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72 화

솔로우스 – 72

갑자기 텔리와 일행들이 숲속에서 나타나자, 불새군은 깜짝 놀라며 그쪽을 바라봤다. 베도아가 그들을 보고 외쳤다.

“또 웬 놈이냐?”

몇 안 되는 병사들이 신속하게 텔리와 일행을 에워쌌다. 텔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지금 감히 내게 칼을 들이대려는 거야? 나 참.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들이구만.”

텔리는 그렇게 짧게 한 마디 말을 하더니 곧 바로 힘을 손에 집중시켰다. 그의 손이 하얗게 빛나자 베도아가 깜짝 놀라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위험한 녀석이다. 저 괴물과 관계된 전사임에 틀림없다. 어서 죽여!”

그러자, 옆에 있던 솔로우스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돼! 모두 물러서! 그 분은 신이시다!”

병사들은 두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명령을 내리자,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들이 그러는 와중에 텔리가 빛나는 주먹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병사의 머리를 박살내버렸다.

‘퍼억!’

그만 머리가 마치 수박이 깨지듯 터지면서 병사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병사들이 칼을 든 채 텔리와 일행들을 경계하면서 각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텔리는 히죽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하아... 나 참 나. 오늘 참 이상한 날이네. 왜 이렇게 계속 이상한 놈들이 꼬이는 거야? 너희들 입고 있는 그거 다 뭐야? 엘리시움에서 왔어? 검은 방을 통과해서 온 거야?”

베도아가 병사들 뒤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넌 누구냐?”

“너? 너 지금 나더러 너라고 부른 거야? 저거 완전 또라이 같은 년이네. 훗훗훗. 아... 진짜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안 되겠다. 한 대 피면서 이 자식들 싹 다 죽여 버려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텔리는 자신의 옷을 뒤지며 담배를 찾았다.

“어... 어.... 내 클로브 담배... 어딨지? 아... 맞다. 다 피웠지? 하하하하..... 이런 제기랄!”

순간 텔리는 마구 성을 내면서 얼어붙은 땅바닥 위에서 발을 구르며 방방 뛰는 것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이젠 정말 못 참겠어! 담배도 없고. 하루는 24시간인데 오늘은 너무 길기만 하고! 거기다 베토케로우스 같이 말도 안 되는 놈이 튀어나와서 싸워야 했고! 몰라! 이젠 진짜 질렸어! 그냥 주위에 보이는 놈들은 다 싹 다 죽여 버릴 거야! 베토케로우스도 죽여 버리고, 이디레이아, 그 그지 같은 년도 죽여 버리고 케르케로우스도 죽여 버리고, 다 죽여 버릴 거야! 이 한국 땅에서 클로브 담배도 못 피우고 이렇게 스트레스나 받고 있으려니까, 여기 있는 놈들도 다 죽여 버리고, 엘리시움으로 넘어가서 아무나 보이는 놈들은 그냥 다 죽여 버릴 거야! 와아아아악!”

그렇게 겨우 클로브 담배 하나 못 피우게 됐다고 이성을 잃은 채 길길이 날뛰는 텔리를 보고 베도아와 솔로우스는 잔뜩 긴장했다. 베도아가 다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뭐하는 거냐? 어서 저 이상한 녀석을 죽이란 말이다!”

“안 돼! 베도아, 그분은 우리 세계에서 오신 신이시다. 어찌 신과 인간을 구분도 하지 못한단 말이냐!”

솔로우스가 베도아의 말을 막으면서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이번엔 알렉시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면서 솔로우스에게 인사했다.

“솔로우스님 대사제님이십니까? 전 오래 전 에피로제님의 명령으로 이곳에 온 알렉시스입니다.”

알렉시스가 나타나자, 솔로우스의 길고 하얀 두 눈썹이 동시에 올라갔다.

“뭐라고? 에피로제님의 명령으로 이곳으로 파견 온 자라고?”

“예. 저도 예전에 불새군의 신전전사였습니다.”

“알렉시스! 기억하고 있네. 정말 오랜 만이구만. 그런데 예전엔 신전전사였다니? 그렇다면 지금은.....”

알렉시스는 여전히 한숨을 쉬면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텔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은 여기 계신 살육의 신을 모시고 있는 전사입니다.”

“살육의 신....? 그렇다면 이분이....”

“예, 그렇습니다. 이분은 엘리시움 모든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신 살육의 신이십니다.”

알렉시스가 그 말을 마치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잔뜩 화가 난 텔리가 콧구멍에서 뜨거운 김을 씩씩 내쉬며 말했다.

“그래, 이 늙은 놈아! 내가 네놈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진짜 전쟁의 신이자 살육의 신이다! 저쪽 너머 엘리시움에 있는 그 가짜들 말고 말이다. 내가 다른 놈들한테서 다 들었는데, 그 가짜 신놈들이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내 권한을 갖게 되었다면서? 내가 엘리시움에 돌아가면 그 자식들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뿐만이 아니야! 너희 불새도 죽여 버릴 거야! 왜냐고? 왜냐고? 왜냐면 난 오늘 정말 개떡 같은 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지! 화가 여기 머리 꼭대기까지 찼는데, 클로브 담배도 없어! 아니, 젠장! 난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암에 걸려 죽지도 않는데! 그런데 클로브 담배가 없다고! 이게 말이 돼? 제기랄! 제기랄!”

텔리가 하는 말을 듣고 솔로우스를 비롯한 불새군은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이미 바이베노파시스와 베토케로우스와 맞서면서, 그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아 간이 콩알만해져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미친 신이 나타나 자기들이 신으로 모시는 신수를 비롯해 엘리시움의 신들을 죽인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실제로 너무나 간단하게 병사 한 명을 끔찍하게 살해하지 않았던가. 그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누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텔리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거나 화가 나게 되면 늘 하는 말버릇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렉시스는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느긋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미스터 황은 한숨을 쉬며 한심하다는 듯이 살육의 신을 바라보았다.

“거, 텔리님.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조금만 참으시라고요. 뉴욕에만 가면 아주 하루에 열 갑씩 피우시고요. 아무리 날뛰신다고 해도 그렇게 희한한 담배는 여기선 구할 수도 없어요. 아님, 그냥 맛좋은 한국 담배로 갈아타시던가.”

텔리는 미스터 황을 잡아 죽일 듯한 살벌한 눈초리로 쏘아 보면서 말했다.

“이 한심한 놈아! 그게 어디 위로가 되냐! 엉! 진짜 이게 죽고 싶은 거야, 뭐야?”

그때였다. 어디서 누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베토케로우스를 상대하던 6 명의 병사 중 하나였는데, 베토케로우스로부터 도망쳐 달려오고 있었다.

“괴물이 옵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텔리는 그 말을 듣고 방금 목소리를 낸 병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에 절뚝거리며 달려오는 베토케로우스가 들어왔다. 그는 오면서 도망치는 불새군 병사 하나를 덮치더니 물어 죽이고는 그 시체를 씹고 있었다.

“텔... 리! 네 놈을... 죽이겠다!”

텔리는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짜증을 냈다.

“아니, 저 미친 괴수가 또 살아 돌아왔네! 바이베노파시스는 어떻게 된 거야? 벌써 저 놈한테 당한 거야,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