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0 화

솔로우스 – 10

베토케로우스가 다시 늑대들의 정신을 조종하게 되자, 그들의 눈빛이 변하면서 동작이 무척 기민해졌다. 아울러 성격도 훨씬 호전적이고 난폭하게 바뀌어서 조금 전처럼 불리해졌다고 쉽게 등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알렉시스와 릴리카가 늑대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겁나서 도망가던 녀석들도 입에 거품을 물고 다시 돌아와서 다시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알렉시스의 앞에서 늑대와 맞서 싸우던 3 명의 병사들은 늑대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재빠르게 피하는 것을 보고 난감해했다.

“알렉시스님, 이 녀석들의 움직임이 완전 딴 판이 되었습니다!”

“그래, 끝내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구나.”

그때, 병사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알렉시스님, 베토케로우스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 괴수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본 알렉시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했다.

“너희들은 어서 이곳을 피해라! 저 괴수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신수가 아니다.”

“그럼, 알렉시스님은.....?”

그녀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했다.

“난 끝까지 텔리님을 모실 거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희들은 어서 도망쳐.”

“하지만......”

3 명의 불새군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머뭇거렸다.

“어서. 아마 저 괴수가 노리는 것은 나 하나뿐일 거야. 괜히 너희까지 피해볼 필요 없다. 아직 가능할 때 도망쳐. 어서!”

그러자 뒤에서 등 뒤에서 릴리카가 거칠게 그녀에게 소리 질렀다.

“헛소리하지 마라. 알렉시스! 누구더러 도망가라고 하는 거냐? 우린 불새군이다. 아, 맞아 넌 우리를 배신했었지?”

그 말을 듣고 알렉시스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뒤를 돌아봤다. 릴리카가 거친 숨을 쉬면서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그녀 주변엔 몇 명의 불새군 위병이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릴리카, 지금은 말싸움 할 시간이 아니야. 그러니 아예 시작도 하지 말자. 내가 방금 폴포에게 한 말 들었지? 베토케로우스가 원하는 건 텔리님과 그분을 모시는 나니까 상관없는 너희는 어서 도망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말이야.”

“웃기는군. 불새군인 내가 죽는 게 두려울 것 같나? 우리는 죽어도 불새 에피로제님이 부활시켜 주신다. 그러니 우린 무서울 것이 없지.”

알렉시스는 어깨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릴리카는 정말 끝까지 멍청하게 굴기로 작정한 모양이군. 그리고 에피로제님이 누굴 부활시켜주신다는 거야?’

라고 하면서 동정 섞인 눈빛으로 릴리카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알렉시스는 그저 릴리카를 비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수많은 원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새군의 병사들이 죽음을 맞이했었지만, 그들 중 부활한 자가 과연 하나라도 있었던가? 부활한 자들은 모두 에피로제님과 가까운 유력한 집안의 사람들뿐이었다. 누구도 에피로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만을 부활시켰을 뿐이었다.

베토케로우스가 텔리의 몸통을 반쯤 씹다가 내버려두고 알렉시스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알렉시스와 불새군을 둘러싸고 있던 늑대들은 양쪽으로 갈라서며 그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의 몸은 아까 텔리에게 패하여 사신의 독이 침입해 시시각각 썩어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몸이 썩는 냄새에 늑대들은 코를 돌릴만도 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며 그에게 몸을 숙였다. 베토케로우스는 보름달을 등지고 서자 그의 그림자가 일직선으로 알렉시스와 불새군에게까지 닿았다. 그는 낮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알렉시스에게 물었다.

“네가 살육신의 전사냐?”

“그...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다. 어... 어서 텔리님을 모시고 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라!”

알렉시스는 전설의 괴수와 말을 나누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어찌나 떨렸는지 입안이 바싹 말라 침을 삼길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베토케로우스의 목소리에는 낮고도 강한 울림이 있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정신이 교란되고 두려움을 느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토케로우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도 그럭저럭 대응하는 알렉시스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씨익 웃었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제법이군. 넌 잘 모르겠지만 내 목소리에는 제왕의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들이 내 목소리를 듣게 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 심지어 마음이 약한 자가 들으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넌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군. 크크크크크.”

“허...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기을 비혀라...... 응?! 아니 느에 혀... 혀가?”

알렉시스는 말을 하다 말고 급하게 멈췄다. 너무 떨려서 그랬을까? 이번엔 말을 하다가 혀가 꼬이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그런 식인 거지. 이제 난 네 정신에도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네 몸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지... 크크크.”

“이... 즈아... 식이!”

알렉시스는 팔 전체에 화염을 일으키더니 상체를 기울이면서 베토케로우스에게 달려가려고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발걸음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몸이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붙은 주먹이 서서히 올라가더니 얼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니...?!”

자신의 불타오르는 주먹이 저절로 움직여서 자기 얼굴을 향하는 것을 보고 알렉시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베토케로우스는 즐거운 듯 히죽히죽 웃었다.

“크크크.... 그렇다. 네 몸은 이제 네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내 것이지. 오래 전 엘리시움의 신들과 그들을 따르는 인간들은 그런 나의 힘을 몹시도 두려워했지. 그 힘은 내 육체의 껍데기가 암흑으로 채워져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것으로, 바로 제왕의 상징이다. 그러니 난 내가 당연히 주장해야 할 자리를 원했을 뿐이었는데, 신들은 모두 힘을 합쳐 날 죽여 버렸다. 그리고 저기 내가 방금 이빨로 몸통을 열어놓고 버리고 온 텔리가 내게 마지막을 선사했었다. 그런데 내가 부활한 후 다시 세상에 나왔더니, 그 사이 힘이 강해진 불새가 내 앞길을 또 가로막더군. 덕분에 난 이 오염된 세계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고 말이다.”

“크으으윽.....”

알렉시스는 얼굴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자신의 불붙은 주먹을 내리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넌 네 손으로 직접 목숨을 끊게 될 테니. 크크크. 그리고 뒤에 있는 버러지들은 도망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바람에 똑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거다. 크크크....... 응? 아니?”

알렉시스를 놀리며 즐거워하던 베토케로우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입을 벌리며 놀라워했다.

“너.... 네 머릿속에 들어가 기억을 조금 읽어보니 바이베노파시스가 부활할 때 사용한 육체의 주인과 관계가 있구나! 이거 재미있군. 그냥 죽여 없애긴 아까워. 내가 친히 네 머리를 씹어 먹어봐야겠다. 무슨 내용인지 전체가 궁금해지는데?”

베토케로우스는 그녀의 정신을 조종하는 것을 멈추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괴수의 정신 지배에서 풀려난 알렉시스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은 채 그의 말을 듣고 분노하며 외쳤다.

“뭐? 후안이 누구를 부활하는데 사용되었다고? 그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