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6 부. 솔로우스 - 6 화

솔로우스 – 6

텔리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알렉시스는 등을 텔리와 거의 맞닿은 채로 후방을 경계했다. 그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숲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베토케로우스 역시 늑대들을 통해 텔리의 동작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 분명했다.

“어이, 베토케로우스! 우리 서로 해묵은 원한은 잠시 제쳐두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생각해보자구우우~! 너나 나나 다시 붙으면 분명 둘 중 하나는 살아남질 못할 텐데, 과연 우리 둘 다 그런 불확실성을 택할 필요가 있을까?”

베토케로우스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렉시스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텔리에게 속삭였다.

“신이시여, 혹시 괴수가 아까 대결에서 너무 큰 부상을 당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자기 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리 없잖습니까?”

텔리는 어깨 너머로 그녀를 슥 보더니 다시 정면을 주시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까처럼 늑대들을 사용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그들만으론 날 꺾을 수는 없을 텐데. 아까도 똑같은 전법을 썼지만 통하지 않았어. 그런데 또 같은 방식을 사용하진 않겠지.”

“그렇다면 적은 더 이상 텔리님을 대적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멧돼지 신수의 공간에서 만났던 이디레이아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괴수가 예전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예전의 힘을 회복하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다른 신수들과 비교해도 훨씬 모자란 상태가 아닐까요?”

“모르지. 하긴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나 하나 정도에게 그렇게 쉽게 꺾였을 리가 없겠지. 옛날엔 많은 신들과 신수가 연합해서 그를 대항했어도 버거운 상대였으니까.”

텔리와 알렉시스는 모두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것처럼 머리의 방향을 바꾸지 않은 채 눈을 굴려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혹시라도 늑대들이 기습을 할까봐 싶어 양손에 서서히 힘을 주입했다. 둘은 언제든지 달려드는 늑대들을 해치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텔리는 베토케로우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떠들어댔다.

“베토케로우스, 넌 지금 우리를 어두운 숲속으로 끌어들여서 기습하려고 하는 생각인가 본데, 내가 아까 말했지? 어두운 곳에 있으면 내가 훨씬 유리해진다고. 내 말은 너가 날 죽이려고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허사라는 거야. 결국 쓰러지는 건 너가 될 거야. 물론 사신의 인이 박힌 네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죽을 거니까 언제 어디에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꼭 오늘이어야만 할까? 응? 그리고 어쩌면 살아남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잖아?”

“헛소리 하지 마라!”

사방에서 숨어 있는 늑대들이 한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그리고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숲속에서 검은 늑대 세 마리가 텔리와 알렉시스에게 달려들었다. 텔리는 제 자리에 서서 피하지도 않고 빛나는 손날로 자신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벌리고 뛰어드는 늑대의 목을 쳤다. 그러자 그 늑대의 머리가 잘리면서 그대로 몸과 함께 땅에 떨어졌다. 알렉시스 역시 뒤편에서 달려드는 두 마리의 늑대들을 텔리가 부여해준 능력을 사용하여 손쉽게 처리했다. 텔리는 바닥에 떨어진 늑대의 머리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베토케로우스.... 늑대를 보내서 공격하는 방식은 보통 인간들에게나 통하지, 신인 내겐 전혀 소용없다는 걸 너도 알 텐데? 이래봤자 자구 전력만 축나는 것 아니야? 혹시 지금 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해서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거 아냐? 그렇다면 좀 안타깝네. 훗훗훗.”

텔리의 도발에 끝내 넘어간 걸까. 숲속에서 붉은 눈동자들이 번뜩이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텔리의 황금색 수염의 양끝이 올라가며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알렉시스, 네 말이 맞는 것 같구나. 아무래도 괴수는 아까 나와의 결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 같다.”

알렉시스의 그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괴수를 어떻게 찾을까요....? 아무래도 다른 늑대들과 함께 숲속으로 숨어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건 큰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아까 녀석의 몸에 힘을 썼기 때문에 그 위치를 역추적하면 간단한 일이다.”

텔리의 이마가 하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까 베토케로우스를 사용했을 때 그의 몸에 상처를 입히며 남겨두었던 힘의 흔적을 추적하여 숲속에 몸을 숨겼을 괴수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능력은 이전에도 사용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그 능력으로 뉴욕에서 보로니의 아들인 죠셉의 위치를 파악했던 일이 있었다. 그는 모든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베토케로우스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할 때였다.

“독한 녀석! 좋다. 이곳이 너와 나의 무덤이 될 곳이로구나!”

돌연 수십 마리의 검은 늑대들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외치며 어두운 숲에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텔리는 알렉시스의 한쪽 어깨를 잡으며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네 메이크바로는 저들을 막을 만큼 강력한 방어막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 최대한 내 곁에 붙어 있다가 내가 신호를 내리면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사용해서 저들을 공격해. 난 아가 괴수를 쓰러뜨리는데 능력을 많이 써서 이제 더 이상 저들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내가 방어를, 넌 공격을 맡아야 해. 내가 둘 다 할 수는 없다.”

텔리는 아까 베토케로우스와 맞설 때 이미 자기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을 소진해버린 바람에 더 이상 검은 연기를 피울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온 전력을 다해 방어막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알렉시스더러 공격하라고 말한 것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알렉시스는 최대한 텔리에게 몸을 밀착시키면서 늑대들을 상대하기 위해 양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둘에게 달려오는 늑대들은 눈이 뒤집어진 채로 주둥이에선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맹렬함과 흉폭함에 간절함이 뒤집어 씌인 듯, 모두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베토케로우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는 중에 텔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제 정신일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심리상태가 그에게 정신을 지배당한 늑대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수많은 늑대들이 달려들자 텔리는 재빨리 메이크바를 가동시켰다. 곧 붉은 색의 방어막이 텔리와 알렉시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었다.

‘탁! 퍽!’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늑대들은 텔리가 순식간에 전력을 다해 세운 방어막에 부딪쳐 몸 어딘가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그들의 뒤를 이어 달려오던 늑대들은 방어막 위로 뛰어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방어막 위에 지붕을 올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텔리가 등 뒤에 있는 알렉시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알렉시스. 내가 일시적으로 방어막을 약하게 만들 테니 어서 방어막 위에 올라탄 녀석들을 쳐라.”

“우으으윽!”

“알렉시스? 왜 그래?”

“으윽...... 제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서 늑대들을 공격을 해야 하는 알렉시스는 어찌된 일인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텔리는 크게 당황했다.

“아차! 넌 인간이라 이렇게 강한 방어막을 견뎌내지 못하는 구나!”

알렉시스는 너무나 강한 텔리의 방어막 안에서 안전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 딱딱해진 그 안의 공간 안에서 그만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텔리가 방어막의 능력을 낮춘다면 그녀의 몸이 다시 움직여지겠지만 그보다 먼저 늑대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몸에 파고들 것이 분명했다.

“아, 내가 처음부터 판단을 잘못했다. 이 안에 갇혀버린 꼴인데, 이걸 어쩌지?”