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만월의 밤 - 65 화
만월의 밤 – 65
텔리의 환영은 공중에서 날아와 땅에 발이 닿자마자 베토케로우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주먹을 깊숙이 찔러넣었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 직접 검은 연기를 주입했다.
“크아아아아!”
전혀 예상히 못한 기습에 당한 베토케로우스는 큰소리를 지르며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텔리의 환영은 거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고 베토케로우스의 목 위로 올라타서 그의 목덜미를 손날로 깊숙이 찔렀다. 처음엔 몸통 그리고 이젠 목에까지 검은 연기가 침입하자 베토케로우스는 맹독에 중독되어 입에 거품을 물고 말았다. 그의 붉은 눈이 서서히 감기면서 거대한 몸뚱이는 비틀거리다가 ‘쿠쿵’ 소리와 함께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검은 연기가 주입된 그의 옆구리와 목은 시커멓게 타서 이미 살이 썩어가고 있었다.
카베쿠스와 늑대들은 베토케로우스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그의 목 위에 올라타서 그를 공격하는 텔리의 환영을 발견하자, 다시 주인에게로 달려왔다. 그들은 미쳐 날뛰면서 베토케로우스 주변을 돌며 텔리를 공격할 틈을 찾으려고 했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그들이 주저하는 동안 베토케로우스는 결정타를 맞고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컹!’
애꾸눈 늑대 카베쿠스가 날카로운 소리로 짖자, 주위의 많은 검은 늑대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들었다. 쏜살같이 달려오는 늑대들을 본 텔리의 본체는 손을 들어 자신의 환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환영은 한 번 씨익 웃더니 ‘퍽’ 소리와 함께 몸 전체가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공기 중에 독무를 뿌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카베쿠스와 그 주변 늑대들은 모두 검은 연기를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땅에 쓰러졌다.
* * *
“휴우우우....”
텔리는 안도의 숨을 한 번 내뱉더니 베토케로우스와 늑대들이 쓰러진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야아... 늑대들이 다 죽어 있는 것 좀 봐봐. 정말 아름답군.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이 나다니 말이야. 단 한 번의 기습을 위해서 내가 가진 능력을 많이 부여한 환영이었는데 순식간에 저렇게 사라져 버렸어. 후후훗.”
그의 곁에 서 있던 키쥬아의 환영도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지금 와서 환영에게 나눠준 힘을 아까워해선 안 되죠. 그 한 번의 공격으로 겨우 숙적을 물리친 건데.”
“그건 그래. 꿈에서도 보기 싫은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쓰러트리니 다행이지. 다 네 덕분이다. 키쥬아의 환영. 네가 짧은 시간에 내 환영을 만들어주고, 또 위기에 처했을 때 베토케로우스의 주의를 끌어줘서 내 환영이 기습에 성공할 수 있었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오빠가 웬일로 내게 칭찬을 다 해요? 그동안 이 세계에 있으면서 많이 변했군요?”
텔리는 쓰러진 베토케로우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내가 많이 변한 것을 느껴. 바이를 가뒀던 감옥에서 오랫동안 그와 함께 지내다가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별일을 다 겪었거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어휴, 아마 넌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
“그러게 거기서 바이 오빠나 잘 지키고 있지, 뭐하러 기어 나와서 별별 꼴을 다 겪었나요? 거기 있었으면 바이 오빠도 탈옥하지 않았을 테고 지금 일이 복잡해지지도 않았을 텐데? 내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졌다고요.”
“일이 복잡해지다니? 너가 하려는 일이 뭔데 일이 복잡해져? 그리고 네 입장이 난처해졌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텔리는 고개를 돌려 키쥬아의 환영을 보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베토케로우스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빨리 가서 마무리나 지어요.”
“마무리? 아니야.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저놈은 아버지의 검은 연기에 당했잖아. 세상 그 어느 것도 그 연기에 당하면 살아남을 수 없어. 훗훗훗.”
“그렇다고 마무리를 안 짓겠다는 거예요?”
“아니, 봐봐. 내가 이미 마무리를 지은 거라니까? 검은 연기가 저놈의 몸 안에 들어가서 육체가 이미 빠르게 썩어가고 있다고. 어떤 능력으로도 그 죽음은 피할 수 없어. 난 오히려 저놈에게 가장 큰 벌을 주고 있는 거야. 바로 숨이 붙어 있는 채로 자신의 썩어가는 몸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맡게 하는 거지. 영원히 사는 몸이 썩어간다라.... 우리 세계의 신이나 신수에게 그보다 더 끔찍한 죽음이 또 있을까! 아아아, 내 기분이 다 유쾌해진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야.”
“하! 유쾌하다고? 쯧쯧쯧.....”
키쥬아의 환영은 텔리를 흘겨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텔리는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들어 올리면서 대꾸했다.
“왜 그러지? 고통의 여신인 넌 내 기분을 잘 알 텐데? 너야말로 포로를 죽이기 전에 실컷 괴롭히다 죽이는 악취미가 있잖아. 혹시 키쥬아의 환영이라서 그런 건가? 내가 아는 키쥬아는 이런 광경을 봤으면 누구보다도 즐거워했을 거라고.”
“그야 일반적인 포로를 잡아두고 고문할 때나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건 베토케로우스잖아요. 저놈은 괴물이니까 빨리 해치우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낫지요. 에이, 난 이제 모르겠네요. 지금 전 당신에게 환영을 만들어주느라 너무 많은 힘을 써서 피곤하니까요. 다시 오빠 몸으로 들어가야겠어요. 어서 다시 제게 힘을 공급해주세요.”
“어, 그래. 다시 내 몸으로 들어가.”
키쥬아의 환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연기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연기는 텔리의 등으로 빨려 들어갔다. 텔리도 온통 검게 변했던 모습에서 다시 평소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아까 벗어두었던 옷을 주워서 주섬주섬 입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자 늑대들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야, 난리도 보통 난리가 난 것이 아니네. 이거 치우려면 끝도 없겠는데? 음, 그런데 그거야 뭐 내 전문이 아니니까 내 알 바 아니지. 여긴 멧돼지 신수의 동네니까 그가 알아서 잘할 거야. 어디 보자. 베토케로우스는 아버지의 검은 연기를 직접 몸에 주입해서 죽였으니 그 시체도 전부 곧 썩어 없어질 테고..... 이젠 케르케로우스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쪽으로 가봐야겠다. 아까 보니까 불새군의 신전 전사 따위에게도 밀리던데, 지금도 분명히 고전하고 있을 거야. 하여간 한심한 늑대 같으니... 자기 형의 절반, 아니 십 분의 일이라도 닮았더라면 그 모양이지는 않을 텐데.”
텔리는 그렇게 혼잣말하고 눈길을 어두운 산속으로 돌렸다. 검은 방의 입구가 아직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어슬렁거리며 발걸음을 검은 방의 입구로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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