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97 화

예언자들 – 97

그 시각, 건수와 텔리는 싸이언스의 치료에 힘을 쏟고 있었다. 텔리는 한손으로는 환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상태를 파악하고 다른 손으로는 옴니테바를 쥐고 몸 여기저기에 빛을 쏘이게 하면서 자신의 힘을 주입시켰다. 건수는 환자의 손을 잡고 텔리가 시키는 대로 주입시키는 그의 힘을 그대로 핑퐁처럼 되받아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은 치료의 효과를 배로 높여주는 것으로, 예전에 미스터 황의 몸에서 암흑을 뽑아낼 때 썼던 방법과 동일했다. 둘은 곧 밝은 빛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들 주위에는 집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치료 과정을 처음 보는 사람들, 그러니까 펠리시아와 사모님 같은 경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바로 어제 어머니를 안타깝게 잃었던 펠리시아의 경우, 자꾸 어머니가 쓰러지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혹시 그 자리에 텔리가 있었더라면 저렇게 해서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었을까? 아냐, 그 전에 이미 에뮤니우스가 어머니에게 마수를 뻗칠 때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아,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이걸 어째.’

사실 쥬니아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거라고 해도, 딸이면서도 어머니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가슴 한편이 아리고 착잡한 마음이 되었다.

15 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텔리가 싸이언스의 몸에 대었던 옴니테바를 뗐다.

“다 됐다. 아니, 내 말은 이번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말이야. 더 이상 해봤자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건수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텔리에게 질문했다.

“텔리님, 그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렇게 치료를 해야 할까요?”

“글쎄.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고 봐야 돼. 난 누굴 치료하거나 되살리는 것에는 전혀 소질이 없거든. 그 반대라면 자신 있지만 말이야. 사실 오래 살면서 누굴 제대로 고쳐본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었어. 나를 오랫동안 아는 이들은..... 글쎄, 그런 이들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만약 있다고 친다면 말이야. 내가 요즘 두 번이나 다른 누구를 치료하려고 애썼다는 걸 알게 된다면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할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치료한 사람 중 하나인 미스터 황을 바라봤다. 미스터 황은 자기가 두 사람 중 하나인 것을 잘 알기에 대답의 의미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내 힘은 이렇게 쓰는 것은 아니지만 넌 나와는 다르게 그 힘을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힘을 넣어 준 곳을 감지하는 훈련은 다 끝난 거냐?”

“아뇨. 그게 전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조금 진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알렉시스 한 사람으로는 내게 힘이 되어줄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도 베토케로우스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네게 들어간 그 힘이 내가 가진 힘의 전체로 봐서는 미미한 정도일 수도 있지만 네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거든. 다만, 어떻게 사용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했다가 예전에 별로 안 좋았던 일이 있었거든. 조금이라도 빨리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노력해봐.”

“네.”

미스터 황은 대답과 동시에 다시 알렉시스 곁으로 가서 텔리가 그의 몸 안에 심어놓은 힘을 감지하는 훈련을 계속 했다.

건수는 싸이언스 곁에서 잠들어 있는 신기 할머니를 가리키며 텔리에게 물었다.

“텔리님, 할머니는 어떡하죠? 정신을 잃으신지 좀 됐는데요.”

텔리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뭘 어떻게 하라고. 이디레이아 그년더러 책임지라고 해. 이 할망구는 그녀의 예언자잖아.”

“그래도..... 할머니가 텔리님 하시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요. 신기한 일을 하실 수 있잖아요. 바람도 일으키고 화살도 쏘시고 말이에요.”

“음.... 네 말이 옳아. 분명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지금은 내 고집만 부릴 때는 아니니까. 어디 깨울 수 있는지 한 번 몸 상태를 보자.”

텔리가 할머니의 이마에 오른손을 막 대려던 참이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할머니가 입은 조끼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텔리는 손가락으로 주머니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전화가 왔는데? 너희 한국인들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서로 전화하고 그러냐? 도대체 아침 몇 시부터 일을 시작하는 거야? 되게 부지런하네.”

건수는 자기가 할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를 함부로 받아도 될지 잠시 머뭇거렸다.

“받아, 인마. 시끄럽잖아. 내가 받을까?”

텔리가 할머니의 조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헬로우.”

“.......”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댔다.

“뭐야,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 빌어먹을 놈아!”

그러자 상대방이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나 보다. 텔리는 “어-허”, “으흥” 하는 식으로 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나더러 그러라고 그랬다고? 하하하. 그거 재밌군. 알았어. 이 번호로 말이지? 훗훗훗. 별 일이 다 있군. 그래.”

옆에 있던 건수는 할머니 전화로 걸려온 전화에 텔리가 영어를 하면서 받는 것도 놀랐지만 전화를 건 쪽도 영어를 한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할머니에게 외국 사람이 전화한 건가요? 잘못 온 전화겠죠?”

그러자 텔리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할머니에게 전화한 거 맞아. 어떤 놈팡이가 자기가 이디레이아의 예언자라는데? 자기는 지금 서울에 있는데 여기로 오겠다는 거야. 운명의 어머니의 또 다른 예언자를 만나라는 명령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여기 주소 좀 텍스트 메시지로 보내달라고 하는군.”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정말 신기하네요.”

“나도 몰라. 이디레이아, 그 망할 년은 몇 십 분 전만 하더라도 여기 있더니 그새 서울에 갔었나 보군. 야, 이 집주인, 예의 없는 놈에게 빨리 여기 주소를 방금 걸려온 전화번호로 텍스트 치라고 해라.”

건수는 즉각 일어나서 강원도 아저씨에게 집의 주소를 방금 걸려온 전화번호로 문자메시지로 적어 보내달라고 청했다. 텔리는 의외의 일이 벌어지자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훗훗훗. 운명의 어머니, 이 여편네가 무슨 장난을 하려는 거야. 그리고 뭐? 라볼타니 뭐니 하는 놈팡이더러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검은 양복 한 벌 입혀줄 테니 나갔다 오라고?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어이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