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1 화

만월의 밤 – 41

텔리와 그 일행이 산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릴리카와 불새군은 건수를 앞세워 숲속에서 검은 방의 문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산세가 험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100 명이 넘는 대인원이고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처음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부터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눈길을 끌어 누군가의 신고로 공권력이 찾아오게 된다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전체 인원을 조별로 나누어 조금씩 차례대로 이동한 후 인적이 드문 산중에서 다시 결집했다. 그 덕에 예상보다 훨씬 더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을 맨 앞에서 이끄는 건수가 입구까지 가는 길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그와 불새군은 같은 곳을 여러 번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전처럼 케르케로우스가 그에게 길을 가르쳐 줬다면 입구까지 찾아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만, 이번엔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에뮤니우스가 릴리카에게 다가가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릴리카님, 하늘을 보십시오. 이미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이동하기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뭐? 해가 져? 우리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릴리카 곁에 있던 그녀의 부관 이사우라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겨우 오후 2 시입니다. 아무래도 산속이라 해가 빨리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릴리카님, 금방 어두워질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태양은 이미 벌써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릴리카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제길! 저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놈!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혹시 저놈, 우릴 일부러 산속에서 헤매게 만들고 있는 거 아니야?”

에뮤니우스가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녀석은 정말 몰라서 길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아마 전에 검은 방의 입구로 찾아갔을 때는 케르케로우스님께서 어떤 방법이든 사용하셔서 저놈을 거기로 인도하셨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신수의 도움이 없기 때문에 헤매는 겁니다.”

“그래도 한 번 갔던 곳인데 이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헤맨다고?”

“제가 얼마간 지켜봤는데 상당히 지능이 낮은 녀석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 천치입니다. 뭐, 어쩌면 케르케로우스님의 취향에 딱 맞는 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킥.”

그 말을 들은 이사우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릴리카도 코웃음을 치며 에뮤니우스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그 늑대의 대사제였던 네 놈은 저놈보다 더 머저리라는 얘기 아니냐?”

“크크크. 전 아니지요. 전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로 남기에는 너무 명석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그분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릴리카와 이사우라는 일제히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불충과 배신의 아이콘 에뮤니우스의 역겨운 헛소리에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릴리카는 검은 방을 찾아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에이씨. 그럼 저 멍청한 놈의 희미한 기억에만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란 말이야? 에뮤니우스, 네가 그랬잖아? 보름달이 뜨는 오늘 밤만 검은 방의 문이 열려서 케르케로우스를 공격할 수 있다고. 내일은 안된다면서. 그런데 검은 방의 입구까지 가지도 못하고 있다니!”

“글쎄요.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반드시 꼭 저 멍청한 사제 놈만 의지하지 않아도 될지 모릅니다. 크크크.”

“그게 무슨 소리야?”

에뮤니우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 릴리카의 모습을 보고 이사우라는 걱정이 되었다.

“릴리카님. 이 자의 말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자는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 사기꾼입니다.”

“아니아니. 이사우라.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에뮤니우스, 어서 얘기를 계속해.”

에뮤니우스는 자신을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는 이사우라를 쓱 한 번 쳐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릴리카님, 혹시 아까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누군가 따라오면서 이쪽을 보고 있다든지 말입니다.”

“아니. 전혀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왜? 넌 그런 느낌을 받았어?”

에뮤니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저도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미친놈! 지금 내게 농담을 하는 거야!”

릴리카는 황당했다. 이사우라가 재빨리 대화에 껴들며 에뮤니우스를 꾸짖었다.

“뭐야? 지금 시간도 없는데 네놈이 릴리카님을 우롱하는 거냐! 네놈도 느끼지 못하면서 무슨 얼어 죽을 인기척이냐? 그저 농담이었다고 말한다면 네 놈의 혀를 뽑아버릴 테다!”

“이사우라. 넌 지금 내가 농담하는 거로 보이나? 한심하군. 릴리카님, 이번에 베토케로우스님이 보내신 늑대들은 실력이 상당히 좋은 녀석들인 것 같습니다. 저도 놈들의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가 없군요.”

“그래서 네놈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그러니까 우릴 감시하는 늑대가 숲속 어디엔가 있다는 말이야?”

“예. 반드시 있습니다. 그들이 베토케로우스님의 눈과 귀가 되어 이곳의 상황을 그대로 전하고 있을 겁니다. 전 확신합니다.”

그 말을 들은 릴리카와 이사우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엔 적막한 숲속의 나무만 보일 뿐, 늑대나 그 비슷한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에뮤니우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베토케로우스님과 불새군의 목표는 한 가지. 동일한 것입니다. 바로 케르케로우스님의 죽음이지요. 지금 베토케로우스님과 손을 잡으시면 확실히 케르케로우스님을 처치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케르케로우스님의 정수를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고 베토케로우스님은 다시 검은 방의 주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신다면 그분과 함께 싸운 여러분들에게 엘리시움으로 가는 길을 기꺼이 열어주실 것입니다.”

“아아!”

릴리카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이사우라도 그 말을 듣고 잔뜩 긴장해서인지 입안이 다 말라버렸다.

“에뮤니우스.... 하아아.... 그것....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케르케로우스를 제거한 후 저쪽 너머에서 누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걸 기다릴 것도 없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에뮤니우스는 다시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크. 그렇습니다. 베토케로우스님과 한 편이 되신다는 것은, 그 어떤 천군만마보다 더 확실한 최고의 아군을 얻는 것입니다. 제 말씀대로만 하시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