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17 화

만월의 밤 – 17

강원도의 어느 산 속.

베토케로우스는 거구를 이끌며 부하들과 함께 밤을 지낼 곳을 찾고 있었다. 그는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걷고 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의 눈은 전보다도 더 매섭게, 마치 붉게 타오르는 불덩이 같이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공터가 나타나자 그는 함께 걷던 늑대들을 멈춰 세웠다.

“모두 잠깐만. 내가 쉴 장소는 여기쯤이 좋겠다.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낼 테니 너희들은 저 아래에 진을 치고 있어라.”

그의 말에 늑대들은 한 번씩 짖으며 대답했다. 그 때 수풀 뒤에서 부관 카베쿠스가 입에 큰 물체를 물고서 나타났다. 그가 베토케로우스 앞으로 나아와 땅바닥에 물체를 떨어트렸다. 온몸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핏덩어리의 모습의 그 물체는 땅에 ‘쿵’ 하고 떨어지자 그 충격으로 순간 움찔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 물체는 피칠갑을 한 인간이었다. 다만 상태를 보아하니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베토케로우스는 부관이 가져온 인간을 보고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 듯 고개를 돌렸다.

“카베쿠스, 난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생각이 없다.”

“주인님, 음식이 아닙니다. 잠시 이놈을 봐주십시오. 최근 저희를 향한 인간들의 공격이 점점 다양해지고 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 녀석도 무기를 들고 우리를 공격하던 녀석들 중 하나인데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물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이 녀석을 먹어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캐내보라는 의미인 것이냐?”

“오늘 살상당한 늑대들 중 몸속에 정령석을 장착한 늑대만 3 마리입니다. 그 외 일반 늑대들의 피해는 배가 넘습니다. 인간들은 그 동안 사용하던 총기가 효과가 없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사용을 중단하고 덫과 그물을 사용해서 우리 늑대들의 다리를 묶은 다음 근접무기로 공격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이 녀석을 이용하셔서 적들의 생각을 좀 읽어주시면 저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베토케로우스는 자리에 누워서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했다.

“멍청한 녀석. 얼마 전에 내가 네 놈에게 이르지 않았더냐. 인간들이 우리를 공격할 방도를 찾아낼 것이니 대비하라고 하지 않았냔 말이다. 이곳 인간들의 지능은 놀랍도록 뛰어나다고 했지? 목숨만 길뿐 멍청한 우리 세계의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악한 존재들이라고 내가 분명히 네게 말했었다. 그런데 적의 새로운 공격 방식에 이렇게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카베쿠스는 주인의 따끔한 질책에 꼬리를 말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대처가 늦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래서 덫과 그물에 걸린 늑대들 중 옴니테바를 장착한 녀석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인간들에게 옴니테바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일이라고 내가 말했었지?”

“예. 그래서 제가 늑대들에게 미리 일러두었습니다. 사로잡혔을 때나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 그들 몸속에 들어있는 정령석 기기의 힘을 최대한 높여서 사용함으로써 그 넘치는 힘으로 기기의 폭발을 시도하도록 했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사로잡혔던 3 마리의 늑대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자폭을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이 인간 역시도 그 자리에 있다가 폭발에 휘말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옴니테바를 장착한 늑대를 3 마리나 잃었다고?

베토케로우스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카베쿠스는 점점 험악해지는 그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몸을 벌벌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베토케로우스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상체를 한 입에 베어 물었다.

“크으으.... 으적. 으적. 쩝.”

카베쿠스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주인이 얘기해줄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베쿠스.... 곧 이놈들이 더 몰려올 것이다. 이 녀석들은 자신들의 총알이 우리에게 무용지물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이놈 같은 사냥꾼들이 아니라 더 잘 훈련되고 강한 놈들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주인님,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미천한 종에게 지시를 내려주시옵소서.”

“너는 멀리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바이베노파시스 놈들에게 늑대를 한 마리 보내어 내 뜻을 전해라. 그와 그의 여동생이 나와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말이다. 내일 우리를 돕든지 아니면 우리가 그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라고 전갈을 보내. 그리고...”

베토케로우스는 그가 씹고 있던 시체를 땅에 뱉으면서 말했다.

“이 역겨운 고깃덩어리를 당장 내게서 치워라. 냄새만으로도 속이 안 좋아지는구나.”

“예, 알겠습니다.”

베토케로우스는 화가 많이 났는지 새빨간 안광을 번쩍거리며 으르렁거렸다.

“내일 보름달이 뜰 때, 네 형제, 리베우스가 엘리시움에서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검은 방을 통해 이곳을 올 것이다. 그 하루 동안 난 케르케로우스를 꺾고 검은 방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만약 너와 네 형제, 리베우스가 또 실수를 저지른다면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컹!”

카베쿠스가 날카롭게 한 번 짖었다. 아마도 주인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대답일 것이다.

“너희 형제는 내가 특별하게 뽑아 은총을 베푼 늑대들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나를 보좌해서 다른 늑대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라. 내게서 특별한 힘을 받고도 날 실망시키는 녀석들의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다. 네 운명도 네 선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베토케로우스의 음성은 차분했지만 그가 부관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서운 것이었다. 베토케로우스를 가장 가까운 데서 모셨던 그의 선조 늑대들의 많은 수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카베쿠스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주인님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끝내 먹이가 되었지.’

베토케로우스는 다시 웅크려 앉으면서 눈을 감았다.

“잘 이해했다면 이제 가도 좋다.”

카베쿠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의 주인이 먹다 버린 사냥꾼의 시체를 입에 물고는 부하들의 진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 때였다. 하늘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렸다. 베토케로우스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것은!”

그는 온몸을 곤두세우면서 모든 감각을 깨우기 시작했다.

“설마 누군가 검은 방의 문을 연 것인가? 카베쿠스, 너도 지금 느꼈느냐?”

카베쿠스는 입에 사냥꾼의 시체를 물고 있는 채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베토케로우스는 온 몸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의 몸에서 서서히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인 천리안을 발동시키는 것이었다.

“며칠 간격으로 누군가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 반복해서 검은 방.... 혹은 어떤 공간의 문을 열고 있다. 도대체 어떤 신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냐. 설마 엘리시움에서 다른 신들이 나를 추격하러 온 것인가! 하지만 내 천리안으로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너무 짧은 시간동안만 문을 열어서 그래. 내가 천리안으로 탐색할 시간도 주지 않다니, 보통 똑똑한 놈이 아니군.”

그는 말을 하면서 점점 천리안의 힘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이전과는 다르게 문을 오랫동안 열어 놓고 있다. 그래.... 그래.... 아...! 저쪽이다! 카베쿠스, 내가 지시하는 쪽으로 당장 부하들을 이끌고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오너라. 만약 엘리시움에서 추격해온 신이라면 곧바로 내게 돌아와서 보고해야 한다. 급한 일이다. 어서 움직여라!”

카베쿠스는 지금 베토케로우스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보기에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감 잡았다. 그는 베토케로우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냥꾼의 시체를 입에 문채 재빨리 숲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