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111 화

예언자들 – 111

릴리카는 두 손을 위로 올리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오, 그래. 이젠 알렉시스의 부관, 텔리도 신이 되었구나. 그 자는 좋겠네. 호호호.”

“비아냥거리실 일은 아닙니다. 이걸 좀 보십시오.”

에뮤니우스는 윗옷을 벗어서 상체를 드러냈다.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길게 내려가는 깊게 팬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이 상처가 보이시죠? 바로 텔리가 절 죽이려고 했던 증거입니다. 이것이 제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을 조금도 숨길 이유가 없는 이유입니다.”

“흐음. 그가 성공했었다면 내 일을 제대로 돕는 일이 될뻔 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호호. 나도 얼마 전까진 널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나도 신이 되는 것이냐?”

“그렇게 비꼬실 필요 없습니다. 곧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를 불러내어 체포하실 계획이 있었지요? 그럼 어서 그렇게 하십시오. 그를 체포하신 것이 텔리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도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그의 진면목을 보시게 될 테니 전 여기서 이만 말을 줄이렵니다.”

릴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차피 네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반드시 가려지게 될 것 같구나. 이사우라, 어서 늑대 사제의 친구가 말한 병원으로 이동해. 거기서 그 놈을 사로잡자.”

그 이후, 에뮤니우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닫은 채 정면만을 응시했다.

‘멍청한 것들. 날 비웃다니. 텔리가 어떤 신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너희가 몇 명의 신과 맞서야 하는지 알지 못하느냐. 나야 뒤편에 서 있다가 아무나 승리하는 쪽으로 붙으면 그만인 것이야.’

에뮤니우스는 어차피 모든 음모의 공통분모였던 터라 어느 편에 몸을 의탁하고 있어도 큰 차이가 없었다. 모두에게 이용당했지만 또한 동시에 모두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격이었다. 때로는 빵에 버터를 넓게 펴 바르는 것도 효과가 있구나.

* * *

강원도의 한 깊숙한 산 속. 그곳에 거대한 한 마리의 검은 늑대가 배를 땅에 엎드리고 쉬고 있었다. 그가 자리 잡은 곳 주위에는 온갖 산짐승들의 피 흘린 시체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는데 대부분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부스럭.’

수풀 뒤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자 거대한 검은 늑대는 고개를 들어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빛의 광채가 예사롭지 않다.

“거기 누구냐?”

낮지만 깊게 울리는 목소리. 수풀 뒤에서 그보다 훨씬 작은 몸집의 검은 늑대가 새끼 멧돼지를 아가리에 물고 와서는 거대한 검은 늑대 앞에 놓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컹....! 난 배가 고픈 것이 아니다. 먹이는 필요 없으니 네놈이 다시 가져가 먹어라.”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작은 몸집의 검은 늑대는 방금 땅에 놓은 새끼 멧돼지를 보고 고민하더니 거대한 늑대의 말대로 다시 물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또 다른 늑대가 아가리에 무언가 거무튀튀한 것을 문 채로 거대한 늑대 앞에 섰다. 그는 자신이 물고 온 것을 거대한 늑대 앞에 놓더니 몇 발짝 뒤로 물러선 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이냐? 카베쿠스. 난 이미 배가 부르다. 이곳의 오염된 먹이는 더 이상 필요 없으니 저리 치워라.”

“베토케로우스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에뮤니우스를 감시하던 제 부하 둘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주인님 앞에 바친 것은 그 늑대의 시신의 남은 부분입니다.”

거대한 검은 늑대, 아니, 베토케로우스의 눈이 더욱 붉게 빛을 냈다.

“그게 무슨 의미냐? 에뮤니우스를 감시하던 늑대 두 마리가 사라지다니?”

“그 두 녀석들은 제가 특히 아끼던 부하였사온데, 오늘 오전에 제게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른 늑대들을 그들이 있었던 마지막 장소 주변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거해 가지고 온 것이 바로 그 시신 조각입니다. 주변에 피냄새가 있었다고 합니다.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그르르르르....”

베토케로우스가 땅바닥에 놓인 검은 색의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머리구나. 하지만 온전하지 않다. 크르르르.....”

