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17 화

솔로우스 – 17

“텔리님, 확실하게 알려줘요. 그러니까 이 옴니테바를 상처 안에다 넣으라는 거냐고요? 소독도 하지 않은 물건을요? 방금 전 땅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고요! 텔리님? 텔리님?”

“끄으으으.....”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텔리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그는 숨넘어가는 소리만 낼뿐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소독도 안 한 물건을 상처에 직접 대라고 하는 거 맞아? 에라이, 모르겠다.”

미스터 황은 손에 쥐고 있던 신용카드만한 필름 조각을 텔리 가슴에 벌어져 있는 상처에 쑤셔 넣었다.

“난 정말 책임없습니다. 나중에 나더러 뭐라고 욕하지 마세요. 전 그저 제 귀에 들리는 대로 알아듣고 한 것뿐이니까요!”

“끄어어.....!”

텔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스터 황은 그 모습을 보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속으로 후회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래도 그 동안 정이 많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내 손으로 시신을 거두게 생겼네. 아이고.... 어쩌지? 텔리님이 죽으면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지금 일을 후회하고 살게 될 것 같은데. 그러게, 왜 나더러 이상한 걸 하라고 시켜서...’

데디쿠스도 텔리가 걱정이 되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 미스터 황에게 물었다.

“이봐, 사제. 지금 뭔 짓을 한 거야? 왜 옴니테바를 신의 몸 속에 넣은 건데? 너 옴니테바에 대해 뭘 좀 알고 사용하는 거 맞아? 옴니테바는 여러 정령석의 힘을 골고루 가진.....”

“알아. 그 정도는 나도 안다구. 그리고 당신이야 말로 모르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마. 방금 내가 한 일은 절대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한 게 아니야. 텔리님이 나더러 그렇게 하라고 직접 시키신 거라고. 난 아무런 책임도 없어.”

“아무런 책임이 없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넌 명색이 이분의 사제잖아. 그런데 함부로 신의 몸에 옴니테바를 넣어버리다니!”

“나도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한 일인 건 맞는데, 텔리님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한 것뿐이야. 아, 잠깐만!”

텔리는 갑자기 몸을 들썩거렸다. 그걸 보고 데디쿠스가 긴장해서 미스터 황을 닦달했다.

“이봐, 사제. 당신 일을 뭘 그렇게 해? 내 눈엔 당신의 신이 딱 돌아가시기 일보직전 같은데? 뭘 좀 어떻게 해봐.”

“아니, 신이라면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될 일이지. 인간이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어디 좀 보자.”

말은 그렇게 해도 미스터 황은 텔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다시 텔리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고 몸 상태를 알아보았다. 놀라운 속도로 상처의 치료와 재생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아앗! 차도가 있어! 텔리님의 상태가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어. 몸 안에 있는 옴니테바 때문에 그런 건가?”

“아, 그래? 그거 정말 잘 됐군! 혹시 몸에 옴니테바를 넣은 것이 효과를 보고 있는 걸까?”

데디쿠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미스터 황이 물끄러니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넌 뭐가 좋아서 그렇게 신난 거냐?”

“그거야 뭐 우린 다 같은 편이니까.... 음음.”

데디쿠스는 말을 더듬었다.

“야, 넌 불새군이잖아. 텔리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고 너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신인데 너가 왜 신난 거냐고?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넌 언제 날 만났다고 함부로 아는 척을 하고 난리야? 너 인마, 나 알아? 짜식이 처음 만난 나한테 막 말도 쉽게 하고 말이야. 나이도 어린 놈이. 이걸 그냥 콱! 엉!”

“어어... 난 그냥 너가 건수 친구인줄만 알고... 그러다 보니 말도 좀 편하게..... 음음”

“하... 이 자식 웃긴 놈이네. 야, 인마. 건수는 나보다도 한참 어리고 내가 돌보는 앤데. 너가 뭘 보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질이야! 엉?”

