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51 화

솔로우스 – 51

에뮤니우스는 방금까지 함부로 떠벌렸던 것을 급후회했다. 솔로우스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의 부족함을 절감했는데 또 다른 능력자가 그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누구지? 죽음의 신이라니..... 그는 또 누군가? 아무리 신과 함께 살아가는 엘리시움에서 왔다지만 오늘 밤은 정말 이상하다. 케르케로우스님, 텔리, 베토케로우스부터 링크스 신수에 솔로우스, 그리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까지 이렇게 나를 기죽이는 하루가 또 있을까? 좀 더 신중하게 말을 했어야 했나.....’

그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만으로 주눅이 들어서 의기소침해졌다. 왠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바라는 목표에 도달했거나 아님 가까운 상태임이 분명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을 죽음의 신이라고 밝히며 인간 중에 가장 신과 가까운 존재라는 솔로우스의 말을 비웃을 수 있었다. 솔로우스도 당장 하려던 일을 멈추고 그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잠시 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3 명의 괴인들은 또 한 번 에뮤니우스를 놀라게 했다. 한 명도 아니고 3 명이나 불사신인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들은 불새군 병사들의 칼에 찔리고 베여도 태연하게 행동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단 칼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는데 3 명은 여러 번을 찔리고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쪽은 그들을 여러 번 공격했던 불새군 병사들이었다.

‘저들 중 내가 방금 전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이 있을까? 그렇다면 누가 그란 말인가?’

다시 어두운 숲속에서 아까 들렸던 음산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렇지... 그래. 나의 전사가 되려면 누구든지 적을 하나씩 죽여야 한다. 입문을 하지 못한다면 엘리시움으로 가는 길에 너희를 버리고 갈 것이다. 흐흐흐......”

에뮤니우스는 그들 중 하나가 목소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숲속에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생각을 바꿨다.

‘저들은 아니다. 저들은 이 목소리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이야. 그저 목소리 주인의 전사가 되려는 자들인 거다. 그렇다면 목소리의 주인인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정말 그의 말대로 죽음의 신이란 말인가?’

3 명의 괴인 중 다른 한 명이 두 번째 불새군 병사를 돌로 쳐죽인 후, 수풀 속에서 여러 명의 괴인들이 또 튀어나왔다. 에뮤니우스는 그것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맨손으로 저 무지막지한 불새군을 죽인 놈들의 동료가 더 나타났다. 저들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은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거야?’

에뮤니우스는 초조한 마음이 되었다. 그들의 등장에 불새군도 상당히 술렁이는 것 같았다. 데비아나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영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솔로우스더러 어서 케르케로우스를 죽이라고 종용했다. 솔로우스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시선을 다시 케르케로우스에게 돌리고 자세를 낮추면서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신수를 해치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본 에뮤니우스는 급한 마음에 온 몸이 마비된 릴리카를 집어 들어서는 솔로우스에게 던져버렸다. 하지만 릴리카는 그 옆에 서 있던 젊은 사제에게로 떨어졌다. 솔로우스는 젊은 사제 위로 떨어진 릴리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아니! 이건 릴리카가 아닌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얼굴이 변하지 않은 릴리카를 알아본 것이었다. 데비아나와 주변의 다른 병사들은 방금 전 릴리카가 떨어진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위치가 노출된 에뮤니우스는 더 이상 나무 위에서 몸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에뮤니우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무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또 다른 젊은 사제의 머리 위로 뛰어내렸다.

‘쿵!’

그는 사제를 덮치고는 재빨리 입을 벌려 두 개의 송곳니를 그의 얼굴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그에게서 생명의 정수를 빨아 마셨다. 순식간에 그에게 공격당한 사제는 몸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 없었다. 솔로우스는 갑자기 나타난 에뮤니우스를 보고 소리쳤다.

“넌 누구냐? 사람이냐?”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십자 모양으로 갈라진 입을 솔로우스에게 보이며 대답했다.

“크으으....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은 에뮤니우스. 바로 여기 계신 케르케로우스님의 대사제였던 사람이다. 오랜만이군. 솔로우스. 보고 싶었다. 크크크....”

솔로우스의 두 눈을 덮고 있던 두꺼운 흰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뭐라고? 에뮤니우스라고?”

에뮤니우스의 쩍 벌어진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네놈에게 묻고 싶은 게 많다. 그러니 지금은 좀 얌전히 있어줘야 겠어! 카아아악- 퉤!”

에뮤니우스의 입에서 연한 녹색의 액체가 튀어나오더니 솔로우스의 얼굴에 뭍었다.

