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10 화

예언자들 – 110

스라소니 산신령은 그르렁거렸다.

“이 녀석들이 내 구역의 깊숙한 곳까지 와서 설치고 있었다. 이젠 겁도 없이 낮에도 돌아다니는 모양이야.”

건수가 죽어 있는 늑대를 자세히 보니 머리의 절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소름끼치는 시체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으윽. 머리의 절반이 없군요.”

“그건 내가 이 녀석을 공격할 때, 목덜미를 노린다는 게 그만 머리를 날려버리게 되어서 그런 거야. 이놈은 이제껏 잡았던 다른 늑대 놈들보다 갑절을 재빠르더군. 같은 수준의 놈들이 많이 있다면 나 혼자서 이들을 막는 게 힘들 것 같구나.”

스라소니는 이빨을 갈며 말했다. 건수는 고개를 돌려 텔리를 쳐다 보았다.

“머리가 절반이 날아가서 아쉽군요. 텔리님, 혹시 이렇게 절반이 날아간 늑대의 기억도 읽으실 수 있나요?”

텔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하지. 그리고 그놈의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어도 소용없는 일이야. 대상이 이미 죽어버리면 난 기억을 읽을 수 없어.”

“이보게, 거기 서양 신령.”

스라소니가 ‘자연어’를 사용해서 텔리에게 말을 걸었다. 자연어는 신령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희한하게도 엘리시움에서 온 신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텔리 역시 전에 그것을 일부러 배운 적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였다.

“응? 뭐?”

“전에 들어보니 당신은 이 요물 같은 늑대들이 왜 이 지역을 오염시키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이 녀석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 놈을 언제 처리하러 갈 겐가?”

“누구? 베토케로우스? 아이, 걔는 안 돼. 특히 나 혼자만으로는 절대 안 돼. 걔가 그냥 늑대가 아니야. 당신이나 나 같이 별난 존재라고. 당신이 상대해왔던 이런 부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이야. 특별하고 강하고 또 미친놈이지. 그리고 내가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말해줄까? 네가 지금까지 죽여 왔던 그 늑대들은 베토케로우스의 부하이자 또 후손이야. 즉, 넌 베토케로우스의 자식들을 죽였던 거지.”

“후손? 자식?”

“그래. 이놈들은 서로 가족이라고. 베토케로우스가 자기의 가족을 죽인 링크스(lynx) 신수, 널 보면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선하다. 선해.”

“도대체 이놈들이 이 땅에서 원하는 게 뭔가? 그리고 왜 동쪽으로 자꾸 이동하고 있는 거지?”

텔리는 잠시 하늘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처음엔 단순히 베토케로우스가 자기 동생인 케르케로우스를 죽이고 자신이 검은 방의 주인이 되려고 여기에 왔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건 저쪽 세상에서도 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왜 우리가 있는 동쪽으로 더 가까이 이동해 왔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어. 사실 그놈들이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케르케로우스가 육체를 부활시키고 있어서 검은 방의 제어력을 많이 잃어버린 지금이 적기이긴 한데 말이야. 왜 안 가고 있는 거지? 흐음.”

텔리는 몇 개의 의문이 생겼지만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운명의 어머니, 그 여자에게 물어보는 수밖에는 없어. 적어도 뭘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운명의 실을 잡아당겨서 장난치고 있는 것 아냐?’

* * *

릴리카는 어느 다리 밑 공터에 차를 세우고 20 분 째 에뮤니우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마침내 손목의 수갑이 풀린 에뮤니우스는 그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로 세치 혀를 놀려 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릴리카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얘기의 심각한 내용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져만 갔다. 쉬지 않고 얘기하던 에뮤니우스가 목이 말라서 잠시 물을 마실 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에뮤니우스, 네 얘기는 베토케로우스가 부하 늑대들을 이끌고 이 세계로 넘어와서 동생인 케르케로우스를 죽이려고 하고 있단 말이잖아. 베토케로우스. 역사책에나 나오는 그 전설의 괴수.”

“그렇습니다. 케르케로우스님이 쓰러지시면 그 분이 검은 방의 주인이 될 것이니까요. 아니, 원래부터 그 분이 그곳의 주인이셨죠.”

“이런, 어이가 없군. 베토케로우스라니.”

릴리카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사우라에게 물었다.

“이사우라, 너도 지금 에뮤니우스가 하는 얘기 듣고 있었잖아. 베토케로우스라는데? 호호호.”

이사우라도 어이가 없었는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베토케로우스라면 오래 전에 신들의 연합으로 패퇴된 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때 신들이 그를 다시는 부활을 할 수 없도록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해서 이 세계로 넘어왔다니요. 예전에도 에뮤니우스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은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호호.”

에뮤니우스는 물을 다 마시고 다시 슬슬 시동을 걸었다.

“그런가요? 이젠 제 정신을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럼 오늘 발견하신 검은 늑대는 어떻게 보십니까? 베토케로우스님의 군대는 모조리 검은 늑대였다는 것도 잘 아시잖습니까?”

릴리카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에뮤니우스..... 미치더라도 좀 곱게 미쳐야지. 내가 어디 그것만 가지고 얘기하겠어. 방금 또 뭐라고 했어. 파괴신 바이베노파시스도 이 일에 관련이 있다면서? 뭐?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이 세계에 있다고?”

“예.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 기술로 예전에 죽은 알렉시스님의 애인을 살려내서 그녀를 포섭했죠. 그것이 알렉시스님이 불새군을 배신한 이유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바이베노파시스님이 다시 엘리시움으로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것입니다.”

“릴리카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사우라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자는 지금 황당무계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베토케로우스도 바이베노파시스도 모두 엘리시움에서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춘 신들입니다. 어떤 신도 그들만큼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들이 역사적 사건 이후 소멸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세계에 있다니요! 전설의 괴수, 파괴신 둘 중 하나만 존재하더라도 이 세계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렇게 조용하지 않습니까? 우리 세계처럼 그들을 막을 신들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이런 고요함이 유지된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에뮤니우스, 이 자가 지금도 우리를 속이는 것을 보면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아.... 이런. 이런.”

에뮤니우스는 짧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직접 두 눈으로 보시면 될 것 아닙니까?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와 함께 행동하고 있는 자들 중 텔리라고 있습니다.”

“텔리? 텔리라면 혹시 알렉시스의 부관이었던 자를 말하는 게냐?”

“네. 바로 그 자입니다. 그 자를 만나보시면 되겠군요. 왜냐면 그도 신이거든요. 바로 어제 그가 케르케로우스님의 사제가 절 죽이려고 찾아왔었습니다. 으드득!”

순간 에뮤니우스의 눈빛이 몹시 매서워졌다. 그의 표정 변화를 보고 릴리카가 순간 움찔했다.

‘저 눈빛, 이 자는 내가 알던 에뮤니우스가 아니군.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이 자를 이렇게 변화시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