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3 화

만월의 밤 – 3

강원도 아저씨의 집.

이디레이아가 건수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알려주고 떠난 후 미스터 황은 여러 번이나 건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텔리에게 건수를 찾으러 가자고 계속 재촉했다. 하지만 텔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텔리님, 건수가 도무지 제 전화를 받지 않아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럼 우리가 그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건수가 곤경에 빠진 상황이라는데 어서 찾으러 나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음. 음. 음.”

“아니, ‘음음음’이 뭐에요?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아이, 참!”

미스터 황은 창가에 앉아 마당을 향해 앉아서 집중력 연습을 하고 있는 알렉시스에게도 말했다.

“이봐, 알렉시스. 우리 동료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데 그렇게 계속 눈 감고서 집중력 연습이나 할 때야?”

미스터 황이 계속 시끄럽게 말을 시키니 알렉시스가 하는 힘을 집중하는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모시는 늑대 신수가 먼저 그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그는 텔리님이나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리고 검은 늑대들이 어디서 숨어 있다가 우리를 공격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자고 하다니. 난 네가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넌 전화를 몇 번 해봤다지만 그 때마다 케르케로우스의 사제가 바빠서 전화를 못 받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하! 뭐야, 다들 왜이래?!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예상보다 더 알렉시스의 차가운 반응에 미스터 황은 화를 냈다. 그러자 텔리가 침묵을 깨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알렉시스가 한 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아예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베토케로우스가 아직 밖에 있는데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잖아.”

“아까 그 여신님이 뭐라고 하고 떠났어요? 건수에게 일이 생겼다는데......”

“그러니까 가만히 좀 있자는 거야. 이디레이아가 뭐라고 그랬어? 3 일 후 보름달이 뜨는 밤에 검은 방의 입구에서 건수를 만나라고 했잖아. 그럼 그 때까지는 기다려야지.”

“그렇다고 그냥 이러고 있어요?”

“이디레이아가 일단 일이 어떻게 되는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녀의 예언은 정확하기로 유명해. 일부러 먼 데서 찾아와서 그녀의 예언자들에게서 듣고 가기도 하는데, 이번엔 어떠한 은유도 없이 그녀가 직접 말해준 거야. 괜히 섣불리 움직여서 그녀의 예언이 깨지게 할 수 없어. 특히 그녀의 말대로 엘리시움에서도 큰 일이 났다고 하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그러니 우린 3 일 후에 움직인다.”

미스터 황은 잠시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났는지 텔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3 일 후 검은 방의 입구에서 건수를 구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거기가 어디에요?”

텔리는 당황한 기색으로 천천히 답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케르케로우스만 그 장소를 알 테지.”

“예? 그게 뭐에요? 그럼 그 장소를 모르니 건수를 찾으러 갈 수도 없는 거잖아요? 어휴... 진짜!”

미스터 황은 별 뾰족한 수가 없자 짜증이 났는지 뒷목을 벅벅 긁으며 일어나서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 * *

그 무렵, 외딴 곳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 창고 안에서 건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한 덩치 좋은 사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도원광과 좐슨은 의자에 몸이 묶인 채 눈물을 흘리며 건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건수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소리치는 도원광 뒤에는 잔뜩 긴장한 사내가 그의 뒷통수를 한 대 갈기면서 소리쳤다.

“형님! 여기 좀 와보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이윽고 굳게 닫혀있던 창고의 문이 열리면서 양 형사와 조 회장, 그리고 몇 명이 부하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만히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건수와 쓰러진 채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조 회장의 부하였다. 조 회장이 쓰러진 부하를 손으로 가리키며 도원광 뒤에 서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야, 무슨 일이야. 종길이는 왜 저러고 쓰러진 거야? 설마 잡혀온 놈한테 맞은 거야?”

“그... 그게....”

겁에 질린 부하가 머뭇거리다가 바닥에 있는 부러진 각목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질문을 해도 저 자식이 대답을 안 하길래 종길이가 화가 나서 저 놈을 각목으로 몇 대 후려쳤거든요. 그런데 각목이 부러지면서 그게 얼굴을 때린 거예요.”