그는 먼저 주둥이를 덩어리 가까이 가져가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흐음.... 내키진 않지만 먹어봐야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베토케로우스는 아가리를 벌려서 검은 늑대의 머리 조각을 물었다. 그리고는 입에 넣고는 으적으적 씹어먹는 것이었다. 카베쿠스는 주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흥분했는지 고개를 위로 젖히며 ‘아우우우~’ 하고 울어댔다. 그런 행동은 마치 베토케로우스의 여흥을 돋우려는 듯 보였다.

베토케로우스가 긴 혀로 이빨 사이에 낀 피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아쉽구나. 늑대의 머리가 온전하지 않고 부분만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기억을 완전히 읽지 못했다. 하지만 네 말이 옳다. 그와 그의 동료는 습격을 당한 것 같다.”

“역시 그랬군요! 혹시 에뮤니우스가 그랬습니까?”

“크르르.... 잠깐 기다려.... 아직 기억을 읽고 있다..... 아니야.... 에뮤니우스가 아니다. 두 늑대는 에뮤니우스가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불새군 놈들. 불새 놈들이다. 그런데 그의 동료가 공격을 받았다.... 화살..... 날라왔다.... 그리고... 이 녀석이 뒤로 후퇴하는데..... 크르르르! 뭔가 바로 눈앞에서 번쩍거림이 있었다. 음... 그리고 기억이 잘려버렸구나. 시체의 나머지 부분은 어디 있느냐?”

“늑대들이 가져온 것은 그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사라졌습니다.”

“늑대 두 마리 중 하나는 불새군의 공격을 받아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방금 먹은 머리의 주인은.... 그곳에 또 다른 누가 있었다. 뒤에서 기다리다가 몸을 뒤로 돌렸던 바로 그 순간에 기습을 했다. 머리의 주인은 아마 그 놈에게 당했을 것이다.”

“아우우우~”

카베쿠스는 다시 한 번 허공에 긴 울음소리를 퍼트렸다.

“최근 얼마 동안 먹이를 구하러 간 늑대들 중 일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놈의 짓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곳의 짐승들보다도 훨씬 몸집이 크고 강한데 우리를 사냥할만한 짐승이 있단 말이냐? 심지어는 이곳의 영악한 인간들조차 우리를 위협할 수는 없을 텐데.”

“어쩌다 두, 세 마리씩 사라지는 수준입니다.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었습니다만 이젠 그 정체불명의 사냥꾼을 그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케르케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지금까지 목소리보다 더욱 낮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더 이상 이 오염된 곳의 일에 조금의 관심도 두고 싶지 않다. 그런 놈따위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한 입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 아니냐. 큰 피해를 주지도 못하는 정체불명의 방해꾼에게 신경을 쓰지 말고 늑대들을 몇 마리 보내서 에뮤니우스를 데려간 불새 군을 감시하도록 해. 지금 케르케로우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검은 방의 결계가 많이 약해져 있다. 내 생각엔 아마도 그는 검은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또 죽어서 부활 중인지도 모르지. 그의 힘이 약해져있을 때 다시 건너 편 세계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그를 맞닥뜨렸을 때 죽이고 내가 검은 방의 주인이 되겠다. 그리고 검은 방을 기지삼아 내 군대의 전열을 가다듬은 후 그들을 이끌고 엘리시움으로 다시 나아갈 것이다.”

“과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카베쿠스가 ‘컹컹’ 소리를 내며 그의 주인을 응원했다.

“주인님, 그럼 텔리는 어떡할까요?”

“그 골칫덩이는 그냥 이 곳에서 영원히 썩으라고 해. 자기 형제와 함께. 쿠쿠쿠. 내가 검은 방의 주인이 되면 그를 영원히 이곳에 묶어 놓던지 아니면 검은 방의 힘으로 손상되었던 내 생명의 정수를 회복하고 그를 처리할 것이다. 그는 예전엔 결코 내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손상된 생명의 정수를 바탕으로 부활한 지금의 내 육체를 가지고는 나도 절대 그를 꺾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검은 방의 주인이어야만 한다. 곧 검은 방의 경계로 가서 카베쿠스, 네 형제가 이끌고 있는 엘리시움에 남아있는 나의 군대를 이곳에 모을 것이다. 그리고 케르케로우스를 죽이고 우리의 고향인 검은 방을 차지하자.”

“그럼 제 형제, 리베우스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게 되겠군요. 감사합니다, 베토케로우스님!”

카베쿠스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불새 군을 감시하라는 베토케로우스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등을 돌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