르며 다가오는 그를 공격했다. 분노한 텔리는 눈에서 하얀 빛을 내뿜으며 몸을 돌려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그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텔리는 몸을 빙글 돌리며 그것들을 피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수월하게 공격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왠지 텔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자기가 있는 곳에서 머물면서 솔로우스의 공격만을 피하고 있을 뿐, 거리상으로는 조금도 대사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아까처럼 솔로우스의 공격 범위 밖으로 물러선 다음 원거리에서 그를 공격하는 것이 현명할 듯 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에잉. 바이 녀석처럼 멀리서 적에게 영향을 주는 방법이 내게 있었으면 좋았겠건만, 난 그런 재주가 없으니..... 아니면, 아까 처음 베토케로우스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키쥬아의 환영이 내 환영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저런 녀석은 일도 아닌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솔로우스는 더욱 힘을 돋우고 있었다. 에뮤니우스에게 기습당해서 한 동안 마비되었던 그의 몸은 이제 거의 마비가 풀려서 더욱 많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에 따라 그가 방출하는 힘은 더욱 세져서 그의 머리 위로 불타오르는 불기둥은 더욱 위로 높게 치솟았다. 텔리는 그것을 보고 조금 더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자식. 진짜 장난 아니네. 말로만 인간이지, 사실 신과 다름이 없잖아?’

솔로우스가 더 많은 힘을 내뿜자, 그가 휘두르는 불줄기도 훨씬 굵어졌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불줄기의 화염은 방금 전보다 더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솔로우스는 텔리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치기는커녕 피하는데 급급하자 좀 더 공세를 올렸다. 나무 몸통만한 불줄기들을 그에게 휘두르며 태워버리려고 했다.

‘화르르르륵!’

텔리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불줄기를 보고 상체를 급히 숙였다.

“이크! 저 녀석이 진짜 뭘 좀 할 줄 아는 녀석이구나!”

그가 몸을 숙이며 땅을 바라보자 불줄기에 의해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응? 내 그림자?”

텔리는 다시 고개를 들며 씨익 웃었다.

“아하하. 그래. 내겐 그림자가 있었지!”

그는 다시 그의 몸통 쪽으로 날아오는 불줄기를 하나 피하면서 상체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자, 여기 내 목이 있다. 자신 있으면 가져가 보던가!”

텔리가 상체를 앞으로 쭉 내민 모습을 보고 솔로우스는 그가 몸의 균형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머리를 태워버리려고 머리 쪽을 향해 불줄기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랬더니 텔리는 재빨리 몸을 숙이면서 아예 땅에 드러누워 버렸다.

‘화르르르륵-’

불줄기가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데 누워 있는 텔리는 그 불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 속으로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아마 그냥 서 있었다면 그렇게 빨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워있었기 때문에 그림자에 닿는 몸의 면적이 더 컸다. 그래서 그는 더 빨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어디로 갔지?”

방금까지만 해도 보였던 텔리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솔로우스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공중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이는 불줄기들을 모두 텔리가 있었던 쪽으로 보내서 주변을 비춰보면서 샅샅이 찾았다. 그는 아마도 텔리가 주변 어두운 곳 어디에 숨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위를 밝게 비추려고 모든 불줄기로 찾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야?”

솔로우스는 공중에서 불줄기들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텔리를 찾아봤지만 쉽게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순간 텔리는 그림자 속에서 다른 그림자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상에서 눈에 띌 일이 없었다.

솔로우스의 온 정신이 오직 정면에 쏠려있을 때였다. 텔리의 머리가 ‘쑤우욱’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그의 머리가 나온 곳은 솔로우스가 등지고 있는 나무 아래 그림자였다. 원래 그곳은 그림자가 만들어질 장소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솔로우스의 화염기둥 때문에 그림자가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원래 내가 사용하는 육체는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사용하는 이 마피아 바비의 육체는 어두운 색의 머리카락이라 쉽게 눈에 띄지 않겠군. 적어도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들어.’

텔리는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머리만 내놓고 이제부터 어떻게 솔로우스를 처리할 지 잠시 생각했다.

‘저놈 주변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은 보통 불이 아니야. 세상의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다는 불새의 불이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이라...... 아, 그래. 불새의 불로도 태울 수 없는 게 딱 하나 있지. 바로 암흑! 하지만.....’

텔리는 솔로우스를 공격할 방법을 손쉽게 찾아낸 듯 했는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까 베토케로우스와 처음 싸웠을 때처럼 내 몸을 암흑으로 바꾼다면 저 불을 뚫고 저 녀석을 공격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 멍청한 바비의 몸이 내 진짜 모습을 구현해 줄 수 있을 지가 문제구나. 아니, 시도해본다 하더라도 그 모습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이런 쓰레기 같은 육체여도 잠시 동안이니까 적어도 팔 하나와 두 발 정도는 암흑의 몸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한 번 해보자.’

그는 조심스럽게 그림자 밖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신발을 벗더니 양 발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의 발에서 하얀 빛이 나다가 곧 사라지더니 새카맣게 변했다. 발 부분만 그의 원래 모습인 암흑의 육체로 변한 것이었다. 그가 두 발을 그렇게 변하게 한 이유는 솔로우스 주변에서 접시모양으로 불타오르는 불새의 화염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공간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바이베노파시스였다면 공중에 떠서 그에게 접근했겠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텔리에겐 이 방법을 사용해서 직접 다가가는 것 외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텔리는 암흑으로 이뤄진 두 발로 접시모양으로 불타고 있는 땅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다행히 솔로우스 주변의 불이 ‘화르륵’거리며 타오르고 있어서 그 소리 덕분에 그는 인기척을 숨기기 더 수월했다. 그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걸어가면서 오른 쪽 팔에 힘을 집중시켰다. 팔이 하얀 빛에 휩싸였다가 점점 그 빛이 희미해지더니 그가 솔로우스 바로 뒤에 이르렀을 때, 그 팔은 새카맣게 변했다.

준비가 끝나자, 텔리가 솔로우스의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찾아? 설마 날 찾고 있었던 거야?”

“아앗!”

그 말을 듣고 솔로우스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