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03 화

예언자들 – 103

“릴리카님, 잠시만요. 지금 각각 10 만 달러라고 하셨습니까?”

옆에 앉아 있던 이사우라는 방금 릴리카가 했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것도 마음이 급했는지 엘리시움어를 사용했다. 릴리카는 눈을 내리 깔고 여유만만한 얼굴로 그녀의 부관을 보았다.

“왜? 귀가 안 들려? 각각 10 만 달러라고 했잖아. 뭐해? 이 사람들 계좌로 당장 와이어 하지 않구.”

“네? 그래도 그렇게 큰 금액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심이.....”

두 사람에게 각각 10 만 달러라니. 한화로 2 억도 넘는 큰돈이 아닌가. 불새 무리에서 살림을 담당하는 이사우라는 릴리카가 그렇게 큰돈을 자기 기분 내는 데 사용하려는 것을 보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하나? 이사우라. 여기 한국인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하지만 릴리카는 고집을 부렸다. 오히려 이사우라가 양 형사와 조 회장 앞에서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모습을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여겼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곧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다른 방으로 가야 해서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사우라는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를 떴다. 아마도 맘대로 행동하는 릴리카에게 화가 나서일 텐데, 항상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던 그녀도 언제부터인가 느끼는 감정을 표정으로 표출하게 된 것이다.

‘후우.... 진짜 너무하는군. 무슨 생각인 거야, 저 인간은?’

이사우라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스위트룸을 떠났다.

이사우라가 떠난 후 릴리카와 두 사람은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건수라는 청년의 힘을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으나 그들은 그저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겨우 한 명의 젊은이를 잡아들이는 것인데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을 비웃었다.

‘일개 지구인인 너희들이 우리 세계의 신의 힘을 받은 자를 맞닥뜨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직도 모르는구나. 호호호. 어차피 너희야 소모품이니까.’

양 형사와 조 회장, 그리고 그들의 식구를 겨우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경고했다.

“당신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그 건수라는 청년이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혼자라고 해도 당신들 몇 명이나 맞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를 죽이지 말고 생포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해요. 꼭 생포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는 더 큰 먹이를 위한 미끼에 불과하거든요.”

그러자 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조 회장의 통역을 전해들은 양 형사 역시 그 부분에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휴, 걱정 마십시오. 미스 칼라스. 오랜 경험이 있는 저도 그렇고 여기 조 회장네 식구도 그리 말랑말랑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방금 더 큰 먹이를 위한 미끼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이 청년을 확보한 이후에도 저희와 함께 일을 하실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나요?”

양 형사는 릴리카의 말 중 ‘더 큰 먹이를 위한 미끼’라는 문맥에서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의 물음에 릴리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럼요! 안 그래도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먼저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군요. 그런데 그 일은 정말 위험할 수 있는데......”

그녀가 그렇게 운을 뜨자 양 형사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미끼를 물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글쎄요. 굳이 얘기하자면 사냥을 해야 한다고 할까요?”

“사냥이요? 아니, 사람을 말입니까?”

깜짝 놀란 양 형사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질문했다. 옆에서 통역하고 있던 조 회장도 그 부분에선 초조한 기색을 얼굴에 드러내고 말았다.

“네? 사람이요? 호호호! 아니요! 아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하실 수가 있죠? 동물이요. 하지만 특별한 동물이에요. 그것도 한 마리만 잡는 거예요.”

“네? 동물을 사냥한다고요?”

양 형사와 조 회장은 릴리카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렇게 1 초간 가만히 있더니 끝내 그들의 입에서 “푸하하하!” 하고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스 릴리카는 정말 저희의 예상을 뛰어 넘는 놀라운 분이시군요. 하하하하.”

“잠깐만!”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흥분하며 웃는 양 형사와는 달리 조 회장은 웃음을 그치고 다시 차가운 포커 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그 동물, 혹시 천연기념물이거나 그런 것인가요?”

“왜요? 그러면 안 되나요?”

릴리카가 반문하자 조 회장이 다시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나야 천연기념물 그딴 거 상관없소. 그럼 사냥에 총도 필요한 가요?”

“어떤 무기든 손에 익은 거라면 뭐든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강력할수록 좋겠죠?”

