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86 화
예언자들 – 86
미스터 황과 건수가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텔리가 그의 사제를 보더니, 잔소리를 해댔다.
“너희는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건수는 몰라도 미스터 황, 너는 듣고 있었어야지.”
미스터 황은 고개를 딴 데로 돌리며 대꾸했다.
“뭐, 계속 혼잣말만 하시던 데요. 그래서 한참 걸리겠구나 싶어서 잠깐 나갔다 온 거에요.”
“저런 고얀...!”
알렉시스는 미스터 황의 태도를 보고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텔리님, 인간 따위가 신께 저렇게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저놈을 태워 죽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텔리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냐. 원래 여기 인간들이 좀 저래. 쟤네는 보이지 않는 신을 모시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이해요?”
알렉시스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텔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텔리님께서는 소문보다 훨씬 자비로우신 분인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저토록 불경한 사제를 곁에 두시고 그의 거슬리는 행동을 개의치 않으시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 뭐. 내가 너그러운 편이긴 하지.”
미스터 황은 기가 막혔다. 왜 알렉시스가 갑자기 텔리에게 아부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저 여자는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서 아부질이야? 사제는 난데 왜 자기가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서..... 어이가 없네.”
“어디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그대가 신의 사제라면 직책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라!”
미스터 황은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뭐? 어디서 훈계질이야? 아까 전에 자기가 텔리님 손에 죽을 지도 모른다고 벌벌 떠는 게 불쌍해서 측은지심에 도와주려고 했던 나한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이노오오옴! 태워죽이겠다!”
“야, 너희들. 그만 해. 둘 다 진정하라구. 하하하하.”
텔리는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둘을 말렸다. 그리고 알렉시스를 다시 자기 앞에 앉히고 말했다. 알렉시스는 방금 전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텔리의 말을 들었다. 미스터 황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저건 오버야. 오버!” 라고 비난하며 혀를 끌끌 찼다.
“알렉시스, 내가 아깐 아주 중요한 일이 잘 안돼서 너무 화를 내는 바람에 잠시 널 위험하게 했던 것 같긴 한데 뭐... 이미 지나 간 일 아니겠어?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알렉시스는 고개를 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텔리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전 아무 기억도 없는데요.”
“아... 그렇지! 아까 일이 있긴 뭐가 있었어? 없었지. 훗훗훗.”
미스터 황은 뒤에 서서 알렉시스의 능청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아까 아무 일도 없었데. 우와.... 저 여자 진짜 여우네, 여우. 구렁이 속에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야. 에이, 짜증나.”
알렉시스가 여우 짓을 하건 말건 텔리는 기분 나쁠 일이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불새군에서 중요한 직책을 가졌었다는 것도 알지만 이젠 소속이 없어진 듯 하니, 함께 나의 적들을 물리치는 것은 어떨까? 에뮤니우스, 베토케로우스, M, 그리고 내 형까지.... 내 적들은 모두 널 속였던 자들이다.”
미스터 황은 텔리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돼요! 저 여자가 왜 텔리님한테 와요?”
자꾸 옆에서 미스터 황이 떠들자 텔리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었다. 그걸 본 건수는 미스터 황의 팔을 잡아 당겼다.
“형! 너무 심했어요. 지금 딱 봐도 중요한 말씀을 하고 계시잖아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자꾸 그렇게 나가면 큰일 당한다니까요?”
“뭐? 내가 무슨 틀린 말했어? 으이씨..... 야, 그런데 넌 그런 속담도 아냐? 왠지 말투가 갑자기 올드해졌어.”
“엥? 저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입에서 그냥 막 나왔는데.....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데 어쩌다 한 번씩 좋아질 때가 있더라고요. 터보 달린 차가 터보 쏘는 것처럼요.”
“아무튼 내 팔 놔.”
미스터 황은 짜증을 내면서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는 건수의 손을 뿌리쳤다.
알렉시스는 후안에 대한 자신의 애타는 사랑과 절실함을 덫으로 이용한 에뮤니우스의 계략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한 상황이었다. 한 번 배신했기 때문에 불새군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배우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홍보일정 계약을 무단으로 어겼기 때문에 영화배우로서도 그녀는 치명적인 실수를 해버린 터였다. 괴물로 변해버린 에뮤니우스가 그녀를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고 불새군도 그녀를 추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이 때 텔리가 자신의 편에 서달라고 요청이 왔으니 그녀로서는 쉽게 수락할 만도 한데.....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동안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왜? 나와 함께 싸우자는 게 싫은 거냐? 내가 오랫동안 네 부관이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거야?”
텔리의 질문에 알렉시스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텔리님께서 제 부관으로 계셨던 것은 제가 텔리님이 신이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런 큰 실례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다만.....”
“그럼 뭐야? 내가 인기 없는 살육의 신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널 보고 비웃을까봐 그러는 거냐? 악신의 신전전사라고 하면서 손가락질 받을까봐?”
“그...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전 후안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M의 영향 아래에 있는데 파괴신 바이베노파시스와 사신교를 처단하면 다시 부활한 그의 육체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가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네가 아는 후안은 이미 없다. 그는 널 잊었다니까.”
“아닙니다. 그는 M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의 영향만 사라진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돌아올 것입니다.”
옆에서 듣던 미스터 황이 한 마디 껴들었다.
“텔리님, 저게 말이나 됩니까? 텔리님 편에 서라고 하니까 자기 애인의 건강이 걱정되기 때문에 사신교 세력을 처단할 수 없다고 하고, 자기 애인이 제 정신이 아닌 이유는 사신교 때문이라고 하면 뭐 어쩌자는 거에요. 그냥 저 여자는 텔리님께 오기가 싫은 거예요. 알렉시스, 너 그딴 식으로 할 거면 관둬. 뭐야? 간 보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미스터 황의 폭주를 보고 있는 건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니나 다를까. 텔리가 고개를 돌려 미스터 황을 째려봤다.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는 것을 보니 다시 화가 난 모양이다.
“너 자꾸 선을 넘을래?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사제들이 몇 명인줄 넌 모르지?”
“네.. 네?”
미스터 황은 순간 멈칫했지만 다시 배짱 좋게 공세를 이어갔다.
“까짓 거 죽이려면 죽이십쇼. 제가 뭐 틀린 말했어요? 내 할 말도 다 못하고 살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자유를 위해 죽죠, 뭐! 프리덤!”
미스터 황은 팔을 벌리고 가슴을 넓게 펴며 소리쳤다. 그걸 보고 텔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저거 또라이네. 엘리시움엔 저런 게 없었는데 이상하게 이 세계에서 받아들인 사제들은 다 또라이야. 보로니도 그렇고 쾅식이도 그렇고. 쩝.”
미스터 황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건수는 내심 깜짝 놀랐다.
“와... 이거 놀랍네. 이 형 말이 맞았어. 형이 강하게 나갔더니 텔리님이 화를 내시기는커녕 포기하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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