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2 화

솔로우스 – 12

몸이 하얀 빛에 둘러싸인 케르케로우스는 모든 준비를 끝냈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검은 방으로 가야 하는데 위기에 닥친 건수와 할머니가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음, 어떡하지? 음. 음. 음.”

그는 어떻게 할지 결정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기다가 곧 눈빛을 번쩍였다. 결심을 굳힌 모양이었다.

“음, 그래. 어쩔 수 없지.”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몸을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그의 몸에서 번쩍하는 섬광이 뿜어나오더니 놀라운 속도로 할머니와 건수를 에워싸고 있는 늑대들에게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의 뒤로 빛의 긴 꼬리가 길게 이어지더니 쏜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듯 소리가 났다.

‘쉬익!’

‘툭!’

그렇게 빠르게 날아가 그가 멈춰선 곳은 신기 할머니를 물고 있는 늑대의 옆이었다. 아, 그런데 그의 동작이 멈추자마자 그 늑대의 목이 잘리더니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 바로 늑대의 몸에 옅은 노란색의 방어막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 늑대가 몸에 지니고 있던 옴니테바는 목이 잘린 다음에야 케르케로우스의 동작을 감지하고 방어막을 펼쳤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한 그 광경에 붉은 눈을 번뜩이던 늑대들도 깜짝 놀라 모두 뒷걸음질 쳤다. 건수도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벌어졌다.

“케르케님! 지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언제 다시 일어나셔서....”

케르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서 대답했다.

“후아... 나도 몰라. 이렇게까지 힘을 집중시켜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니까.”

그 말은 그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힘을 이 정도로까지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검은 늑대들이 당황하며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할머니를 구하려고 온 귀신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늑대가 할머니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게 되니까 그들이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주변에서 강한 바람이 불더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늑대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활시위를 튕기는 소리가 건수의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핑! 핑! 핑!’

활을 쏘는 귀신이 보통 화가 난 것이 아니었나보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활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검은 늑대들이 정확히 한 마리씩 땅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강한 돌풍을 뚫고 도망가려고 하는 늑대들이 한 두 마리씩 나오기도 했는데, 그들에겐 위에서부터 누군가가 무자비하게 강한 압력으로 밟아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늑대들은 참혹한 모습으로 고깃덩어리로 변해 땅 위를 피로 빨갛게 물들이게 되었다. 건수는 끔찍한 모습으로 몰살당한 늑대들의 사체를 보기가 영 역겨워서 곧 바로 케르케로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케르케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까는 이 늑대들을 해치우실 수 없었잖아요?”

“정말 모른대두. 말했잖아. 이 만큼 능력을 발휘해 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나저나 어서 검은 방의 입구 쪽으로 가보자. 방금 전 그곳에서 다급한 신호가 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안 좋은 일이....”

“예? 검은 방 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요?”

“어서 내 몸을 잡아. 네 이동 속도는 너무 느리니까 내가 데려가마.”

건수는 일어나 케르케로우스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의 팔은 에피로제의 힘이 깃든 밧줄에 몸과 함께 단단히 묶여 있었다.

“저... 이 상태라서 제 손으로는 케르케님 털 하나도 못 잡겠는데요.”

그러자 케르케로우스는 머리로 건수를 툭 밀어서 넘어뜨리더니 입을 벌려 그를 살짝 무는 것이었다. 건수는 몸에 케르케로우스의 이빨이 닿아 간지러운 지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하. 케르케님. 간지... 간지러워요.”

“으어... 으어어어어, 으아아아 어어!”

그가 건수를 입에 물고 뭐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케르케로우스님, 하나도 못 알아 듣겠어요.”

그러자 케르케로우스는 건수를 입에서 뱉고는 콧구멍으로 뜨거운 열기를 ‘흥!’ 하고 내뱉더니 대답했다.

“야! ‘이제 빨리 달려갈 테니 조심해!’ 이렇게 얘기했어! 아니, 이 녀석아, 무슨 말일지 뻔 하잖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얘기할 거라는 건 대충 짐작했어야지.”

“죄송해요..... 제가 워낙 눈치가 없어서.”

