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만월의 밤 - 44 화
만월의 밤 – 44
에뮤니우스는 두손을 모아 입에 대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베토케로우스님! 저 에뮤니우스가 불새군을 이끄는 릴리카 대장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불새군은 지금부터 베토케로우스님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이들을 검은 방의 숨겨진 입구로 인도해 주십시오!”
에뮤니우스의 목소리가 메아리를 치며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록 늑대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조금 전 들렸던 늑대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릴리카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에뮤니우스, 왜 이렇게 조용해? 설마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에뮤니우스도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리가요. 음... 그럼 다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는 다시 양손을 모아 입에 갖다대고 방금 전보다 더 큰소리로 외쳤다.
“베토케로우스님! 들으셨습니까? 여기 있는 불새군은 검은 늑대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게 어서 신호를 보내주십시오!”
그가 더 큰 목소리로 외쳤건만 여전히 저쪽은 침묵을 지켰다. 릴리카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보자 에뮤니우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음.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응답을 주실 터인데······. 제가 다시 한번 신호를 보내보겠습니다. 흠흠흠. 베토케로우스님....!”
에뮤니우스가 다시 양손을 모으고 입에 대며 소리를 지르는데, 가까운 숲속에서 늑대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컹!’
릴리카와 에뮤니우스가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 곁에 있던 병사들도 손에 무기를 들고 혹시 모를 늑대의 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누가 말했다.
“그만 시끄럽게 소리 질러라. 에뮤니우스. 주인님께서는 네 목소리를 들으셨다.”
에뮤니우스는 반가운 목소리로 숲속에서 나오는 늑대를 알아보았다.
“아, 당신은···! 당신이 직접 오셨군요.”
숲속에서 나온 늑대는 다름 아닌 베토케로우스의 부관인 카베쿠스였다. 그는 얼굴에 큰 흉터를 하고 온전한 한쪽 눈으로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순간, 에뮤니우스는 전에 없었던 그의 얼굴에 난 흉터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아마 안 좋은 사연일 있을 것인데 괜히 물어봤다가 성질을 돋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재빨리 릴리카에게 카베쿠스를 소개했다.
“릴리카님, 검은 늑대의 신수 베토케로우스님의 부관인 카베쿠스입니다.”
카베쿠스는 앞다리를 앞으로 피며 마치 절을 하듯이 상체를 숙였다. 아마도 베토케로우스의 명으로 다른 곳에 갔을 때 그곳의 책임자에게 인사하는 예법인 것으로 보였다.
“저는 모든 신수들 중 가장 높으신 베토케로우스님을 모시는 종인 카베쿠스라고 합니다. 온 엘리시움에서 명성이 자자하신 에피로제님이 아끼시는 성전사 중의 성전사이신 릴리카 대장님을 뵈옵니다.”
릴리카도 고개를 끄덕이며 카베쿠스를 맞아주었다.
“잘 왔네. 여기 있는 에뮤니우스에게 듣고 보니 우리가 섬기는 에피로제님과 베토케로우스님의 뜻이 일치하는 것을 알게 되어 연합을 결성하기 바랐다네. 베토케로우스님께서 그 제안을 흔쾌히 승낙하여 주셔서 너무 기쁘군.”
“주인님께서는 저희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두 분의 대화를 들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릴리카님께서 마주하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가? 과연 그분께선 검은 방의 진짜 주인이신 게 분명하군. 그 얘기는, 우리가 케르케로우스를 죽여 그의 정수를 취한 후 엘리시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허락하신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긴장하고 있던 릴리카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래?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도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다해 케르케로우스와 싸우겠네. 그리고 검은 방이 다시 그 진정한 주인께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겠네.”
카베쿠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검은 방의 진정한 주인이신 베토케로우스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의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애꾸눈 늑대가 선두로 발걸음을 옮기자 불새군 병사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들은 카베쿠스가 단신으로 자기들에게 찾아와서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걷는 것을 보고 모두 내심 놀랐다. 릴리카 역시 그 당당함과 태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여유있는 모습이라니 놀랍군. 어쩌면 에뮤니우스가 검은 늑대의 군대에 대해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인지도 모르겠어. 저 늠름한 몸집에, 저 당당한 모습을 보면 카베쿠스 부관이 이끄는 전사들도 과연 어떨지 상상이 가. 물론 엘리시움을 제패하고 있는 우리 불새군의 성전사들에게는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이들도 분명 상당히 강할 것 같다. 일단은 이들을 적으로 두어서는 안 되겠어. 엘리시움에 돌아가서 에피로제님과 대사제 솔로우스님께도 그렇게 알려드려야겠다.’
선두로 간 카베쿠스는 붉은 밧줄에 묶인 건수를 발견했다. 그는 잠시 건수 주위를 돌면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킁킁.’
그리고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네 녀석. 몇 달 전 인간들의 도시에서 놓쳤던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로구나. 에뮤니우스가 네 놈의 흔적을 남겨줬었지. 그때 그 냄새다. 아.... 킁킁. 킁킁.”
카베쿠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한 번 건수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이곳에서도 널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내 부하들의 희생이 컸지.”
그는 처음 건수와 일행이 산 입구의 공터에서 늑대들을 만나 일전을 치렀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도 널 붙잡을 수 있었는데 놓쳤던 거구나. 크크킄. 하지만 어차피 네놈의 운명이란 이렇게 되는 것이었군. 네 이름은 카베쿠스. 베토케로우스님의 부관이다. 주인님께서는 사제를 두지 않으시니 케르케로우스의 사제인 너와 동급이지.”
카베쿠스가 갑자기 다가와서 자기의 냄새를 맡더니 또 이상한 타이밍에 자기소개를 하고 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멀뚱거리다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렇군요. 전 알고 계신 대로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인 손건수라고 합니다.”
건수가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카베쿠스는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너, 좀 이상한 놈이군. 인간인데 늑대의 냄새도 난다.”
카베쿠스는 건수를 한 번 째려보더니 불새군의 선두에 섰다. 건수는 너무나 어색한 나머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 이상한 건 당신이지. 사람도 아닌 짐승인데 내게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는 바람에 분위기를 엄청 어색하게 만들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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