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61 화

솔로우스 – 61

그들이 출발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문이 있었지만, 텔리는 알렉시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여유를 부리며 잠깐 걷기도 하고 앉아 쉬기도 했다. 미스터 황은 아까 알렉시스가 한 입으로 두 말 한 것을 따지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야, 알렉시스. 너 나한테는 이디레이아 여신님의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인간인 내가 왜 신경 쓰냐고 하더니, 넌 그걸 이용해서 텔리님을 설득했잖아.”

그는 알렉시스가 조금이라도 변명하기 시작하면 곧 바로 쏘아붙이려고 단단히 마음에 준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정색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뭐라고 변명할 줄 알았던 그녀의 입에선 의외로 간단한 한 마디만 흘러나왔다.

“입 닥쳐.”

“엌.”

미스터 황은 기가 막혀서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 비슷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너... 너... 무슨 싸가지가 그 따위냐?”

“.......”

알렉시스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불타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미스터 황은 더 이상 그녀에게 따지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면서 물러나야 했다.

“어휴. 이건 뭐 점잖고 세련된 대화를 기대하긴 어렵겠구만. 무슨 여자가 저러냐?”

알렉시스의 위협 앞에 용기가 사라진 미스터 황은 혀를 내두르며 등을 돌렸다. 알렉시스는 그를 보며 고개를 짧게 흔들더니 욕을 한 마디 내뱉었다.

“지금 그런 걸 따지려고 들다니. 한심한 새끼. 쯧.”

* * *

명예욕에 목마른 악귀 같은 모습의 사신교 신도들이 다가오자, 에뮤니우스는 솔로우스의 목을 감싸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들은 에뮤니우스를 타일렀다. 혹시라도 그가 솔로우스에게 허튼 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바이베노파시스에게 솔로우스를 무사히 데려갈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이봐, 할아범. 좋게 말할 때 인질로 잡고 있는 그 노인을 우리에게 넘겨.”

에뮤니우스는 그들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라. 내가 이 솔로우스를 너희에게 넘긴다고 해도 너희가 날 그냥 놔두고 간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왜 그러겠나?”

4 명의 사신교 신도들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킥킥 거리며 웃었다. 그들 중에 덩치 좋은 제임스가 에뮤니우스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잘 알고 있구나. 우린 이미 모두 똑같이 공을 세웠기 때문에 널 죽일 필요는 없지만, 아마 너가 순순히 그 노인을 우리에게 넘겨줘도 여전히 널 죽일 거야. 그게 바로 죽음의 신을 모시는 우리의 숙명이겠지.”

옆에 서있던 마른 체격의 로버트란 녀석이 제임스의 말을 이어받았다.

“난 그냥 이 늙은 녀석이 못생겨서 죽일 거야. 저 이상하게 생긴 입을 좀 보라지. 딱 봐도 죽여 버리고 싶게 생기지 않았어? 흐흐흐.”

에뮤니우스는 그들이 자신에게 엘리시움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희들, 그러고 보니 내게 고향말로 말하고 있구나. 발음이 어눌한 것을 보니, 엘리시움에서 온 것은 아닐테고.... 너희 전부 지구인이구나.”

제임스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흐하하하. 그래! 우린 지구인이다. 그리고 죽음의 신, 바이베노파시스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은 후 곧 바로 이 성스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네게 팁을 준다면 너가 무슨 방법을 쓰던 우리를 죽일 수 없을 거야. 우리 넷 다 모두 불사신이 되었거든. 그런데 네가 이렇게 우리와 말을 섞으며 시간을 버릴 여유가 있을까? 왜나면 우리 뒤를 따라오던 다른 동료들도 모두 우리처럼 불사신의 몸을 가지고 있거든. 칼도 총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구. 시간이 흐를수록 네게 상황은 불리해져 간다 이거야.”

“불사신? 아... 그래. 너희도 신으로부터 뭔가 능력을 받았다 이거군.”

