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5 부. 만월의 밤 - 43 화

만월의 밤 – 43

릴리카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에뮤니우스는 평소의 태도와는 다르게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그녀에게 열변을 토했다.

“릴리카님! 그렇게 망설이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검은 늑대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여러분들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저들이 누굽니까? 한때 온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베토케로우스님의 무적의 군대입니다! 어서 베토케로우스님께 손을 잡겠다고 말씀하십시오!”

이사우라도 목소리를 높였다.

“안 됩니다, 이사우라님. 이 사특한 놈의 간계에 또다시 넘어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검은 괴수와 손을 잡으시게 되면 저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저들이 공격해온다고 해도 저희는 그 계획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 쉽게 당하지만은 않습니다. 저들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무적의 군대라면, 저희 역시 대륙을 제패하며 연전연승을 거듭해온 무적의 불새군입니다. 오히려 당하게 되는 쪽은 늑대들일 될 것입니다.”

에뮤니우스는 이사우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쯧. 한심하군. 이사우라, 당신 진정 제 정신인겐가?”

“뭐야?!”

“무적의 불새군? 그래. 분명 불새군은 무적에 가까운 경이로운 군대였지. 당신들이 나타나 케르케로우스 신전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았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그 힘은 내가 당연히 인정하지. 세상에 그 어떤 힘도 불새군에게 비할 것이 없었어. 그 어떤 신들의 군대도 불새군에 비하면 초라했다. 허나 지금 당신들이 내가 봤던 그 군대가 맞나? 당신들은 오랜 세월 평화로운 곳에서 보초만 서던 군인들이야. 감히 무적의 불새군이라는 칭호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이사우라는 이를 꽉 물었다.

“가... 감히 네 불경한 주둥이로 함부로 불새군에 대해 지껄이지 마라! 이 배신자 새끼야!”

“반면에 숲속에 숨어있는 검은 늑대들은 몇천 년동안 어두운 곳에서 몰래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군대다. 저들은 두려움도 없고 욕심도 없다. 오직 베토케로우스님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강인한 이빨과 발톱, 그리고 잘 발달 된 근육과 두꺼운 가죽, 즉, 놀라운 생체 장갑으로 몸을 두른 최고의 전사들이다. 게다가 당신들의 무기는 그게 또 뭔가? 어디 제대로 된 총이 있기를 하나? 압도적인 화력은커녕 어느 주방에서나 쓰일 법한 칼들을 가지고 왔잖아.”

“그... 그야 한국은 무기 소지가 불법이기 때문에 가져올 수 없었잖아!”

“뭐 어쨌든 간에 말이지. 그런 모습으로 늑대들의 공격을 막아내겠다고? 이 중에도 저 늑대들을 직접 본 사람이 있지, 아마? 옳지. 바로 이사우라 당신 뒤에 있군그래. 저자가 다른 부대원과 함께 늑대들을 보고 겨우 살아 돌아온 병사야. 저자에게 물어보면 알 것 아니야? 베토케로우스님의 늑대들이 어떤 존재인지!”

에뮤니우스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지목하자 데디쿠스는 순간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말대로 자기는 예전에 늑대를 보고 놀라서 동료들을 버리고 그 장소를 벗어나 겨우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고개 숙인 데디쿠스를 본 병사들은 마음에 동요가 일었는지 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본 릴리카는 손을 들어 더는 에뮤니우스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잠깐만. 에뮤니우스. 거기까지만 말하도록 해.”

에뮤니우스는 다시 시선을 릴리카에게 돌렸다.

“릴리카님, 시간이 없습니다. 하늘을 보십시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이미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지 않습니까? 베토케로우스님은 케르케로우스님 이전에 검은 방의 주인이셨습니다. 그분은 검은 방의 숨은 입구가 어딘지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두운 산속에서도 여러분들을 입구까지 이끌어주실 겁니다. 저 멍청한 사제 녀석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릴리카님이 케르케로우스님을 치시는 데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릴리카님, 이 자의 말을 듣지 마십....”

이사우라가 나서는데 릴리카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러자 에뮤니우스는 맘 놓고 말을 더 할 수 있었다.

“지금 왜 늑대들이 여러분을 포위하고도 공격을 하지 않고 있겠습니까? 그게 다 베토케로우스님께서 늑대들의 눈과 귀를 통해 이곳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보고 듣고 계시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께선 릴리카님의 결단을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다. 지금 만약 여기서 이사우라의 말을 들으신다면 그분은 곧바로 늑대들에게 여러분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실 겁니다. 그러니 현명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어서 베토케로우스님과 뜻을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십시오.”

“으으음.....”

자존심 강한 릴리카는 이렇게까지 강압적으로 베토케로우스와 연합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에뮤니우스의 말을 들어보니 어두워져가는 산속에서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하는 적들과 맞서 싸운다고 하니 그 또한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늑대들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에뮤니우스의 말이 정말이었을까? 갑자기 사방에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우우우우-!’

‘어우~ 어우우우~ 어우우우!’

‘어우우우우우-!’

에뮤니우스의 말을 듣고 있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기를 꺼낸 채 사방을 둘러보며 숲속에서 갑자기 늑대들이 기습해올까 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릴리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에뮤니우스의 말이 옳았다. 지금 이 군인들로는 도저히 베토케로우스의 늑대들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음.... 알았다. 에뮤니우스, 지금 늑대들에게 신호를 보내. 검은 괴수와 손을 잡겠다. 다만 베토케로우스는 우리가 케르케로우스의 정수를 취한 후 엘리시움까지 가는 것을 반드시 보장해야만 한다.”

이사우라는 방금 릴리카가 한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릴리카님! 그러면 저희는....!”

릴리카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부관을 바라봤다.

“그만. 이사우라. 네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 그리고 우린 베토케로우스에게 항복한 게 아니다. 다만 우린 18 년 전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는 거야.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이 세계로 도망나온 케르케로우스를 기다렸다가 그를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베토케로우스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어. 그러니 그와 잠시 손을 잡는다고 해도 그것이 에피로제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따지지 마. 이건 명령이다.”

이사우라는 릴리카의 궤변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릴리카가 그녀에게 그만 가보라고 손짓하자 이사우라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릴리카, 바보 같은 계집애. 지금껏 저 간사한 노인에게 휘둘리더니 이젠 검은 괴수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렸어. 이젠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어. 저 계집애는 죽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게 될 거야!’

이사우라는 릴리카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데디쿠스가 그녀 뒤를 따랐다.

“괜찮으십니까, 이사우라님?”

“후우우..... 너도 뒤에서 다 봤지 않느냐? 우리의 대장님은 이젠 검은 방을 차지하려는 검은 괴수에게 정신을 홀려버리고 말았다.”

“이사우라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응?”

데디쿠스는 이사우라에게 귓속말로 언제 거사를 실행할지 알려주었다. 이사우라는 심각한 얼굴로 그의 말을 들었다. 데디쿠스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빛나는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데디쿠스는 알게 되었다.

‘됐어! 이사우라님은 모든 준비가 끝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