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64 화

만월의 밤 – 64

텔리는 다시 힘을 내서 방어막에 휩싸인 채로 베토케로우스쪽으로 조금씩 전진했다. 검은 늑대들이 많이 달라붙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적당한 순간에 한 번씩 방어막을 내려서 검은 연기로 늑대들을 질식시키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전법을 경험한 검은 늑대들은 철저하게 그의 정면에 모여서 그를 저지했다. 베토케로우스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늑대들을 지휘하느라 그의 주특기인 천리안을 발동시킬 여유가 없었다.

“크크크···. 미련하구나, 텔리. 아까와 똑같은 방법을 쓰다니 말이다. 날 한 번 놀라게 한 거로 만족하지 못하나 본데, 이번엔 나도 널 놀라게 해주지.”

베토케로우스의 붉은 눈이 번쩍였다. 그의 이마에서 흰빛이 뿜어나왔다. 그러자, 텔리의 정면에서 그를 막고 있었던 늑대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늑대들의 저지선이 너무 쉽게 뚫려버리자 오히려 텔리는 당황했다.

‘이거 뭐야. 왜 갑자기 이것들이 뒤로 물러서는 거지? 혹시 내 환영이 뒤에서 공격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나?’

베토케로우스가 한 번 크게 ‘컹’하고 짖자, 늑대들은 몸을 낮추면서 일제히 달려들 준비를 했다. 베토케로우스가 다시 한번 짖자, 늑대 중 몇 마리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텔리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 위로 향했다.

‘응? 지금까지 해오던 공격과 별로 차이가 없는데?’

텔리는 방어막의 강도를 올리며 생각했다. 그러자 정면에 있던 다른 늑대들이 몹시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방어막의 하부로 돌진하는 것이었다.

‘퍽! 퍼억!’

워낙 강화해 놓은 방어막이라 딱딱해져서 그 밀도와 강도는 거의 단단한 벽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부딪쳐버리니 머리가 깨지며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텔리는 늑대들의 사체들을 밟고 올라서며 말했다.

“응? 이거 뭐 하자는 거야? 이것들이 전부 광견병이라도 걸린 건가?”

텔리가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늑대들이 마구 몰려와서 똑같이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또 다른 무리가 달려왔다.

“윽! 그만하라고? 뭐야? 베토케로우스 넌 뭘 꾸미려는 거야? 늑대들의 사체로 방어선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거야 뭐야?”

또 다른 무리의 늑대를 텔리에게 보내며 베토케로우스는 이빨을 드러내며 하품을 하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의 목에서 하얀빛이 서서히 빛났다.

“크엉!”

그러더니 그는 호랑이도 아니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음압이 걸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가까이 있는 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지며 쓰러졌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그의 음파는 주위로 퍼져나가면서 텔리의 방어막에 붙어 있던 늑대들의 몸을 산산조각 내며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늑대들 중 몸에 옴니테바를 가지고 있었던 늑대들은 마치 몸 안에 소형 폭탄이 들어있었던 것처럼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아마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옴니테바가 그 음파에 반응하면서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폭발의 순간에 텔리는 그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옴니테바를 장착한 늑대들이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텔리는 그대로 뒤로 쓰러져버렸다. 다행히 그를 둘러싼 방어막 덕분에 몸을 다치진 않았지만, 그가 쓰러진 틈을 타 더 많은 늑대들이 그의 방어막 위로 올라왔다.

“이런. 이놈들도 조금 전 놈들처럼 폭탄처럼 터져버린다면 내 메이크바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는걸!”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가 한 말은 씨가 되어 그대로 일어났다. 잠시 후, 베토케로우스가 그들을 향해 그 사자후 비슷한 것을 또 한 번 내질렀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앙!”

그 음파가 닿은 늑대들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터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옴니테바를 가지고 있던 놈들은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를 온통 연기와 피보라로 덮어버렸다.

