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5 화

만월의 밤 – 5

반란을 일으키고 릴리카를 처단하겠다는 데디쿠스가 도와달라고 하자 건수는 자기가 계획의 어떤 부분을 맡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럼 내가 뭘 하면 됩니까? 이렇게 묶인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요?”

“지금 너가 뭘 해야 한다기보다는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케르케로우스가 우리를 받아줄 수 있도록 잘 말해주면 돼. 널 묶고 있는 오랏줄은 아마도 그가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도 신수니까 오랏줄에 불어넣은 힘을 없애는 게 가능할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먼저 사전 작업을 마친 다음에 네게 미리 신호를 줄 테니, 그 다음에 릴리카를 케르케로우스에게 데려가면 될 거야.”

“사전 작업이요? 그리고 케르케님께 그녀를 데려가라고요?”

“응. 사전 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 릴리카를 해치우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직 완전히 결심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믿어도 돼. 왜냐면 릴리카보다 우리 부대원들을 더 생각해주는 진짜 리더거든. 그리고 릴리카를 늑대 신수에게 데려가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준비를 다 마치면 그 자리가 곧 그녀의 무덤이 될 테니까.”

“음......”

데디쿠스의 얘기는 곧 아직 반란의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었다. 건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함정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건 혹시 함정입니까? 내가 케르케님이 어디 계시는지 알아내려는 그런 시도인가요?”

그 질문에 뒤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붉은 수염의 헤베이투스가 대답했다.

“너가 릴리카의 요청대로 늑대를 불러도 너와 네 친구들은 끝내 그녀의 손에 죽을 것이고 말하지 않아도 죽을 거야. 불새군은 우리의 정체를 파악한 이곳의 사람들을 살려두지 않아. 18 년이라는 세월동안 우리 중 몇 명이 현지인과 인연을 맺었지만 그들 역시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어. 그런데 여기 무슨 음모가 있다는 거야?”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히메이오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이 케르케로우스의 사제에게 우리가 확신을 줄 만한 게 있을까? 음, 우리에게 중요한 그걸 이 친구에게 잠시 맡기는 게 어때? 재수 없으면 릴리카가 이 사람이나 다른 친구들을 고문할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게 있으면 이 자도 사제니까 그걸로 자기 몸을 치료할 수도 있을 거고 말이지.”

데디쿠스는 고개를 빠르게 가로저었다.

“그건 안 돼! 이사우라님께서 사용하셔야 하는 물건이란 말이야.”

하지만 헤베이투스 역시 히메이오스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 생각엔 히메이오스 말이 맞아. 이 친구에게도 우리의 진심을 전해야 나중에 우리가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친구라고. 게다가 우린 아까 하나를 더 얻었잖아.”

데디쿠스는 잠시 고민해보더니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품안에서 작은 물건을 하나 꺼냈다. 신용카드 크기의 그 물건은 다름 아닌 옴니테바였다.

“그건 옴니테바로군요!”

건수가 데디쿠스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알아보자 불새군 삼총사는 놀랐다.

“아니, 이걸 어떻게 알지? 늑대의 사제, 넌 이 물건이 뭔지 아는 거야?”

“예. 검은 늑대 몸에서 나온 물건이잖아요. 아픈 사람을 고칠 수도 있고 하는 물건.”

세 사람은 껄껄 웃으며 기뻐했다. 그들은 서로 왁자지껄 떠들었다.

“정확해! 물론 아픈 곳을 낫게 하는 기능 외에도 훨씬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뭔지는 아는군! 하하하.”

“게다가 검은 늑대의 몸에서 나왔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 이 친구, 보통은 아닌 것 같은데?”

“케르케로우스도 늑대라서 검은 늑대에게 그런 물건이 삽입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던 걸까? 어쨌든 이 자가 이런 것도 아는 걸 보면 우리와 만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는가 봐. 하하하.”

그 때였다. 함께 웃던 데디쿠스가 겉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잠깐만. 이봐, 친구들. 이사우라님으로부터 텍스트 메시지가 왔어.”

그는 핸드폰 화면에 정신을 집중하고 읽더니 건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거사 날짜는 정해진 것 같군.”

데디쿠스의 말에 건수와 나머지 불새군 병사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 * *

지하 창고에서 건수와 불새군 삼총사들이 만나고 있을 때, 강원도의 한 호텔 방에서 릴리카는 에뮤니우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녀 옆에 앉아있는 이사우라는 도무지 믿지 못할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에뮤니우스가 보기 싫은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뮤니우스가 하던 얘기는 알렉시스의 관한 얘기였는데, 주로 되살아난 후안 마르티네즈에 관한 얘기 중심이었다. 육체의 부활이라는 주제여서 그랬는지 릴리카는 상당히 이야기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에뮤니우스, 그러니까 그 사신교라는 세력이 죽은 사람의 육체를 살려냈다는 건데.... 호호호. 몸이 살아나는 건 뭐 그렇다고 쳐. 왜냐면 에피로제님께서도 죽은 육체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 뭐, 우리 불새군에게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알렉시스의 애인처럼 죽은 지 꽤 되었는데도 다시 살려냈다는 것 아냐? 그럼 무슨 네크로맨시라도 사용한 거야? 호호호.”

“네크로맨시라라뇨? 그 말씀은 영혼을 불러내어 몸에 넣는 것 말입니까?”

“그래. 강령술. 아니고서야 어떻게 죽자마자 부활시키는 것도 아니고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의 영을 찾아와서 다시 부활한 몸에 넣느냐 말이야.”

에뮤니우스는 두 손가락을 턱에 갖다 대더니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그 때 만났던 후안 녀석..... 뭔가 정상은 아니었어. 알렉시스가 자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얼굴 한 번 보는 걸 마다했단 말이야..... 진짜 릴리카의 말대로 사신교 놈들이 강령술을 사용한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에뮤니우스는 릴리카에게 물었다.

“릴리카님, 그것은 아주 재밌는 의견이로군요. 전 강령술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의견대로라면 되살아난 후안의 몸에는 다른 죽은 자의 영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 쪽으로는 아는 게 없으니 확실히는 모르겠어. 다만 네가 몇 천 년 전에 죽었던 베토케로우스의 경우도 육체 없이 오랜 시간동안 그 정신이 살아있었다고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웃음밖엔 안 나오는군. 호호호.”

에뮤니우스는 자신이 직접 베토케로우스와 만났다고 말했지만 릴리카와 이사우라는 그를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릴리카의 웃음이 잦아들 때쯤, 에뮤니우스가 정색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를 얼마나 잡아두시려고 하시나요?”

“글쎄. 그를 찾는 데만 몇 달이나 소요되었지. 그의 입을 열게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야 할까.... 아무래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말이야.”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혀를 차면서 릴리카를 비웃었다.

“쯧쯧. 참 태평하시군요. 제가 보기엔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릴리카는 그의 건방진 태도를 보고 벌컥 화를 냈다.

“뭐야? 태평하다고? 이놈이 겨우 살려줬더니!”

“제가 봤을 땐 3 일내로 그의 입을 열어야 합니다.”

릴리카는 자기에게 3 일 밖에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3 일?”

“네. 왜냐하면 3 일 후 보름달이 뜨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