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100 화
예언자들 – 100
강 소장은 이야기를 마치고 한숨을 쉬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렇게 임 순경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도로 위에 있었던 검은 들개도 마찬 가지고요.”
할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들개가 아니야. 늑대야.”
“늑대요?”
“그것도 이 세상 늑대가 아니야.”
“네? 그럼 외계에서 온 늑대인가요? 그 신령님들처럼 말이죠?”
“암, 그렇고말고.”
그러자 강 소장 옆에 있던 형사가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었다.
“허허허허. 야아... 이거 재밌네. 점쟁이에게 찾아온다고 하셨을 때 대충 귀신 얘기를 할 거라고 감 잡았습니다만, 설마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이야. 이건 내 예상을 뛰어 넘네. 강 소장님,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실 거예요? 이건 뭐 실종 장소로 가서 굿판이라도 벌리자고 대충 약치는 거 아니에요?”
“뭣이? 이런 고연....!”
“아니면 뭐? 부적이라도 팔려는 건가?”
할머니는 계속 무례하게 구는 형사의 말을 듣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노했다. 그러자 강 소장이 다시 진화에 나섰다.
“형사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모르긴 뭘 몰라요? 뭘 모른다면 무당한테 와서 도움을 받겠다는 경찰이 뭘 모르는 거지. 허허.”
그런 말을 뱉으며 대놓고 강 소장을 비꼬는 형사였다. 대놓고 모욕을 당했지만 강 소장이 눈을 질끈 감고 참으려고 애썼다.
“흥! 이 눔 보게. 정말 급살을 맞아도 싼 놈이구먼.”
할머니는 형사를 보고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네 눔이 날 처음 보는데도 그렇게 삐딱선을 탄 이유를 내 모르는 것 아니지만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뭐요? 삐딱선? 이 무당 할매가 진짜 말씀을 막 함부로 하네?”
할머니는 형사가 지껄이는 말을 듣지도 않으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하얗게 변해버린 눈동자로 그를 쏘아봤다.
“첫째, 난 무당이 아니다. 암, 귀신들과 얘기를 할 수는 있지. 하지만 난 무당이든 점쟁이든 한 적이 없다. 둘째, 네 눔이 어렸을 때, 네 형을 죽인 선무당과 내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고 네가 날 무안 주려고 하냔 말이다. 그러니 네 눔이 고연 것이다.”
“아니, 형 얘기를 어떻게....?”
형사는 어렸을 때 선무당 때문에 죽었다는 형의 얘기를 듣더니 얼굴이 파래졌다. 하지만 그는 할머니에게 지기 싫었는지 악담으로 응수했다.
“허! 제법 신기가 있긴 한가 보네, 이 할매. 좋아, 뭐라 했든 난 당신과 같은 부류는 딱 질색이니까. 계속 여기 소장님에게 헛소리나 지껄여 보시라고. 허허허.”
할머니도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그에게 대꾸했다.
“그러지. 어차피 죽은 목숨인 놈과 내가 할 말이 더 있겠느냐?”
그러자 형사의 눈초리가 몹시 사나워지는 것이었다. 강 소장은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바꿔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야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어르신. 어제 사라진 임 순경이 어디 있을까요? 지금 그를 수색대가 조직되어서 산에 들에 다 나가 있습니다. 최근 그 들개들이 워낙 극성이라는 소식에 민간 포수들도 많이 와서 있었는데 그놈들이 워낙 재빨라서 별로 성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언론에도 이 일이 퍼질 것 같고요. 가축도 아니고 사람이 피해 입었다는 소식은 정말이지 피해야 하는데, 이거 큰일입니다. 그래서 임 순경을 빨리 찾아야.....”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찼다.
“그 경찰, 못 찾아. 이미 죽었어. 그리고 사냥꾼들도 산에서 내려와야 돼. 잘못하면 다 떼로 죽어. 사람이 막을 수 있는 늑대들이 아니야. 영물들이야. 사람이 어찌 영물을 잡겠누.”
“아... 그러면 임 순경이 이미.....”
사라진 임 순경이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강 소장은 크게 낙심했다. 할머니는 건조한 톤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어제 자네들이 이 집에 너무 오래 머물렀었어. 어제 이 집엔 죽음의 신령님이 계셨었잖아. 그 분과 연관된 보통 사람들은 다 죽어.”
“아... 그 도깨비.....! 그렇군요. 그랬었군요.”
강 소장은 어제 대문을 부수고 담벼락과 방의 벽을 때려 부수던 노랑 머리의 괴인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텔리를 죽음의 신령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형사는 옆에서 묵묵히 할머니의 말을 듣는가 싶더니 또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허허허! 죽음의 신령? 와아.... 이거 무슨 금도끼 은도끼 산신령 이야기도 아니고. 후하하하! 무당 할매, 그럼 용궁 얘기는 언제쯤 나오는 거야? 하하하.”
“.......”
할머니는 그만 입을 꾹 닫아버렸다. 대꾸할 가치도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형사는 입을 쩝쩝 다시더니 입고 있는 점퍼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면서 말했다.
“뭐, 임 순경은 계속 수색대가 찾는 걸로 하고..... 내가 강 소장님을 따라 여기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 게 말이오. 어제 큰 일이 두 건이 났었거든. 하나는 한 음식점이 불에 타서 무너져 내렸었는데 정황 상 방화로 의심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모텔에서 시설 파손이 있었지. 그런데 두 곳에서 전부 외국인들이 연관이 되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어서 말이야. 아하, 그런데 그 모텔에서 여권 몇 개가 발견이 되었네? 그런데 참 희한하지? 이 여권들이 두 사건과 관계된 외국인들의 것일 줄이야. 허허허. 와우, 그런데 아직 놀랄 것이 더 있어. 이 여권들 중 하나의 주인이 마침 이 집에 떡 하니 있는 거야. 이거 우연치고는 정말 놀랍지 않나?”
“......”
할머니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강 소장은 왠지 마음이 조마조마해져서 할머니와 형사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형사는 여권들 중 하나를 펴서 인물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것은 다름 아닌 알렉시스의 사진이었다.
“저기 밖에 있는 외국 여자. 보니까 딱 이 여자네? 이거 강 소장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잡을 수 있었을까? 차 끌고 다니면서 얼마나 샅샅이 뒤졌어야 했겠어. 소장님, 감사합니다아아. 허허헛.”
“에... 뭐, 고마워하실 것까지야.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 여성분이 보통 분이 아니셔서.....”
형사는 알렉시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 만무했다. 어제 그녀가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강 소장은 그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말을 시작하면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래. 그 종이쪼가리의 얼굴, 저 분이 맞다. 그런데 뭘 어쩌겠다는 거냐?”
“호오. 이거 심문이 필요 없네. 순순히 한 패라고 자백하는구만. 범인을 은닉시킨 것도 죄야, 할매.”
형사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할머니를 비웃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딴 데를 바라보며 그에게 응수했다.
“범인 은닉? 범인이라.... 난 그딴 죄, 알지도 못해. 그건 잠시 후에 들어오실 분에게 여쭤봐.”
“응? 무슨 소리야. 또 누가 온다고?”
할머니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곧 바로 현관문이 열리면서 두 남자가 대화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건수와 검은 양복을 입은 텔리였다. 텔리는 할머니 앞에 앉아 있는 강 소장과 형사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손님이 와 있었군. 오, 어제 본 경찰, 너도 왔구나. 그래, 살아남은 쪽이 네 놈이었군.”
강 소장은 집에 들어오는 텔리를 보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도... 도깨비, 아니 주... 죽음의 신령! 으아아아... 사... 살려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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