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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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방.
한 점의 빛도 없는 공간.
태초부터 심연의 어두움만이 내려앉은 이 암흑의 공간에서 존재와 한 인간이 서로를 대면하고 앉아 있었다.
타오르는 호박색의 빛나는 눈을 가진 존재는 자신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말을 하게 된 이 인간의 용기에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이계의 아이야. 미안하구나. 너와의 인연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작은 분명 나의 실수였다. 그날 이후 너의 인생은 더 이상 예전 같을 수는 없었겠지.......”
존재의 낮고 침울한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저와의 인연을 끊어주십시오. 저는 처음부터 아무 것도 택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만약 제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전 이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이 존재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것은 또한 이 암흑의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빛나는 눈의 존재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가로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너를 위해 무엇을 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너의 운명은 이미 너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 같구나. 넌 이미 운명의 어머니의 인장을 받아버렸다. 그래. 어쩌면 그날 이후 나도 운명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구나.”
“제게 정말 다른 길을 보여주실 수는 없습니까? 전 도저히 당신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빛나는 눈의 존재는 고개를 들어 인간의 눈을 몹시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이젠 나의 힘으로도 안 된단다. 운명의 어머니께서 떠나신 이후, 그곳의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곧 여기도 거기도 혼돈과 무질서가 세상을 뒤덮을 것이야. 네가 가서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날 대신해다오. 이젠 내 운명도 너에게 달렸다.”
“제가 그걸 어떻.....게..............”
빛나는 눈의 존재가 말을 마치자마자 인간의 눈에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눈앞이 번쩍 하면서 그는 정신을 잃었다.
* * *
어느 여름의 깊고 어두운 밤, 새들도 모두 잠든 그 시간에, 인간은 푸른 초지 위에 홀로 누워있었다.
“헉. 헉. 헉. 허억.... 허억....!”
인간은 눈을 떴다. 오랫동안 숨을 참다가 터뜨리는 것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 여기는 어디?”
그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두 눈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풍경이 들어왔다.
저 너머 언덕 위 검은 숲까지 펼쳐져 있는 푸른 초지.
그 초지 위에 선 그의 머리 바로 위 밤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보름달.
숲 너머 골짜기 어디에선가 희미하지만 일렁이는 불빛이 보였다.
운이 좋다면 저곳에서 다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은 여전히 숨을 헐떡거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신화적 모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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