과묵한 조회장은 이번에도 역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릴리카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참여여부를 물었다.

“그럼 오늘 청년을 확보한 후 사냥도 함께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는 건데요. 어떤 사상자가 나와도 알아서 처리하셔야 합니다. 또, 중간에 어떤 일이 생겨도 그 동물을 사냥할 때까지가 계약 완료인 시점인 거예요. 그 부분에 이의 없으신 거죠? 보수는 오늘 청년을 확보하는 일의 세 배를 드리겠습니다.”

“예, 좋습니다.”

양 형사와 조 회장은 릴리카의 제안에 흔쾌히 대답했다.

“자, 이제 강원도로 함께 가시죠.”

“우린 당신 매니져가 입금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 움직이겠소.”

조 회장은 10 만 달러의 입금을 확인한 후에 자기들 인원을 데리고 릴리카의 부하들과 함께 강원도로 움직이겠다고 했다.

“훗. 좋을 대로.”

릴리카는 그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 *

스위트룸을 함께 나서면서 조 회장은 양 형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저 칼라스라는 여자는 정말이지 속을 알 수가 없군요.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가 몇 달 만에 그를 찾았더니 이젠 함께 사냥을 하자니 말입니다.”

그러자 양 형사는 씨익 웃었다.

“좋지, 뭘 그래? 우리가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는데. 편하게 돈 버는 거 아닌가.”

“쉬운 돈벌이라... 그건 그렇죠. 그래도 좀 수상합니다. 시키는 일마다 다 합법적인 건 없잖습니까? 동물을 사냥하겠다는데 우리 힘을 빌리겠다는 것도 영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동물이 그냥 일반적인 산짐승일지 아니면 천연기념물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전문적인 사냥꾼들도 아니고......”

“응? 자네 같은 사람이 합법, 불법을 따질 줄은 몰랐네.”

‘자네 같은 사람’이란 말을 듣고 기분이 좀 상했는지 조 회장은 순간적으로 인상을 구겼다. 그걸 본 양 형사는 ‘아차’ 싶어서 말을 둘러댔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힘쓰는 일도 아니고 무슨 작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우리가 각자 1 억도 넘게 땡겼는데, 이런 돈 벌이가 어딨어. 오늘 어린 애를 잡아들이면 또 1 억 넘게 받는 거고. 그 다음에 뭔 동물인지는 몰라도 사냥에 성공하기만 하면 각자 6 억 원이나 더 얹어준다는 것 아닌가. 그야말로 로또 맞은 거지.”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자기가 부자라고 해도 돈이 소중한 건 세상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텐데, 어떻게 저렇게 돈을 물 쓰듯이 쓴다는 거냐고요. 이건 그냥 돈을 버리겠다는 거 아닙니까.”

양 형사는 조 회장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그냥 쉽게 쉽게 생각하자고. 뭐라더라? 저 여자가 나이는 어려도 무슨 세계적인 팝스타라며. 돈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헛지랄하는 거야. 돈을 쓸 수 있을 만큼 다 써도 남으니까 이상한 일에까지 쓰는 거라고. 어떤 헐리우드 스타들은 그런다며.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고도 치고. 이번에 우리가 운 좋게 봉 잡은 거지, 뭐.”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한데..... 그 때 설명하셨던 걸 생각해보면 저 여자가 데리고 있는 무리들도 몇 십 명은 될 것 같던데요. 전에 있었던 일을 봐도 모두 보통내기들이 아닌 것 같고요. 아무래도 저 여자, 무슨 조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때문에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도대체 한국엔 왜 왔을까요?”

조 회장은 무엇이 그렇게 꺼림칙한지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뭔가를 추리해보려고 하는데 생각처럼 잘 안 풀리는지 몇 번이나 눈을 찡그리며 깜박였다.

‘딩~’

그 때, 양 형사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한 통 왔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서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뻐했다.

“이거 좀 보라고.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어이구! 자그마치 1 억 하고도 2 천이야. 자네에게도 들어갔을 거야.”

“예. 뭐, 그렇겠죠.......”

돈을 받고 기뻐하는 양 형사와 달리 조 회장은 왠지 심드렁해보였다. 양 형사는 다시 조 회장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 빨리 가자고. 강원도로 가서 집 나간 애를 잡아 와야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