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 화

만월의 밤 – 4

조 회장은 지하 창고를 나와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건수를 손보려고 했지만 부하와 함께 세트로 망신을 당한 터라 분통이 터졌다.

“아이 씨X! 양 형사, 저 새끼까지 사람을 우습게보고 말이야!”

그는 분풀이로 계단의 난간을 발로 세게 찼다. 난간은 무슨 금속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발차기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깥쪽으로 크게 휘어버렸다. 아까 그와 함께 창고에 들어갔던 부하 중 하나가 다가와서 그에게 물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조 회장은 부하를 잡아먹을 듯이 무섭게 노려보더니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철썩 후려쳤다.

“너 이 새끼! 내가 전에 뭐라고 했어? 회장님으로 부르라고 했지! 귓구멍에 솜을 처박아 놨냐?”

“죄송합니다.”

부하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형님, 아니, 회장님. 아까 그 새끼 때리시던 손은 괜찮으십니까?”

부하 놈은 방금 맞은 자기가 맞은 뺨이나 신경 쓸 일이지, 아까 조 회장이 건수를 패다가 혹시 손이라도 다쳤는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조 회장은 잠시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괜찮다. 아이 씨, 쪽팔려서 진짜. 너 담배 가지고 있냐?”

조 회장이 부하에게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부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양 형사, 저 자식 완전히 미친 것 아닙니까? 아니, 형님께 외국 놈들을 불러오라뇨?”

“그거야... 나만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야 할 거 아니야.”

“아, 그런가요.”

“그렇다 하더라도 양 형사 새끼는 재수 없는 거 맞아. 지가 뭔데 나더러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하고 지랄이야?”

“알고 보면 이제 형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시민인데 언제 한 번 손을 좀 봐줄까요?”

조 회장은 담배 연기를 한 번 깊게 들이마시더니 다시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이번 일이 다 끝난 다음에. 괜히 지금 우리끼리 파열음을 내면 저 외국 애들이 빡 돌아가지고 우릴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그럼 저 놈들도 한꺼번에 발라버리면 되잖습니까?”

조 회장이 그 말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이 멍청한 새끼야. 너 쟤네들이 처음에 양 형사랑 같이 우리 찾아 왔을 때 못 봤어?”

부하는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요. 전 마침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는데요. 뭐, 그 후에 황당한 얘기를 듣긴 했었습니다. 발로 철문을 부수고 차를 들었다고 하는데..... 설마 그게 사실인가 했는데요?”

“응. 그거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야. 그 때, 저기 밖에 있는 노랑머리 놈을 포함해서 몇 명이 왔었는데 저 놈들이 발로 사무실 철문을 걷어차서 부수고 들어왔었지. 그리고 건물 밖에 있는 차를 두 놈이 떡하니 들어서 옆으로 뒤집어 버리더라고.”

“네? 설마요.... 사람이 어떻게 차를 듭니까?”

부하는 조 회장이 하는 얘기를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너한테 구라를 치겠냐? 저것들 아무래도 보통 인간들이 아니야. 그런데 만약 저런 놈들 100 명이 우리를 친다고 해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골로 가는 거야. 그리고 내가 때렸던 잡아온 놈... 그 놈도 몸이 좀 이상해. 내가 힘껏 때려도 반응이 별로 없더라고. 진짜 꼭 철판을 때리는 것 같았어. 그래서 양 형사가 그걸 보고.....”

“그래서 밖에 있는 외국 놈들을 불러오라고 한 거군요.”

“그렇지. 양 형사는 아까 그 놈이 나한테 맞고도 멀쩡한 걸 보고 단번에 보통 놈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 거지. 그래서 외국 놈들을 불러오라고 한 거야. 아무튼 지금은 양 형사 놈한테 화가 나도 좀 참아야 돼. 괜히 우리 맘대로 했다가 릴리카를 화나게 하면 아주 안 좋은 거야.”

대화를 마치고 둘은 피우던 담배를 난간에 짓눌러서 불을 끄더니 밖에 있는 불새군 병사들을 부르러 계단을 올라갔다.

* * *

‘끼이익...’

지하 창고의 문이 다시 열리자 건수와 친구들의 시선이 출입문으로 집중됐다. 처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데디쿠스였다. 그의 뒤를 따라 헨리라는 별칭을 가진 붉은 수염의 헤베이투스와 마령석을 잘 다루는 히메이오스가 걸어 들어왔다. 그 세 명은 옴니테바를 조사하면서 친해져서 그 후 크루를 조직해서 함께 몰려다녔다. 데디쿠스는 고개를 돌려 양 형사와 조 회장에게 한국인 스탭들은 창고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창고 밖으로 나가자 데디쿠스는 건수를 보며 엘리시움어로 말했다.

“대충 보니까 케르케로우스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은 것 같더군. 그건 아주 잘 했어.”

“......”

건수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데디쿠스는 건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아직 날 믿지 못하는 것 같군. 내가 아까 네게 말했던 건 모두 사실이다. 나와 여기 있는 내 친구들이 너희들을 풀어줄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

건수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데디쿠스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왜 이렇게 묶여 있는 거죠?”

“안타깝게도 그 오랏줄은 워낙 특별한 물건이라 내 힘으론 풀 수가 없어. 혹시 릴리카나 풀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네 친구들은 우리가 어떻게 구해줄 수 있을지 몰라.”

“음..... 그러면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제발요.”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아직 우리가 움직일 때가 아니야.”

건수가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자 데디쿠스는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지금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계획이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럼 계획대로 실행하면 되지 굳이 내게 말해주려고 하는 겁니까?”

“왜냐면 네 도움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으니까. 시간이 없으니 짧게 설명하지. 우리는 불새군 안에서 반란을 일으킬 거야.”

“반란?”

데디쿠스가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말에 건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나와 여기 있는 두 친구가 반란을 일으킬 거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릴리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그래. 몇 달 전 와본동에서 죽은 내 동료들의 삶이 억울해서라도 난 꼭 엘리시움으로 돌아가서 그들 몫까지 살고 싶어. 그리고 그 때 봤던 그 검은 늑대들..... 그것들이 내 친구 아틸레오와 가페이누스를 죽였던 거야. 나 역시도 그것들 때문에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어. 그 때 난 분명히 알았다. 최대한 그들을 맞닥뜨리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릴리카는 자신이 가진 한 줌의 능력만 가지고 모두와 싸우려고 하고 있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는 몇 달이 지났지만 와본동에서 그의 동료들을 살해한 검은 늑대들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케르케로우스의 눈앞에서 릴리카를 해치우겠어! 그리고 네 친구들도 도망치게 해주겠다. 만약 우리가 릴리카를 처단하면 너도 자유로운 몸이 될 거야. 그러면 케르케로우스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까? 그래서 너에게 간청하는 거다. 그 때 혹시 케르케로우스에게 우리에 대해서 잘 말해줄 수 있겠냐고 말이지.”

건수는 그렇게 말하는 데디쿠스의 목소리와 눈빛에 미세한 떨림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히메이오스와 붉은 수염의 헤베이투스 역시 간절한 표정이었다. 건수는 아직 데디쿠스를 완전히 신뢰할 단계가 아님을 확실히 알면서도 그에게 자꾸 믿음이 갔다.

‘이 사람,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구나!’

데디쿠스는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우리와 함께 하자. 함께 릴리카를 잡자. 우리도 너도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 아니냐.”

“집...!”

“그래. 제발 우리가 집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줘!”

데디쿠스가 건수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건수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