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47 화

솔로우스 – 47

바로 코 앞까지 달려온 검은 늑대 무리의 머리 바로 위에 불의 그물이 어느덧 내려와 있었다. 늑대들은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았지만 이미 피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활활 타는 불의 그물이 사뿐히 그들 위로 떨어졌다. 불의 그물이 닿자마자 늑대들의 몸은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불은 늑대들의 털과 피부를 순식간에 녹이며 새카만 숯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키야아아- 끄으으으-’

늑대들은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몸에 붙은 불을 꺼보려고 땅을 굴렀지만 어찌된 일인지 불은 잘 꺼지지 않았다. 보통 불과는 다른 불이었던 것이다. 그곳에 있던 불새군 병사의 배가 넘는 수의 늑대들은 순식간에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야말로 그물을 한 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 형국, 즉 일망타진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물 코 사이에 있어서 간신히 살아남은 늑대들도 꽤 있었지만 그들은 쉽게 반격에 나서지 못했다. 그들은 재빨리 뒤를 돌아 도망갔다. 그 후 불새군의 방어진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후 계속 주위를 맴돌았다. 맨 앞에 있어서 그물을 피할 수 있었던 늑대 몇 마리는 자신들을 방패로 밀쳐내고 있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병사들의 목과 팔을 물어뜯었지만, 바로 뒤에 있던 베도아를 비롯한 병사들이 재빨리 늑대들의 몸에 칼을 쑤셔 넣었다. 그 결과, 맨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늑대들도 손쉽게 제압되었다.

베도아는 데비아나에게 돌아가 상황을 전했다. 그녀의 얼굴은 땀과 흙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웃는 얼굴이었다.

“데비아나님, 늑대들을 모두 격퇴했습니다. 모두 대장님의 전략 덕분입니다.”

“아냐, 아직 남아있는 녀석들이 있다. 언제 또 녀석들이 돌아올지 모르니 경계를 풀면 안 돼.”

데비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러간 줄 알았던 몸놀림이 날랜 늑대 몇 마리가 병사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더니 곧장 그녀와 솔로우스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베도아가 장검을 들고 데비아나에게 말했다.

“제가 늑대들을 맡겠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베도아 역시 늑대들에게 달려가 그들을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늑대들은 순간 옆으로 몸을 날리며 그녀의 칼을 피하더니 다시 균형을 잡고 데비아나와 솔로우스에게 달려갔다.

“이... 이런! 낭패다! 이렇게 빠르다니!”

베도아는 다시 칼을 들고 그들의 뒤를 쫓았다.

“데비아나님!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데비아나는 힘을 집중시켜 몸에 불을 붙이려고 했지만 너무 긴장을 했는지 쉽게 몸의 체온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사제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어서 옆으로 비키십시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솔로우스의 이마가 하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늑대들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다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니, 목표는 솔로우스였던 것 같았다. 솔로우스는 손을 얼굴까지 올렸다가 늑대들을 향해 뻗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주변, 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관자놀이 부분에서 밝은 빛이 뿜어 나왔다. 그 빛은 고리의 형상이 되어 달려드는 늑대들의 몸을 칼로 두부를 썰듯이 매끈하게 잘라버렸다. 조각난 늑대들의 몸은 땅에 떨어져 불길에 휩싸였다. 데비아나는 고개를 숙여 솔로우스에게 감사의 인사와 사과를 동시에 했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부족해서 솔로우스님의 안전하게 모시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솔로우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고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는 방금 엄청난 힘을 방출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조금 호흡이 거칠어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데비아나, 자네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네. 자네는 저 많은 검은 늑대들을 일거에 격퇴했지 않은가. 오히려 자네에게 생명의 빚을 진 건 나라네. 그리고 어차피 방금 뛰어든 늑대들은 자네가 아니라 날 목표로 했던 거 같았어. 그러니 이상한 말은 하지 말게. 이제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달성한 것 같으니, 어서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게.”

“예, 알겠습니다. 엘리시움까지 안전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데비아나는 자신의 실수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덮어주는 솔로우스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대사제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처럼 어리고 부족한 나를 인정해주시고 또 실수까지도 덮어주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분을 꼭 엘리시움까지 무사히 모셔야겠어.’

데비아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며 솔로우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시선도 그가 쳐다보는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황금색 털을 가진 한 마리 작은 늑대가 눈에 들어왔다.

“황금색 털...... 빛나는 눈..... 그렇다면 저건 혹시?!”

솔로우스가 그녀의 말을 이어서 말했다.

“케르케로우스. 검은 방의 주인이시다.”

불새군 앞에 케르케로우스가 직접 나타나 서 있었던 것이다.

* * *

나무 위에 숨어 있던 에뮤니우스는 케르케로우스가 숲에서 나와 불새군 앞에 서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아니, 케르케로우스님이 왜 불새군에게 직접 모습을 나타내신 거지? 아니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어디 계셨던 거야? 난 이곳에 계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에뮤니우스는 위에서 아래를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빨리 케르케로우스가 숨어 있던 위치를 파악하는데 유리했지만 그가 근처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혹시 신수께서 내 목숨을 노리셨더라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면치 못했을 지도 몰라.’

하지만 일은 또 모르는 것이다. 처음부터 케르케로우스가 그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에뮤니우스는 마음이 조금 서운했다.

‘만약 케르케로우스님께서도 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셨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그분과 나 사이엔 어떤 유대도 없다는 뜻이겠지. 그런 거라면 정말로 날 포기하신 거야. 왠지 좀 씁쓸한데......’

엘리시움의 신과 신수들은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 즉 능력을 나누어 주거나 서로 교신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교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도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케르케로우스와 자기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쓴 웃음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전부터 지금까지 그가 케르케로우스에게 끼쳤던 해악을 생각하면, 그가 섭섭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에뮤니우스란 인간은 뭐든지 자기중심적 사고만 하는,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그때였다. 에뮤니우스가 숨어 있는 나무쪽으로 누군가 낙엽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더욱 몸을 낮추며 뒤쪽을 살폈다.

‘누군가가 접근해오고 있다!’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불새군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안력을 집중하여 어둠 속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아니! 저 사람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릴리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