“뭐? 그러니까 지가 때리고 지가 거기에 맞아서 쓰러진 거라고? 이런 병신들!”

조 회장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다른 각목을 하나 줍더니 그걸로 겁에 질린 부하의 팔을 한 대 후려갈겼다.

“으윽!”

“이 자식들아! 병신 짓을 해서 사람을 쪽팔리게 해?”

조 회장은 곧바로 등을 돌려 무릎 꿇고 있는 건수의 등을 한 대 후려쳤다.

‘투악!’

그랬더니 이번에도 건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각목이 부러져 버리는 게 아닌가. 조 회장은 손에 들린 부러진 각목을 보면서 당황했다.

“뭐야? 이거 썩은 거 아니야?”

“형님, 각목은 멀쩡합니다. 저 자식이 이상한 거예요. 몸이 마치 무슨 철 덩어리 같더라고요.”

“뭐라고? 이 자식 좀 일으켜 봐.”

부하가 건수의 팔을 잡고 그를 일으키자 조 회장은 겉옷을 벗더니 주먹을 휘둘러 건수의 배를 가격했다.

‘퍽!’

이번에도 건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직접 펀치를 꽂았던 조 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으음....! 이 자식, 뭐... 뭐야?”

조 회장은 화가 났는지 있는 힘껏 건수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건수는 뒤로 넘어지기만 할 뿐, 별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어났다. 그러자 양 형사가 조 회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조 회장, 아직 젊은데 몸 관리를 좀 해야겠어. 주먹으로 먹고 사는 깡패가 힘을 못 쓰면 어쩌자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조 회장은 얼굴을 구기면서 양 형사를 쳐다봤다.

“뭐요? 깡패?”

“아니, 온 몸을 묶인 채로 각목으로 맞고 주먹, 발로 얻어터지는데 왜 이 녀석은 멀쩡하냔 말이지. 야, 잡혀온 놈. 너 무슨 운동했냐? 몸이 진짜 좋다. 응?”

건수는 양 형사를 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운동 안 하는데요.”

“어, 그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몸을 단련시켰대? 너 지리산 같은 데서 무슨 도사 밑에서 무술 같은 거 배우고 있었던 거 아니야?”

“......”

건수는 별로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는지 침묵을 지켰다. 양 형사는 다시 조 회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인정할 건 해야지. 이놈도 밖에 있는 저 외국애들처럼 보통 사람의 수준이 아닌가 봐. 차라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외국애들을 불러. 걔네가 쥐어박으면 아마 통할 거야.”

“아이 씨. 쪽팔리게. 외국애들은 되고 우린 안 되는 게 어딨어?”

“빨리 나가서 외국애들 불러와. 걔네는 패고 우리는 돈을 벌면 되는 거지. 뭐하러 우리 손을 더럽히냐고.”

조 회장은 신경질을 내면서 밖으로 나갔다. 양 형사는 다시건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너 도대체 릴리카, 그 무서운 여자랑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런 꼴을 당하냐? 아니, 넌 그렇다고 쳐. 죄 없는 네 친구들은? 너 쟤네가 얼마동안이나 그 여자한테 잡혀서 고생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자그마치 그 기간이 석 달이 넘어요. 너 때문에 맨날 쥐어터지고 협박당하고 그랬어. 그리고 친구한테 전화 왔는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받지 않았냐?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었는 줄도 몰랐지? 야아, 인마. 넌 진짜 나쁜 놈이야.”

건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몸이 묶인 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친구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자 미안한 마음에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니까, 다 불어. 그럼 모두가 편하잖아. 내가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릴리카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 너가 그 여자가 듣고 싶은 걸 얘기해주면 무슨 동물을 사냥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겨우 동물 같은 것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고생할게 뭐가 있냐? 그냥 그 기집애가 듣고 싶은 거 다 얘기해 주고 집에 가자. 응?”

“집.....! 아아.....”

건수는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양 형사는 그 모습을 보고 한 번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래. 집. 우리 모두 무사히 집에 가자고.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그리운 집 말이다. 그리고 이 무서운 기억은 싹 잊는 거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