‘콰앙! 쾅! 쾅!’

그 와중에 늑대들 밑에 깔려 있던 텔리가 무사할 리 없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방어막을 올리고 있었지만, 늑대들의 자살공격은 그로부터 너무 거리가 가깝고 연속적인 폭발이었다. 그의 메이크바는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공격을 받아 기능이 정지해버렸다. 방어막의 색이 점점 옅어지더니 노란색으로 변했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으으윽!”

텔리는 주변에 늘어진 늑대들의 조각들 사체들 가운데서 신음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지만 큰 충격을 받았는지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다. 베토케로우스가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맹렬히 달려와서 텔리를 다시 뒤로 쓰러뜨리더니 상체를 두 앞발로 누르며 그르렁거렸다.

“크르르... 살육의 신. 오늘에야 네놈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구나! 네놈이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생명의 정수까지 철저하게 파괴해주마!”

“으으윽!”

검은 괴수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텔리의 머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좀 더 즐기며 네 놈을 조금씩 뜯어 먹고 싶지만, 오늘 밤 난 검은 방의 주인 자리도 노리고 있어서 말이지. 네놈의 고통에 찬 비명을 오래 들을 수 없다는 게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군.”

괴수는 입을 쩍 벌리더니 날카로운 송곳니와 어금니를 드러냈다. 그가 막 텔리의 머리통을 노리며 고개를 숙일 때였다.

“잠깐!”

어디에선가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베토케로우스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쓰러져있던 텔리의 어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점점 덩어리로 변하고 모양이 잡혔다. 키쥬아의 환영이 나온 것이었다.

“베토케로우스! 잠시만 기다려요!”

검은 괴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당신은 키쥬아!”

“아뇨. 전 환영입니다. 전에 엘리시움에서 당신이 비밀리에 검은 방의 문을 열어주었던...”

“아, 그렇군. 그럼 키쥬아의 환영인가? 그런데 당신이 왜 이놈 몸 안에서 나오는 겁니까? 내가 당신에게 검은 방의 문을 억지로 열어줬던 때가 언젠데 아직 여기에 있습니까? 설마 그때부터 계속 이 세계에서 머무르고 있었습니까?”

“예. 일이 다 끝나고 다시 당신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일이 꼬여서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놀랍군요. 환영인 당신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생존해 있을 수 있다니 말입니다.”

“예, 전 다른 신들의 환영처럼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키쥬아 본인이 제게 자신과 거의 비슷한 능력과 권한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니 본체는 제 귀환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다행히 오늘 밤 베토케로우스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군요. 당신이 다시 검은 방의 주인이 된다면 제가 아주 수월하게 엘리시움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제가 이 한심한 놈의 몸에 붙어 있는 신세가 되어버려서요. 그러니 당신이 텔리, 이놈을 죽여버리시면 저도 함께 죽게 되는 처지입니다. 제가 이놈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나오려고 하는데 혹시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르르르······! 기다려달라니?”

그 말을 듣고 베토케로우스는 화가 났는지 그르렁거렸다.

“당신이 아무리 나와 협력하는 여신의 환영이어도 그렇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나를 방해하면 되겠소? 지금 난 그런 여유는 없습니다. 당장 내 숙적을 죽여 없앨 겁니다. 혹시라도 어떻게든 다시 당신의 본체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이 일은 그녀에게 직접 따지시오. 크앙!”

베토케로우스가 다시 입을 쩍 벌리며 텔리의 머리를 뜯어먹으려던 때였다. 키쥬아의 환영은 비명을 질렀다.

“아악!”

베토케로우스가 깜짝 놀라 환영의 얼굴을 보니, 그녀가 입으로는 소리를 지르는데 막상 두 눈은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뭔가 수상함을 느낀 베토케로우스는 그녀의 시선이 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공중에서 날아와 그를 공격하는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것은 그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또 다른 텔리, 아니 그의 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