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 솔로우스 - 70 화
솔로우스 – 70
솔로우스는 베도아가 자신의 마지막 부탁을 잘 이행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아직 몸이 완전히 마비에서 풀리지 않아 움직이기 힘들었으므로 눈만 깜박거리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네. 그게 내 마지막 부탁이었네. 자네가 데비아나를 도와 일을 완수해줄 거라 믿네.”
베도아는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며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무래도 솔로우스의 부탁이 맘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예. 솔로우스님. 당연히 분부하신 대로 제가 이행하겠습니다만..... 어째서 병사들을 굳이 처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왜 이들을 모두 이끌고 다시 엘리시움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그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솔로우스는 그녀가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차라리 이 지구에 관한 것을 비밀로 부쳐야 한다는 것이라면 저도 이들과 함께 여기서 괴수를 상대하다가 최후를 맞고 싶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 저희가 병사들을 엘리시움까지 데려가서 최후를 맞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그건.....”
솔로우스는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죽더라도 저들 중에 일부는 에피로제님의 은총을 입어 다시 되살아나야 할 텐데, 여기서 죽어버리면 신수께서 어찌 그를 살리실 수 있겠나? 당연한 것을 묻고 있군. 자넨...,,”
“예? 아.... 예. 그렇군요.”
베도아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금은 굳이 대사제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솔로우스 역시 베도아가 분명 맘속에 또 다른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다른 부탁을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이제 방금 전까지 날 치료해주던 병사를 불러주게. 그를 비롯한 몇 병사들에겐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난 그들과 여기서 저 괴수를 상대하며 최후를 맞을 것이야. 그게 모두를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야. 자네는 내가 말한 대로 어서 데비아나와 병사들을 데리고 후퇴하게. 어서!”
“예. 알겠습니다.”
베도아는 대사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 *
불새군 병사들은 베토케로우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괴수를 공격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그를 경호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칼을 꺼내 손에 들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감히 괴수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팔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는데, 괴수가 풍기는 지독한 썩는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웁...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나는데! 저 녀석을 공격하기 전에 이 냄새 때문에 먼저 질식해서 죽을 것 같아.”
“그런데 이 자식, 좀 이상해. 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거지?”
“그러니까 왜 자꾸 한 곳을 빙빙 도는 거야? 꼭 오줌을 참는 아이처럼 말이야.”
그들의 말대로 검은 방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베토케로우스는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면서 꽥 소리를 내면서 화를 내다가 한숨을 쉬면서 한탄을 하기도 했다.
“텔리....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텔리! 어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게 큰 소리로 고함치다가도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카베쿠스! 어서... 길을 찾아라! 왜 아까부터...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느냐?”
그는 또 고개를 흔들더니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는 또 다시 방향을 바꿔서 검은 방 쪽으로 걸어갔다.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카베쿠스와... 리베우스는 모두 죽어... 내 몸... 속에 그들의 육체를 보관하고.... 있는데! 카...베쿠스! 리베우스! 너희의 그 억울함은... 내가 대신... 풀어 주겠다! ...텔리! 널... 죽이겠다! 어우우우우우~”
괴수가 잠시 서서 고개를 쳐들며 밤하늘을 보고 길고 슬프게 울어댔다. 그의 주위에 있던 불새군 병사들은 대체 베토케로우스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몰라서 그를 올려다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병사가 작은 목소리로 곁에 있는 동료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저 놈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빙빙 돌고 있는 걸 보니까 꼭 미친 것 같네.”
베토케로우스가 미쳤다라.... 그건 병사가 옳게 본 것이었다. 실은 텔리의 독이 이미 그의 몸 곳곳에 퍼져서 이젠 그의 정신까지 흐리게 만든 상태였다. 특히 아무리 눈이 안 보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바이베노파시스를 텔리로 오인해서 공격했던 것만 보더라도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병사의 동료는 베토케로우스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네 말이 맞아.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조심해. 갑자기 돌변해서 우리를 공격해올지도 모르니까.”
병사들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베토케로우스를 경계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때였다. 갑자기 괴수는 발걸음을 멈추면서 주둥이를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에피로제...! 네놈은... 어디에... 숨어서 이런... 벌레 같은... 놈들을 내게.. 보낸 것이냐! 크아아!”
그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그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병사를 공격했다.
“으아아악!”
‘콰직!’
병사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서 베토케로우스의 공격을 피했다. 대신 그의 입은 병사 뒤에 서 있는 나무의 몸통을 박살내 버렸다.
‘으적! 으적!’
“냄새가... 난다... 냄새가... 하나... 둘... 셋... 모두 여섯 놈....이 내 주위에... 있구나.”
나무의 몸통을 씹어 먹는 베토케로우스를 보고 방금 공격을 피한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동료들에게 외쳤다.
“공격... 공격해! 어서 공격하라고!”
원래 그의 동료들은 숨을 죽인 채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었지만, 병사가 크게 소리치는 통에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베토케로우스가 솔로우스를 노리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만약 괴수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이라면, 그는 곧장 솔로우스에게 돌진할 것인데, 그들이 곁에서 상황을 지켜만 보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야아아아아!”
여러 방향에서 베토케로우스를 감시하고 있던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베토케로우스는 앞발을 휘저으며 병사들을 공격했지만 시력이 망가지고 오로지 후각에만 의존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병사들이 조금만 방향을 틀면 그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의 앞발이 자꾸 허공을 노리게 되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이봐, 친구들! 이 녀석, 우리를 제대로 볼 수가 없는 모양이다! 미친 것뿐만 아니라 볼 수도 없다고!”
괴수가 제대로 자신들을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은 조금씩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 병사는 베토케로우스의 앞발 공격을 각각 한 번씩 피한 후 더 깊숙이 파고 들어 그의 몸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이얏! 죽어라! 괴물!”
먼저 한 병사가 베토케로우스의 옆구리로 파고들어 칼을 찔러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푸욱’하고 들어가야 할 칼날이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피부에 닿은 칼의 끝이 오히려 튕겨져 나오자 병사는 질겁했다.
“이... 이거 뭐야? 왜 칼이 안 들어가?”
거의 동시에 다른 병사들도 절호의 공격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일 먼저 공격했던 병사가 내뱉은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이 모두 한 번씩 칼로 베토케로우스의 몸을 힘껏 찔러봤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 기겁하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칼이 들어가지 않는 거야! 이런 경우는 처음 봤어. 마치 온 몸이 단단한 갑옷에 씌워진 것 같잖아!”
“우...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6 명의 병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끝내 단 한 명도 공격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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