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43 화

솔로우스 – 43

히메이오스와 붉은 수염의 헨리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들었어? 히메이오스? 엘리시움어야!”

“맙소사! 당신들, 엘리시움에서 오셨군요!”

히메이오스는 오랜만에 고향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자 너무 반가워서 그들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러자 데비아나의 병사들이 뽑아 든 칼을 그를 향해 들며 경계했다.

“죽고 싶지 않거든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넌 누구냐?”

히메이오스는 병사들이 들고 있는 방패에 그려져 있는 불새의 문양을 보더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비오타 지방에서 온 히메이오스라고 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처럼 불새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긴 헤베이투스입니다.”

히메이오스의 말을 들은 데비아나는 양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그에게 물었다.

“난 불새군의 성전사, 데비아나다. 그런데 그건 무슨 말이냐? 네가 불새군이었다니?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냐?”

“아, 그건 말입니다......”

히메이오스가 대답하려는 순간, 붉은 수염의 헨리가 대신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흰 불새군 병사가 맞습니다. 이 친구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희가 소속된 부대의 부대원들은 모두 전멸하고 저희를 비롯하여 단 3 명만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고하려는 것입니다.”

“뭐라고? 단 3 명만이 살아있다고?”

“그렇습니다.”

데비아나는 놀라면서 물었다.

“도대체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너희를 이끌던 대장은 누구지? 그리고 그 성전사는 지금 어디 있나?”

그러자 히메이오스와 헨리의 행색을 곰곰이 살펴보던 솔로우스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 그 옷차림을 보니 오래 전 이곳으로 보내진 릴리카의 부대원들이로군.”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장은 릴리카였습니다.”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엔 그가 솔로우스를 쳐다 보면서 물었다.

“당신은 혹시 대사제 솔로우스님이십니까?”

솔로우스는 긴 흰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내가 에피로제님의 대사제 솔로우스라네. 자네들은 어떻게 지금 이곳에 있는 건가? 데비아나의 말처럼 자네들을 이끌었던 릴리카는 어디 있지?”

“저희는 얼마 전까지 케르케로우스 제거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전에 실패했습니다. 저희는 모두 전멸 당했고 저희를 이끌던 릴리카는 행방불명인 상태입니다.”

솔로우스는 손을 이마에 대며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전멸이라니? 케르케로우스에게 전멸당했단 말이냐? 너희들이 떠날 때, 내가 릴리카에게 에피로제님의 힘이 깃든 성물을 전달했었다. 그것을 사용하고도 전멸 당했단 말이냐?”

솔로우스가 말하고 있는 것은 건수의 몸을 포박하는데 일부를 사용한 붉은 밧줄이었다. 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패한 상대는 케르케로우스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데비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케르케로우스를 제거하러 이곳에 온 너희가 작전에 실패했다고 말하면서 패한 상대는 그가 아니었다니, 그럼 케르케로우스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냐?”

“그의 형, 베토케로우스였습니다.”

그러자 솔로우스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베토케로우스? 그가 이곳 지구에 있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 전설의 괴수와 그의 검은 늑대들에게 당했습니다.”

데비아나 옆에 서 있던 부관 베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검은 늑대들이 이곳으로 도망쳤던 거로군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솔로우스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래, 베도아. 바로 그가 자신의 부하인 리베우스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었어. 우린 지금까지 그가 엘리시움 어딘가에 숨어있다고 생각했었지. 설마 지구에 와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헨리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는 살육의 신도 대면했습니다.”

“뭐라고? 살육의 신?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살육과 전쟁의 신께서는 지금 엘리시움에 있다.”

솔로우스가 그렇게 반문하자 히메이오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분명 살육의 신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정말 무서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불새군 병사도 죽이셨고 검은 늑대들도 죽이셨습니다. 마치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이 검은 늑대들을 이끌던 리베우스라는 늑대도 죽이셨습니다. 그것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끔찍하게 말입니다.”

“뭐라고? 리베우스를 죽여?”

데비아나는 살육의 신 텔리가 리베우스를 죽였다는 말에 기가 차서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리베우스의 목을 가져가는 것이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이었는데 엉뚱한 신이 이미 그를 죽여버렸다는 말을 듣고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헨리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솔로우스님, 그리고 성전사님.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검은 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입구에서 검은 늑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한 번 보십시오. 여기저기에 늑대들의 사체가 뒹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뿐이 아닙니다. 아까부터 검은 방 안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급기야 입구 쪽에서 불꽃이 나오는 것을 저희가 봤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 살아남은 저희 셋 중 하나가 케르케로우스를 부르러 갔습니다.”

“헨리.....”

히메이오스는 팔꿈치로 헨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난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 솔로우스님, 혹시 검은 방에서 그 소동은 여러분이 하신 거 아닌가요?”

데비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건 우리가 한 일이야. 저 안에서 계속 검은 늑대들과 일전을 벌이며 여기까지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너희 중 한 명이 케르케로우스를 부르러 갔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너희는 그를 제거하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면서 또 그를 여기로 부르러 갔다니,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설마 그를 여기로 유인해서 죽이겠다는 거냐?”

히메이오스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를 제거하는 계획은 실패해서 우리는 대신 최대한 엘리시움으로 돌아가..... 윽!”

이번엔 헨리가 팔꿈치로 히메이오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실은 그보다 베토케로우스를 맞서는 일이 더 급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상하게 들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자, 그와 힘을 합쳐 베토케로우스와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케르케로우스는 우리와 더 이상 적대관계가 되지 않게 되었고, 또 우리가 원한다면 엘리시움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검은 방을 통과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음. 결론적으로 보면 헨리의 얘기가 대충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반역을 저지른 부분은 쏙 빼놓고 얘기한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데비아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주먹에 힘을 집중시켜 불을 만드는 것이었다.

“뭐라고! 아니 그럼 너희들은 적과 손을 잡았단 말이냐!”

“아아앗!”

헨리는 그녀의 불주먹을 보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솔로우스는 헨리 앞으로 한 발 나아와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데비아나, 안 돼! 이들을 해치지 마!”

“안 됩니다. 불새군의 군법에 의하면 적과 내통하는 자들은 발견 즉시 사형입니다. 솔로우스님도 방금 들으셨잖습니까? 이 병사는 스스로 자기들이 적과 내통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내 귀엔 불가피한 사정으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들렸네. 누가 이들을 감히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저 살아남으려고 했던 사람들이고 또 겨우 3 명만 살아남았다는데, 자네가 그 중 둘을 죽여 버리겠다면 되겠는가?”

“절 막지 말아주십시오. 군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에피로제님의 뜻입니다.”

“아닐세. 난 이들을 살려주고 우리와 함께 엘리시움으로 데려간 다음, 에피로제님을 뵙게 해서 그 긴긴 시간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보고드리게 할 생각이네. 그러니 제발 물러서게.”

그 때였다. 그들을 에워싼 숲속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우우우우-’

그러자 그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여기저기서 늑대들이 짖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컹! 컹! 컹!’

베도아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데비아나에게 말했다.

“데비아나님, 아무래도 늑대들이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데비아나는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하나 꺼내더니 입술에 갖다 대었다.

‘삐이이익-’

“늑대들이 공격해온다. 어서 방어대형을 갖춰라! 솔로우스님을 보호해야 한다.”

“옛!”

병사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서둘러 방어대형을 만들었다. 그들 주위의 어두운 숲속에서 여러 개의 빛나는 눈들이 보였다. 수풀 이곳저곳이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