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98 화

예언자들 – 98

펠리시아는 한국에 찾아오는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러 인천공항에 갈 채비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비록 하룻밤만 같이 지낸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함께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한 일을 경험한 터라 서로의 기억에 오래 남을 사이가 되었다. 특히 갈 곳이 없던 그녀를 잠시 지내게 해주고 공항에까지 먼 길을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하는 집주인 내외의 환대는 그녀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손을 잡고 무사히 미국에 잘 돌아가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사모님과 함께 강원도 아저씨의 트럭에 타고 손을 흔들며 모두에게 외쳤다.

“고맙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꼭 연락드릴게요. 혹시 일정이 되면 다시 한 번 들를 거고요.”

“펠리시아, 무사해야 돼. 아버지와 만나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 꼭 다시 만나자.”

알렉시스도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가 안전하게 아버지를 만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평탄하게 잘 진행되기를 빌어줬다.

건수와 함께 텔리는 이디레이아의 예언대로 검은 양복을 구하러 가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들 역시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가는 길 중간에 내리기로 했다. 건수가 먼저 트럭의 적재함에 오르고 뒤이어 오르려던 텔리가 펠리시아가 타고 있는 트럭의 문을 닫아주며 말했다.

“얘야, 드라마는 이제 됐어. 몇 번이나 인사하는 거야. 빨리 가라. 벤을 만나면 내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텔리..... 꼭 우리 어머니의 복수를.....”

“그래, 알아. 그리고 시신도 찾아볼게.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LA로 찾아가마.”

“예. 텔리를 믿어요.”

텔리의 황금색 수염의 한 쪽이 스윽 하고 올라갔다. 그는 말없이 차 문을 손으로 두드렸다. 출발하자는 신호였다. 곧 이어 시동이 걸리고 트럭은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 * *

건수와 텔리가 트럭 적재함에 타고 가는 길이었다. 텔리가 먼저 건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디레이아가 너를 시켜서 내게 선물을 사주라고 했다고?”

“예, 환영으로 어디에 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보여주셨어요. 정말 그렇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겠지. 달리 운명과 예언의 여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전 그 장소에 가는 길을 모르는데..... 어? 저기에요! 아저씨! 잠깐만요! 차를 잠시만 세워주세요!”

건수는 길가의 한 편의점이 가까워오자 일어나 트럭의 뒷 창문을 두드렸다. 그와 텔리가 차에서 내려서 편의점에 들어가자, 그 다음은 모두 이디레이아가 그에게 보여주었던 것 그대로 이뤄졌다. 몇 분 후, 건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복권을 1 만원어치 사서 긁었더니 그 중 몇 개가 되고 또 사고 또 되고... 그러다가 10 만원짜리가 5 개.... 이런 일도 생기는 구나. 믿을 수가 없네.”

그의 뒤를 따라 오는 텔리 역시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아니, 로또가 될 거였으면 한 번에 쾅하고 터지게 해줘야지 찔끔 찔끔 소액으로 받게 해주냐. 이디레이아가 참 통이 작구만.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돈을 생기다니 웃기는군. 크크크크.”

둘은 다시 트럭 뒤에 타고 마트로 갔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운명의 어머니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 건수는 그녀가 보여줬던 장소에서 텔리의 양복을 사고 텔리는 비록 싸구려 옷이었지만 나름 만족해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었다.

* * *

점심시간을 강원도 아저씨의 집에 남은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텔리가 말한 대로 훈련에 열심이었다. 알렉시스는 텔리가 자기 몸에 심어놓은 힘을 감지하는데 거의 성공했지만 미스터 황은 영 진척이 없었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알렉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알렉시스, 그 힘을 감지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내 몸에 그런 힘이 심어져 있다는 건 내 힘이 세진 것만 봐도 분명히 알겠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면 완전하게 감지해서 꺼내 쓸 수 있는 걸까?”

알렉시스는 눈을 감은 채로 집중을 하고 있는지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렉시스? 내 말 듣고 있어?”

“.......”

“알렉시스? 혼자만 하지 말고 나한테 좀 도움이 되는 얘기 좀 해줘.”

“.......”

“야, 알렉시스?”

알렉시스는 그가 자기 몫을 하지 못하고 자꾸 옆에서 질문하는 것이 훼방이 되는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뜨면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애송아, 네 몸의 변화를 느꼈다면 벌써 절반은 한 거나 다름없는 거야. 눈을 감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면서 텔리님의 힘을 느껴보란 말이야.”

“아무리 집중한다고 해도 안 되는 걸.”

“일부러 집중하려고 하지 말고 고요한 마음으로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다 보면 되게 돼있어. 이렇게.....”

알렉시스가 말을 하다가 오른 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조금씩 빛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봤지? 지금 난 이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만 아마 곧 될 것 같아.”

“그야 넌 이미 불새의 힘인가 뭔가를 다뤄봤으니까 쉬운 거겠지.”

자신만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을 경험의 차이로 탓을 돌리는 미스터 황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무슨 걱정이 있는지 알렉시스도 얼굴이 어두워져 있었다.

“난 오히려 다른 일을 걱정해야 하는 걸.”

“넌 잘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미스터 황은 두 팔을 뒤로 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알렉시스는 정면의 마당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감지한 새로 생긴 힘이 너무 커서 내 육체가 버텨줄 수 있는 지 그게 걱정이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두 힘이 동시에 발현된다면 내 몸은 부서질 지도 몰라.”

“어쩌면 그건 행복한 고민이다. 난 아예 한 가지 힘도 꺼내쓰질 못하고 있는데.... 난 소질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알렉시스는 처음으로 미스터 황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멍청아, 네가 소질이 없었으면 아예 처음부터 신의 힘을 받을 수도 없었어. 듣자하니 신의 힘을 직접 받았다는데, 그건 아마 신과 직접 접촉해서 힘을 받았다는 거겠지. 난 그런 식으로 힘을 받은 사람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구. 보통 그런 식으로 힘을 받게 되면 백이면 백, 전부 몸이 소멸되게 돼. 특히나 텔리님의 파괴적인 힘이라면 말이야.”

“그래? 진짜 내가 소질이 있기는 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미스터 황은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젖혔던 고개를 다시 원위치로 했다.

“하아아.... 그럼 어디 한 번 다시 제대로 시도해 볼까나.”

그 후 몇 번을 더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마룻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에이, 내가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그 일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에휴.”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눈을 질끈 감고 툴툴거렸다.

“응? 뭐야?”

그가 불현 듯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자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신기 할머니가 그의 머리맡에 서있었다.

“우와아아아악!”

그는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벌떡 일어나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아휴! 깜짝이야! 할머니, 인기척은 내시고 뒤에 서 계셨어야죠! 놀라서 죽을 뻔 했잖아요.”

그러자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입을 열어 천천히 대답했다.

“이눔아... 넌 아직 저승 갈 때 안됐다. 그러니 걱정 마. 그나저나 오늘은 손님들이 좀 오시겠는데. 지금 한 사람 들어오는구만.”

그녀가 말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정말 어떤 사람이 인사를 하면서 망가진 대문을 넘으며 들어오는 것이었다.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세요?”

어제 밤에 여기 방문했던 두 경찰들 중 하나인 강 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