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30 화

솔로우스 – 30

갑작스러운 케르케로우스의 등장에 모든 불새군 병사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에게 목숨을 잃기 바로 직전의 늑대들에게는 목숨을 보전할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이제 수가 얼마 남지 않은 늑대들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재빨리 숲 속으로 도망쳤다. 그것을 본 몇 명의 불새군 병사들이 그들을 쫓아 숲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또 한 번 날카로운 소리의 피리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동작을 멈췄다.

‘삐이이이익-!’

피리를 입에 대고 있는 사람은 노인 옆에 서 있던 강인한 인상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땋은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짙은 남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딱딱한 껍질 같이 보이는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는 피리에 몇 십 명의 병사들이 동작을 바꾸고 착용하고 있는 옷과 보호구만 보더라도 그녀가 단순한 군인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풍기는 분위기를 보니 혹시 릴리카나 알렉시스 같은 여전사는 아닐까?

“모두 물러서라. 솔로우스 대사제께서 신수께 직접 말씀드리시길 원하신다!”

그녀 옆의 서 있는 노인이 그녀에게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그녀가 방금 언급한 솔로우스 대사제인 듯 했다. 그가 손을 들자, 뒤에 있던 젊은 남성 둘이 그의 팔을 잡고 그를 부축했다. 그는 워낙 고령인지라 누가 돕지 않으면 홀로 거동이 불편한 듯 보였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더니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두 젊은이에게 의지하면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케르케로우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 것이었다. 솔로우스를 보고 불새군 병사들 중 하나가 무릎을 굽히려고 하는데, 피리를 불고 있는 여자가 손을 쭉 뻗어서 그를 말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케르케로우스는 그들의 적이니 무릎을 굽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 병사는 고개를 숙이며 말없이 그녀에게 사과하더니 다시 제자리에 늠름한 자세로 섰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하시는 불새의 신수, 에피로제님의 사제, 솔로우스가 검은 방의 주인이신 케르케로우스님을 뵙습니다. 예전부터 신수님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에야 만나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그대가 솔로우스로군. 난 케르케로우스라고 하네.”

일단 자세를 낮추고 공손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솔로우스를 보자 케르케로우스도 즉각적으로 적의를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불새군에 대해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풀 뒤에 숨어 있던 건수는 신수가 불새군과 대화를 시작한 것을 보고 약간 안심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모습을 드러내고 수풀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조금 전 케르케로우스와 함께 나서지 않은 것은 조금 비겁했지만, 신수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솔로우스는 눈을 가릴 정도로 길게 자란 흰 눈썹을 들어 올리며 건수의 상체를 결박하고 있는 붉고 굵은 밧줄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당연히 그 밧줄의 유래와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래 케르케로우스와 맞설 때 그의 힘에 대응하도록 제공했던 물건이었다.

“그 밧줄은 에피로제님의 힘이 깃들어져 있는 물건이로군요. 그렇다면......”

“이쪽은 나의 사제라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솔로우스는 건수가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라는 것을 전해 듣고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지만 이내 그 기색을 숨기고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반갑게 인사했다. 건수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솔로우스의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아... 예. 안녕하세요.”

다소 분위기가 누그러진 듯 했지만 여전히 케르케로우스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불새군이 자신을 만나면 무슨 일을 하려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솔로우스에게 말했다.

“내게 사제가 있다는 것을 듣고 조금 놀라는 것 같군.”

“그것은..... 예,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솔로우스는 예전에 불새군이 케르케로우스의 신전을 불태울 때 그의 모든 사제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 명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놀랐던 것이다. 케르케로우스는 살짝 노기를 띤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네들이 나의 사제들을 다 죽였지 않았나? 그리고 내 마지막 하나 남은 사제도 저렇게 에피로제의 힘이 깃든 끈으로 묶어놓고 말이야. 그리고 자네는 저 끈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지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솔로우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어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저 밧줄을 에피로제님의 여전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저 밧줄은.....”

“그건 아마도 대단한 힘을 가진 자를 결박하기 위해 준비한 물건이겠지. 평범한 사람을 묶는데 신수의 힘이 깃든 물건까지 사용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예를 들면 나 같은 신수라든지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은 내게 사제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 거지. 또 막상 그와 맞서보니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속박하는데 불새의 힘이 깃든 끈을 사용한 거겠지.”

“그랬습니까? 전 잘 몰랐습니다. 송구스럽게도 밧줄은 케르케로우스님을 상대할 때 사용하려고 했던 것은 맞습니다만 당신의 사제에게 사용한 것은 저도 지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희가 큰 실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는 꼭 케르케로우스님을 대적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솔로우스는 조금 전 검은 방을 나온 터라 왜 건수가 에피로제의 밧줄로 결박당한 상태인지 그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 역시 계속 그걸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방금 케르케로우스가 알려준 것이었다. 그는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케르케로우스는 이미 심기가 많이 불편해져있었다.

“웃기는 소리! 크르르르르....... 내 사제에게 한 일뿐만이 아니다! 너희 불새군은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검은 방을 통과했다. 게다가 그 안에서 난동까지 부렸다. 그것 때문에 지금 검은 방은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평소라면 이미 문이 닫혔어야 하는데!”

그러자 피리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여전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웃기지 마! 우린 그저 검은 늑대의 잔당을 쫓고 있다가 우연히 검은 방에 발을 들였다가 케르케로우스, 네 놈이 검은 방에 있지도 않기에 그냥 주인 없는 통로를 통과한 것뿐이다. 어디 감히 트집을 잡으려는 게냐!”

“뭐라고?”

케르케로우스가 화를 내며 힘을 집중시키자 몸에서 하얀 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방은 어느 세력도 침범할 수 없는 중립지대다. 그곳에서는 어떤 적대적 행위도 금지되어 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인간들에게 한 짓도 혹시 용서할 수 있어도 검은 방의 질서를 어지럽힌 것은 참기 힘들다. 너희들이 모든 엘리시움의 신과 신수의 법을 어겼으니 그 응분의 댓가를 치러라!”

여전사는 대노한 케르케로우스를 직접 보고도 전혀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흥! 지금 보니 부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다 자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우리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 신수!”

그녀는 손에 든 작은 피리를 다시 입가에 대더니 한 번 길게 불었다.

‘삐이이이이이익-’

그 소리를 듣자 병사들이 다시 칼을 들어 올렸다. 여전사가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명령했다.

“오래 전 이곳에 먼저 왔던 부대는 우리의 적에게 몰살당한 듯하다. 자, 에피로제님의 뜻이다. 어서 저 늑대 녀석을 열 조각으로 잘라 죽여라!”

“옛!”

그녀의 명령에 한 목소리로 대답한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대열을 바꾸더니 순식간에 케르케로우스와 건수를 둘러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