“아이, 지금 바빠 죽겠는데... 이이익. 이 녀석아, 상황이 이럴 때만이라도 머리를 좀 쓰라고.”

글쎄. 내가 봤을 땐 신수나 그 사제나 수준이 마찬가지다. 바쁘다면서 뭘 일일이 그런 것까지 다 답을 해주고 있냐. 그냥 빨리 물고 가서 일을 해결하고 난 다음 알려줘도 늦지 않을 것을. 쯧쯧. 아무튼 케르케로우스는 다시 건수를 밀어서 넘어뜨린 다음 입에 물고 뛰어가려고 하는데, 바로 그 때, 더 격렬한 폭음과 함께 검은 방쪽에서 밝은 빛이 또 한 번 번쩍였다.

‘콰앙!’

건수와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돌려 검은 방쪽을 바라 봤다. 그랬더니 컴컴한 곳에서 불빛 여러 개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응? 케르케님, 저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나도 몰라. 그런데 저 안의 암흑이 수호자를 불러내려고 하고 있어. 내 허락도 없이 말이야.”

“수호자요? 그게 뭔가요?”

“아, 그건 말이지. 그러니까 말 그대로 검은 방을 수호하는..... 아아악! 건수야, 너 진짜 왜 그래? 이렇게 바쁜데 자꾸 그렇게 내게 말 시켜야만 하는 거야? 나중에 알려줄게. 나중에! 어서 내가 널 물고 가기 쉽게 다시 누워봐. 우리 빨리 저리로 가야 해. 진짜 급해.”

“아, 예예.”

건수는 다시 땅 위에 누웠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 시커먼 그림자 몇이 빠른 속도로 케르케로우스와 건수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하얀 빛에 휩싸인 케르케로우스와 건수를 보고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건수야!”

“건수!”

빛을 발하고 있는 케르케로우스 곁에 그림자들이 다가오자 건수는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미스터 황과 데디쿠스였다. 그들은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큰일 났어! 헉헉헉. 검은 방에서 폭발이 나더니....!”

“그래요, 우리도 방금 여기서 들었어요.”

“헉헉. 아, 그게 아니라 거기서 불붙은 늑대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오고 있어.”

“뭐라고요? 늑대들이 더 나오고 있다고요?”

“그래그래! 그런데 대부분 몸이 불에 심하게 그슬려 있었거든? 그렇게 반쯤 탄 채로 나오고 있는데, 헉헉헉. 그것들이 나오자마자 죽는 바람에 뒤에 나오던 것들이 다 못나오고 죽어버려서 그 사체가 쌓이고 또 쌓이고... 헉헉헉. 그렇게 나오는 입구를 막았거든? 그랬더니 또 안쪽에서 큰 폭발이 일어난 거 있지. 아마 입구를 뚫으려고 그러는 모양이야. 방금 너가 들은 소리는 검은 방 안에서 누군가 입구를 막은 늑대들을 폭발로 날려버리는 소리였어.”

미스터 황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가에 하얀 거품이 생기도록 설명했다. 하지만 그보다 얼굴이 더 사색이 된 건 케르케로우스였다.

“아아아... 안 돼! 검은 방이 엉망이 되었겠어!”

그는 펄쩍 뛰며 그렇게 말하더니 건수를 내버려두고 곧장 검은 방으로 뛰어갔다. 건수도 벌떡 일어나더니 미스터 황에게 할머니를 치료해 달라고 급하게 부탁했다.

“광식이형, 여기 할머니께서 많이 부상당하셨어요. 형이 가진 그 카드로 어서 치료해드려요. 전 빨리 케르케님 뒤를 따라 가봐야겠어요. 데디쿠스씨, 혹시 늑대가 다시 오면... 힘들겠지만 좀 부탁드려요.”

그러자 데디쿠스는 힘겹게 침을 꿀꺽 삼키더니 품 안에서 주방용 식칼을 꺼내며 말했다.

“그래. 걱정 마.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나야말로 아직 거기 있는 헨리와 히메이오스를 부탁한다. 특히 헨리는 많이 지쳤거든.”

“네!”

건수는 짧게 대답하더니 저기 앞에서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을 내며 달리고 있는 케르케로우스를 보더니 그 뒤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