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32 화

만월의 밤 – 32

“눈.... 을 고쳐주신다고요? 제 눈을요?”

신기 할머니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디레이아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는 듯 재차 물었다. 여신은 할머니의 떨리는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이 천천히 다시 다시 답해주었다.

“그래. 언제까지 암흑 속에서 있을 수는 없잖니.”

“아... 하아... 이 눈으로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언제나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할머니였지만 이번만큼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다가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민했다. 그녀가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것을 보고 미스터 황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옴니테바를 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여러분, 제가 방금 이 물건으로 사모님의 병을 고쳤습니다. 뭐, 이곳에 병원이 있어서 자세한 검사를 통해 제 말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전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요. 사모님의 병은 분명히 나았습니다. 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눈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미스터 황이 치료에 자신 있다고 하자 할머니는 심각한 얼굴로 몇 분간 더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난 됐다. 내 눈이 이렇게 된 지 70 년이나 되었는데 인제 와서 눈을 떠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신령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 정말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미스터 황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실수할 일도 없는데, 치료를 거부한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망설이세요? 잘못될 일은 하나도 없어요. 고통도 없고요.”

“끄으응.”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치료를 거부하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속으로 갈등하고 있을까? 강원도 아저씨가 땅바닥에서 일어나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매가 저러시는 데는 이유가 있어.”

“이유요? 혹시 눈이 고쳐지면 신기가 사라지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미스터 황의 질문에 아저씨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예전에 내가 할매한테 그랬거든. 눈이 먼 것 같은데도 너무 불편함 없이 행동하시니까, 혹시 눈이 보이시는 것 아니냐고.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그랬지. 그랬더니 할매가 나한테 그러시더라고. 나중에 눈이 보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자기가 죽는대. 귀신이 와서 그렇게 알려줬나 보더라.”

그 말을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침묵을 지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디레이아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얘야, 그렇다고 이런 기회가 찾아왔는데, 죽기 전에 그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번 봐야 하지 않겠니?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잖아.”

“.......”

할머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혼자 고민했다. 그녀의 예언 능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함부로 조언하지 못했다. 그들도 그녀가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믿는 눈치였다. 누구나 한번은 죽어야 하고 이미 세상에서 90 년이나 살았던 그녀지만, 자기의 판단 때문에 일부러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들 중 오직 영원히 사는 여신인 이디레이아만이 그녀에게 치료를 권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할머니는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결정했습니다. 신령님 말씀이 옳습니다. 제 눈.... 치료받겠습니다.”

이디레이아가 할머니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마음을 바꾼 이유가 있니?”

할머니가 한 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전 젊었을 때 이렇게 눈이 멀어버리는 바람에 인생이 고달파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주변의 영가들이 제 눈이 되어 저를 많이 도와줬고 미래에 생길 일도 알려줬지요. 그 덕에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오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예전에 이 일에 대해 누가 알려줬던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눈을 다시 뜨게 될 텐데 그로부터 얼마 안 돼서 죽는다고 하더군요. 전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혼자 속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눈이 안 보여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좋았으나 그래도 한 번은 다시 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가 내게 눈을 고쳐주겠다 하면 어떡하나. 진짜 그런 일이 제게 생기면 어떡해야 하나. 족히 천 번은 넘게 고민해 왔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걸 다시 말하게 된 거구나.”

할머니는 이디레이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이 보는 이들에게도 전해져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은 희뿌옇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가 왠지 흔들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네. 오늘 제게 그 운명이 다가온 것을 느꼈습니다.”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다른 세계의 운명의 여신이다. 때문에, 남의 운명을 볼 수 있고 예언도 할 수 있지. 오늘은 네게 이런 운명이 찾아올 날이었어. 네가 만약 치료를 받지 않고 다른 운명의 실을 잡아당긴다고 하면 미래가 조금 달라지겠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치료를 받아서 눈을 뜨게 되는 게 가장 나은 미래를 선택하게 되는 거야. 네겐 많은 축복과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중요한 운명에 대해 미리 알고 네 손으로 직접 선택할 기회가 있지만, 대다수 사람에겐 그런 특권은 주어지지 않는단다. 그들은 전부 미래에 일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채 선택을 하곤 하지.”

“예. 알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제게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고민했거든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미스터 황 곁으로 가서 바닥에 누웠다. 미스터 황은 그녀의 사정을 들은 다음엔 생각이 변했는지 처음과 달리 머뭇거렸다. 혹시라도 자기가 하는 일이 할머니에게 누가 될까 봐 걱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텔리가 그를 보고 계속하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옴니테바를 쥔 손에 힘을 집중했다.

한 시간 후, 할머니는 두 번째로 미스터 황의 치료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치료 직후에는 빛이 너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마도 몇십 년 동안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차츰 눈을 뜨고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본 것은 그녀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아, 보... 보인다. 70 년 만에 내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어!”

“얘야, 이제 눈이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낯선 서양인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겨우 뜬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악! 깜짝이야! 이건 웬 도깨비인가!”

“나야! 이디레이아! 지금까지 계속 내 목소리를 들었으면서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그녀 인생에서 처음 보는 서양인의 얼굴인데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게다가 그녀가 본 것은 서양의 중년남인데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니, 그녀가 까무러치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다행이었다.

“할머니, 그분은 라볼타 사장님 모습을 한 여신님이잖아요! 하하하!”

“여자 신령님의 이상한 모습을 보고 할매가 깜짝 놀랐어. 허허허!”

그녀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웃으며 그녀가 시력을 회복한 것을 한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