그 때, 에뮤니우스의 독무를 마시고 쓰러져 있던 불새군 병사 중 하나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는 누운 채로 주위에 버려진 검을 손에 쥐더니 로버트의 허벅지를 뒤에서부터 찔렀다. 칼은 그의 허벅지를 관통하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으윽!”

“이 자식들! 네놈들은 또 뭐야?”

병사는 재빨리 일어나면서 로버트의 허벅지에서 칼을 뽑더니 이번엔 등 뒤로부터 그의 몸통을 찔렀다.

“크윽!”

다른 3 명의 신도들은 고개를 돌려 병사가 자기들 동료, 로버트에게 하는 짓을 그냥 보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제임스는 고통 받는 로버트를 보고 실실 웃어대기까지 했다.

“이봐, 로버트. 좀 아파?”

“쿨럭! 이 미친놈아! 불사신이면 아픔도 못 느끼는 줄 아냐?”

급소를 두 군데나 찔리고 상당한 양의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동료와 태연히 농담을 주고받는 로버트를 보고 병사는 몹시 당황했다. 당장 쓰러져 죽어도 모자를 판에 웃고 있다니 말이다.

“아으어어.... 뭐... 뭐야? 왜 안... 안 죽어?”

“쿨럭. 너 아까 네 동료들이 우리에게 당하는 꼴을 못 본 게냐?”

제임스가 땅에 굴러다니는 불새군 병사의 방패를 하나 줍더니 로버트에게 전해줬다.

“로버트, 여기. 이걸로 그 얼빠진 놈을 해치우라고.”

“오, 땡큐. 그래 이걸로 죽이면 되겠다.”

로버트는 방패를 두 손에 쥐더니 그걸로 병사의 머리를 패기 시작했다. 병사는 팔로 방패를 막으며 로버트의 몸을 칼로 공격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칼에 찔릴 때만 움찔하더니 계속 병사의 머리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병사는 몇 번 방패에 머리를 얻어맞더니 끝내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로버트는 병사의 몸 위에 올라타서는 두 손으로 방패를 쥐고 거친 숨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아. 한, 두 번 칼로 날 찔러봐서 소용이 없었으면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잘못했다고 빌든지 해야 할 것 아니야? 아파 죽는 줄 알았잖아!”

그는 방패를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병사의 얼굴을 때렸다.

‘퍽! 퍽! 퍽! 퍽!’

나머지 신도들은 병사가 로버트에게 맞아죽는 모습을 보고 키득거렸다. 에뮤니우스와 솔로우스도 그 모습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았다. 솔로우스는 몸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라 손가락 까딱 할 수 없었는데, 에뮤니우스는 달랐다. 만약 그가 원했더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병사를 무자비하게 패죽이고 있는 로버트를 저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끄으으으윽....... 그.... 만....”

“뭘 그만해? 죽어야 끝나는 비즈니스야.”

로버트가 든 방패가 공중에서 아래로 ‘휘잉’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아래로 던져졌다.

‘퍽!’

그렇게 병사는 몇 번이고 방패를 맞아 얼굴이 뭉개지며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에뮤니우스는 병사의 마지막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보기 힘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보고 제임스가 피식거렸다.

“왜? 이제 우리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알겠지? 너도 저렇게 불쌍하게 죽기 싫으면 당장 팔로 감싸고 있는 그 노인을 내놔! 그럼 곱게 죽여줄 용의는 있어.”

에뮤니우스가 다시 시선을 뚱뚱한 제임스에게 돌리더니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흰 정말 인명경시의 끝을 보여주는 구나. 난 운명의 장난으로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했지만, 너희는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했어. 지금 네 동료가 벌인 짓을 보니 그걸 똑똑히 알겠다. 그것만으로도 너흴 죽이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 내겐 다행이겠으나..... 아무래도 내 순서는 조금 있다가 돌아 올 것 같군.”

“뭐야? 뭔 개소리를 그렇게 길게 해?”

“뒤를 봐라.”

에뮤니우스가 손가락으로 제임스의 뒤를 가리키자, 쓰러져있던 불새군 병사들이 하나 둘씩 손으로 머리를 잡으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