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69 화
솔로우스 – 69
병사들은 재빨리 뛰어가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베토케로우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 중 하나가 덜덜 떨면서 동료에게 말했다. 그는 아까 바이베노파시스에게 겁을 먹고 무기를 던졌던 병사들 중 하나였다.
“나... 난 더 이상은 못 하겠어! 하나 뒤에 또 하나의 괴물이라니.... 왜 이런 곳에 이토록 무서운 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거야?”
그와 나란히 서 있던 다른 병사가 칼과 방패를 들어 올려 전투태세를 취하면서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쫄지 마, 이 새끼야! 우린 어차피 죽어도 에피로제님께서 다시 부활시켜 주실 테니까!”
“무... 무슨 소리야? 에... 엘리시움도 아니고 여기에서 죽은 나를 불새께서 어떻게 부활시켜 주신다는 거야?”
그러자 겁먹은 병사 뒤에 서 있던 다른 병사가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면서 소리쳤다.
“이 자식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야! 너가 우리를 다시 살려줄 거야? 그냥 입 다물고 저 괴물을 상대할 궁리나 하란 말이야. 그 다음은 에피로제님께서 다 처리해 주실 거니까! 새끼가 영 충성심이 모자라구만!”
“뭐? 그... 그게 무슨...?”
겁먹은 병사는 아무리 불새의 신수, 에피로제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자신이 지구에서 죽게 되면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냐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데도 곁에 있는 병사들은 딴 말을 하고 있는 게 답답했다.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을 것 같아서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특히나 눈앞에 커다란 괴물이 다가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선 천 마디 의심의 말을 하기 보다는 한 가지 확실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였다. 괴수와의 전투를 바라건 바라지 않건 그들은 오직 그를 막아내는 일 외에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병사들 중 하나가 잔뜩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가자! 솔로우스님을 지키자! 에피로제님을 위해!”
“야아아아아!”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겠지만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베토케로우스에게 달려갔다.
베토케로우스는 시력에 이어 청력도 많이 잃어버렸지만 병사들의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에피로제님을 위해!’
‘야아아아아!’
그는 고개를 들어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뭐라고? 에피로제? 불새가 여기 있단 말이냐?”
그는 코를 들어 공기 중의 냄새를 맡았지만 별다른 냄새를 맡지 못했다.
‘불새 녀석이 어디 숨어 있는 가보군. 역시 겁쟁이 자식이다. 변한 게 없군.’
그는 입을 열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에피로제...! 이... 비겁한.... 겁쟁이 불새... 놈아! 어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엘리시움에... 돌아가려는.... 내 앞 길을.... 막다니.... 너도.. 죽여.... 버리겠다!”
텔리의 독에 중독되어 그의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지만, 그 목소리는 주변에 크게 울려 퍼질 정도로 아직 힘이 살아있었다. 오히려 바이베노파시스의 목소리보다도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바이베노파시스가 쓰러지자 그의 영향력에 지배되었던 곳에서 빠져나온 베도아는 일어서자마자 병사들이 질질 끌고 오는 데비아나를 넘겨 받아 업고는 병사들의 뒤로 옮겼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있는 데비아나를 대신해서 불새군 부대를 지휘했다.
“어서 데비아나님을 치료해야 한다!”
그녀는 솔로우스를 치료하고 있던 병사에게 데비아나를 맡긴 후, 솔로우스를 지키기 위해 그의 곁에 섰다. 에뮤니우스의 독에 중독되어 몸이 마비되어 있었던 상태에서 조금 풀린 솔로우스가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 정체모를 괴수가 아까 죽음의 신이라고 자신을 밝혔던 인물을 죽이는 것을 보았느냐?”
“예... 아니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정황 상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상한 신이 나타나 힘으로 저와 병사들을 묶어두고 억누르고 있었는데 거기서 빠져나온 것을 보면, 저 괴물이 그를 죽인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베토케로우스가 외치는 큰 목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둘은 괴수의 큰 음성을 듣자 순간 멈칫하며 행동을 멈췄다. 솔로우스가 조금 전 보다 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베도아, 방금 저 괴물의 목소리를 들었지? 저건 보통 괴물이 아니다. 마치 심연에서 올라온 지옥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야. 아마 그 자칭 죽음의 신이라고 하는 신보다 더 강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저들이 에피로제님을 알고 있을까요? 게다가 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우리의 언어 아닙니까?”
솔로우스는 계속 말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한숨을 깊게 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후우.... 모르겠어.... 나도 처음 오게 된 이 지구라는 땅에서 저런 괴물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이곳이 우리가 ‘지옥’이라고 부르는 그 곳이 아닌가 싶구나. 아무튼 저들은 과거 엘리시움의 신과 신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에피로제님께 상당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데비아나,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예, 솔로우스님. 말씀하십시오.”
“넌 이제 데비아나와 그녀의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다시 검은 방으로 들어가라. 너무 깜깜해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적어도 그곳이 이 ‘지옥’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예? 그럼 솔로우스님은.....”
“난 여기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구나. 내가 저 괴수를 막겠다. 너희들은 여기서 후퇴해서 어떻게든 엘리시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피로제님께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상세히 보고해야 해. 최대한 빨리.”
그렇게 말하면서 솔로우스는 조금 울상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베토케로우스를 막는데 목숨을 걸어야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엘리시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이 여러 개가 있다고 해도 죽음은 두려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쪽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데비아나는 적이 다가오고 있는 정면을 주시해야 했기 때문에 고개를 솔로우스에게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가 있는 곳이 그녀가 한 쪽 눈을 감고 있는 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솔로우스의 말을 들면서도 그의 슬픈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솔로우스는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가 한 쪽 눈을 쓰지 못하는 것을 영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베도아, 잠시 네 얼굴을 내게 가까이.... 내 이마에 네 얼굴을 대라.”
“예? 제 이마를요? 지금 말입니까?”
“그래, 어서 내 이마에 네 얼굴을 갖다 대라. 난 지금 팔 하나도 제대로 올릴 수 없단다.”
베도아가 얼굴을 그의 이마에 갖다 대자, 그의 이마가 하얀 빛을 내었다. 그 빛은 그의 이마에 맞닿은 베도아의 얼굴로 이동하더니, 그녀 얼굴 전체로 퍼졌다.
“아아... 열이 느껴집니다. 따스하군요.”
베도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보이지 않는 눈에 갖다 댔다. 그제야 솔로우스가 자신의 눈을 치료해주기 위해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던 한 쪽 눈을 뜨게 되었다. 다시 두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된 베도아는 감격해서 솔로우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솔로우스님. 제 눈을 치료해주셨군요.”
솔로우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 없이 그녀의 감사 인사를 받은 후, 다시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다시 그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베도아, 내가 한 얘기를 절대 남들에게 하지 말고 오직 에피로제님께만 전해야 한다. 그리고 넌 데비아나와 함께 이곳에 왔던 병사들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알겠지?”
베도아는 이곳에 함께 온 병사들을 모두 죽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내심 깜짝 놀랐지만,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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