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54 화
솔로우스 – 54
그 시각, 텔리와 일행은 검은 방의 입구로 가는 길이었다. 그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검은 늑대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늑대들은 솔로우스와 불새군에게 패해 도망가는 것이었다. 텔리와 일행은 늑대들을 보고 당장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늑대들은 그들을 그냥 지나쳐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텔리가 늑대들을 보고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뭐야, 저 녀석들? 이젠 나를 봐도 그냥 지나치기로 한 거야?”
미스터 황이 웃으며 대꾸했다.
“검은 늑대들에게 무시당하신 건가요? 하하.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데 굳이 싸우실 필요가 있겠어요?”
“내가 무시당했다니? 아니지. 내가 너무 저것들을 많이 죽여서 날 보고 무서워서 도망간 것 같은데?”
“하하하. 텔리님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라면 오히려 반대로 도망가야죠. 왜 그냥 지나쳐버립니까?”
생각해보니 미스터 황의 말이 맞다. 텔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음..... 글쎄. 좀 별난 놈들이군. 저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텔리는 자신이 늑대들이 겁에 질려 도망쳐 나온 곳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와 일행 중 아무도 그것이 솔로우스인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알렉시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폭발 소리도 그렇고, 몸으로 느꼈던 충격파도 그렇고 영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어서 가자!”
텔리와 일행이 막 다시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텔리! 잠깐만!”
누군가 뒤에서 텔리를 부르는 것이었다. 텔리가 뒤를 돌아보자 몇 m 떨어진 곳에 신기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녀 등 뒤에는 둥그렇게 무지갯빛을 내며 빛나는 아치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멧돼지 산신령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처럼 보였다. 미스터 황이 그녀를 보고 반색하며 반겼다.
“아, 할머니셨군요. 이제 몸을 움직이실 수 있을 만큼 회복되셨군요. 다행입니다.”
텔리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할머니를 보면서 말했다.
“아냐, 저건 그 늙은 여자가 아니야. 저건 여신 이디레이아다.”
“네? 할머니가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그 여신님이 할머니의 몸 속에 들어가신 거군요.”
할머니의 몸에 들어간 이디레이아가 입을 열었다.
“텔리의 말이 맞아요. 난 할머니가 아니에요. 이디레이아입니다. 그리고 네, 할머니는 무사해요. 광식씨의 옴니테바를 이용한 응급처치는 아주 완벽했어요. 덕분에 할머니는 제때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알리쉬크바를 사용하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용법을 빨리 배웠군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계속 기술을 습득해보세요.”
“아... 예. 예. 예.”
미스터 황은 여신의 칭찬을 받자 겸연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속으로는 자신이 할머니를 살렸다는 뿌듯함과 옴니테바의 회복기능을 사용하는 기술이 늘었다는 것에 자부심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는 텔리를 슬쩍 쳐다보며 생각했다.
“원래 신이라면 저렇게 온화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었어? 그에 반해 이 양반은..... 쯧쯧쯧. 말이 좋아 신이지, 뭐 사실 그냥 싸이코지.”
옆에 서 있던 알렉시스가 조심스럽게 텔리에게 다가와 그의 귀에 귓속말했다.
“텔리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저흰 검은 방의 입구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어서 그곳으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텔리는 여전히 시선을 이디레이아에게 집중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는 여신에게 물었다.
“이디레이아, 넌 도대체 왜 또 나타난 거야? 지금 우린 좀 바빠. 그러니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이디레이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네, 나도 알아요. 지금 검은 방의 입구로 가는 길이었죠? 그런데 그 길로 가면 검은 늑대들도 달려 나오고 있죠? 가뜩이나 이렇게 어두운 데 또 더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가야 하고요. 날 따라와요, 텔리.”
“아, 그래? 그것 참 잘되었군. 우릴 위해 가는 길까지 준비해 주고 말이야...... 라고 할 줄 알았지? 이 요망한 년! 내가 속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너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고 그러는 거야?”
텔리는 순순히 발걸음을 옮기려는 척을 하다가 딱 멈추고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디레이아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그러면 계속 그 길로 가던가요. 그럼 아마 오래지 않아 다시 일어난 베토케로우스를 만나게 될 거에요.”
“무슨 헛소리야! 베토케로우스는 내가 아까 해치웠는데!”
“아니요. 그는 살아 돌아올 거예요,”
“뭐? 내가 아까 분명히 완전히 생명줄을 끊었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그리고 이디레이아, 네가 살생에 대해서 뭘 안다고 아는 척을 하고 지랄이야? 너가 나보다 생명을 더 많이 죽여 봤어? 베토케로우스는 완전히 죽었어. 알겠어? 엉?”
이디레이아는 두 어깨를 들어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계속 가던 길을 가요. 그리고 그 신수를 다시 만나서 또 일전을 벌이라고요. 난 다만 내가 본 당신의 운명을 알려준 것뿐이니까요. 호호.”
“운.... 명....?”
운명이란 단어를 듣자 텔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음. 알았어. 그럼 널 따라가 보도록 하지. 어서 안내해.”
“후후후.”
텔리가 순순히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하자 이디레이아는 앞장섰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텔리는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빴는지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디레이아와 텔리, 그리고 그의 일행이 무지개 빛이 나는 아치 앞에 섰다. 텔리는 빛나는 아치를 손으로 만져보면서 말했다.
“넌 아까 멧돼지 신수의 문을 열었던 거였군.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그런데 왜 그의 접힌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 거지?”
이디레이아는 이미 한 발짝 무지개 아치 안으로 발을 들이면서 말했다.
“자, 들어오세요. 어서요.”
텔리와 일행은 그녀를 따라 무지개 아치 안으로 들어갔다.
“앗!”
그리고 그 3 명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사방이 온통 깜깜해지더니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멧돼지 산신령의 공간으로 가는 통로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면서 밝았는데, 그들이 발을 디딘 공간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바로 앞에 있던 이디레이아가 보이지 않게 되자 모두 동작을 멈췄다. 아니, 사실은 너무 어두워서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텔리의 이름을 부르며 그부터 찾았다.
“텔리님! 텔리님!”
“걱정마라. 난 여기 있다.”
갑작스러운 일에 허둥대는 그의 사제와 전사와는 달리 텔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혹시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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