“으윽! 이게 무슨....! 아아아.....”

솔로우스는 재빨리 손을 올려 액체를 닦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얼굴까지 손을 반쯤 올린 채 몸이 굳어버리더니 그대로 땅에 쓰러져 버렸다. 데비아나는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소리쳤다.

“적이다! 여기 적이 있다! 어서 솔로우스님을 보호해!”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서 솔로우스의 멱살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그의 등 뒤로 돌아가서 그의 허리를 잡았다. 데비아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모두 칼을 뽑아들고 솔로우스를 인질로 잡고 있는 에뮤니우스를 포위했다. 데비아나가 에뮤니우스에게 소리질렀다.

“네 이놈! 넌 누구냐? 너... 너... 그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는 것이냐! 그분은 불새의 신수, 에피로제님의 대사제이신 솔로우스님이시다. 어서 그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겠느냐!”

에뮤니우스는 흉측한 입을 벌리고 씨익 웃었다.

“내가 방금 전에 한 말을 넌 듣지 못한 거야? 내 이름은 에뮤니우스, 여기 계신 검은 방의 주인을 섬기던 자라고 이미 밝혔잖냐? 그리고 나와 여기 솔로우스는 구면이다. 너희 모두 그 자리에서 얌전히 있지 않으면 이 자의 목숨은 없다. 아.... 맞다. 듣자하니 솔로우스 이놈은 목숨이 열 개나 된다지? 죽어도 부활한다고 들었다. 이 녀석의 목숨이 앞으로 몇 개나 더 남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희가 가까이 오는 순간 이 자의 이번 생은 내가 가져갈 것이다. 물론 누구든 내게 가까이 오는 자의 목숨도 가져갈 것이고! 물러서라!”

데비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너.... 원하는 게 뭐냐? 케르케로우스를 원하는 것이라면 데려가도 좋다. 하지만 솔로우스님에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마라! 그렇다면 넌 모든 불새군의 표적이 될 것이다.”

“흥! 당연히 케르케로우스님을 모시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놈도 내가 데려갈 거야. 이미 말했듯이 이놈에겐 묻고 싶은 것이 많거든.”

“아... 안돼! 소... 솔로우스님은 이곳에 놔... 놔두고 가라! 거... 거래를 하자! 케르케로우스는 보.. 보내주겠다. 하지만 솔로우스님은 안 돼!”

갑자기 심하게 말을 더듬기 시작한 데비아나를 보고 에뮤니우스는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너, 불새군치고는 말이 많군. 거래를 하자는 불새군은 처음 봤다. 너 설마 불새에게 힘을 받은 성전사가 맞긴 하냐? 크크크.”

에뮤니우스는 아까 검은 늑대 몇 마리가 솔로우스를 노리고 공격해왔을 때, 그녀가 제 때에 힘을 집중시키지 못한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데비아나는 더욱 당황했다.

“그... 그게 무... 무슨 소리냐! 누... 누가 힘을 모... 못쓴다고!”

“보통 불새의 성전사였다면 벌써 몸에 불을 붙이고 내게 덤벼들었을 것 아니냐? 아까 나무 위에서 보니까 전략을 조금 구사하는 것을 보니 제법 머리는 돌아가는 편인 것 같던데, 불새가 준 힘은 못쓰는가 보구나. 크크크.”

“뭐... 뭐라고!”

데비아나는 그 말을 듣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분노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면서 힘을 집중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주먹에선 조금의 불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에뮤니우스는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역시 그렇군. 넌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녀석이었어. 너 같은 무능력한 녀석이 불새군의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니 네 밑에 있는 병사들이 통탄할 노릇이구나. 크크크.”

“너... 이 자식! 죽여 버리겠다!”

에뮤니우스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도발하자, 데비아나는 몹시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그래. 아마도 연습 때는 화염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했었나 보지? 그런데 긴장하면 잘 안 되나 보군.”

“뭐라고?”

“실전에서 쓸 수도 없는 능력이라면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지. 하하하. 불새의 능력을 쓸 수도 없는 성전사라면 보통 병사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

“이이익!”

정곡이 찔리자 데비아나는 최선을 다해 두 주먹에 힘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 주먹은 부르르 떨리기만 할 뿐,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 때였다. 에뮤니우스의 등 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건방진 놈! 네 놈이 불새의 성전사를 우롱해? 그렇게 불새의 화염을 맛보고 싶다고 하니 내가 먹여주마!”

“응?”

에뮤니우스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베도아가 활활 타오르는 장검을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