나이야 이미 몇 백년을 산 데디쿠스가 미스터 황보다 훨씬 많겠지. 하지만 미스터 황은 지금까지 그와 함께 잘 대화하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치며 자신을 꾸짖기 시작하자 데디쿠스는 당황했다. 그 와중에 텔리는 눈을 뜨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둘에게 말했다.

“야..... 쾅식이....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텔리가 입을 열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것을 보고 미스터 황이 기뻐하며 물었다.

“텔리님, 이제 좀 정신이 드세요? 다시 살아나신 거에요?”

“멍청아. 나 같은 신은 죽지 않아.... 우린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거 몰라? 그나저나 지금 내 몸의 상태가 어떠냐?”

텔리의 이마에 댄 미스터 황의 손이 다시 밝게 빛났다.

“아직 상태는 좋지 않아요. 하지만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요. 좀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시 움직이실 수 있을 거에요.”

“하아....”

텔리는 짧게 한숨 쉬었다.

“제기랄. 내가 참 좋아한 육체였는데 몸에 큰 흠집을 남겼군. 진짜 아깝게 되었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그럼 안 되겠다. 너희 둘, 어서 내 몸을 좀 일으켜라.”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될 텐데요.”

“여러 말 하게 하지 말고 어서 내 팔을 잡아당겨서 내 몸을 좀 일으켜.”

텔리의 요청에 따라 미스터 황과 데디쿠스는 그의 팔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심하게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쿨럭. 쿨럭. 내가 어딜 잠깐 있다가 돌아올 테니.... 너흰 좀 물러서 있어.”

“아니, 어디를 가시려고요? 아직 부상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요?”

“시끄러워. 아무튼 여기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서 있어. 쿨럭.”

그렇게 말하고 텔리는 자기 등 뒤에 있는 그림자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그 위에 다시 누웠다. 그러자 그는 물에 잠수하듯이 그림자 속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갔다. 데디쿠스는 아까 텔리가 검은 늑대들을 상대할 때처럼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놀랍군. 그런 엄청난 부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것도 그렇지만 그림자를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니!”

미스터 황은 얼굴 한 쪽을 찡그리면서 대꾸했다.

“뭐, 나도 처음에 봤을 땐 신기했는데 그것도 몇 번 보다보니까 이젠 별 감흥이 없네. 그런데 저런 몸 상태로 어딜 가신다는 거야?”

미스터 황의 궁금증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었다.

* * *

텔리가 사라진 후 몇 분 동안 미스터 황과 데디쿠스는 침묵을 지킨 채 부지런히 사방을 살펴보며 혹시라도 검은 늑대들이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텔리님은 어디로 가신다는 거야? 그리고 알렉시스는 어디 있는 거지? 설마 저기 저쪽에서 늑대들과 싸우고 있나? 왜 다들 나만 남겨두고 어디로 가버린 거야?”

미스터 황이 툴툴거리고 있는데 데디쿠스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어, 사제. 저거 좀 봐! 뭐가 땅에서 나오고 있는데?”

“응? 뭐가?”

미스터 황이 땅을 보자 아무도 없는데 검은 그림자가 생기더니 그 속에서부터 어떤 물체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물체가 점점 모습을 드러낼수록 미스터 황과 데디쿠스의 눈과 입이 벌어졌다.

“뭐.... 뭐야? 저건?”

“저건... 설마...!”

둘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높이 들고 위를 쳐다보았다. 거대한 물체가 둘의 시야에 들어왔다. 미스터 황은 위를 한 번 쳐다보고 지금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데디쿠스를 보았다.

“야, 불새군. 도대체 저게 뭐야?”

“사제, 넌 지금 나와 함께 보면서도 모르겠어? 거인이잖아.”

“거인....? 설마 그림자에서 나온 저게 텔리님이라는 거야?”

“세상에......”

둘은 입을 벌리고 계속 위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엔 땅 위로 4 m는 족히 넘을 듯 한 큰 키의 거인의 얼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